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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n 16. 2021

#8. 어머니 직장동료가 문자를 보내왔다.

너희 엄마 연락이 안 되는데 무슨 일 있니?

어느 날 동생이 문자를 보내왔다. 어머니 친했던 직장 동료에게 온 장문의 문자였다. 어머니와 연락이 잘되지 않아 어렵게 만났는데, 어머니가 말하기를 자기는 치매가 아닌데 두 아들놈이 자꾸 치매라며 자기를 이상한 곳에 보내려고 병원에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는 것이다.


친한 동료 분도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어머니와 몇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나니 이상한 부분이 많이 느껴져 조심스럽게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 앞에서 동생과 대화를 나누며 치매라는 단어를 최근 많이 사용하긴 했었다. 아직 그래도 다 이해하고 알아듣는데 마치 못 듣는 사람처럼 우리는 엄마를 옆에 두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문자를 전달받은 나는 갑자기 가슴에 찢기듯이 아팠다.  

움직이지 못하고 한참 동안 주저앉아 어머니를 생각했다.


'얼마나 서운했을까?'


 본인은 아픈 것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말하는 자식들이 미웠을 것이다. 자신을 버린다고 생각하면서 그 속마음을 우리에게 표현하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떠올리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자식들 앞에서 내색도 못하는 힘든 시간을 홀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불안해하면서 두 아들이 혹시나 자기를 버릴까 봐 밤을 혼자 설쳤을 엄마를 떠올리니 눈물이 아스팔트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주가 흐르고 어머니 뇌 MRI 촬영과 추가적인 치매 검사를 위해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어머니는 본인이 왜 MRI 촬영을 하는지도 몰랐다. 들어가기 싫어하는 어머니를 겨우 달래서 촬영실로 들여보냈다. 동생과 밖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조심스럽게 요양병원 말을 꺼냈다. 만약을 대비해서 동생과 공유해야만 했다.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앞으로 닥칠 일들이 두려웠던 것이다. 무조건 모시겠다는 말을 동생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식은 키워 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것만 같았다. 

자신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앞에 두고 현실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그런 못난 두 아들이었다.

치매는 코로나19도 아니고 나쁜 바이러스도 아니다. 그렇다고 좀비로 변하는 그런 무서운 병도 아니다. 그냥 치매라는 그 자체가 보호자에게 큰 두려움으로 그 자체였다. 


차라리 겉모습이라도 심하게 아파 보이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요양병원을 고려하겠지만 엄마는 여전히 우리가 사랑하는 엄마 모습 그대로였다.


몇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결과를 보자마자 우리에게 바로 질문을 했다.


"혹시 가족 중에 치매 환자가 계신가요?"


전두엽 치매인데 진행 정도나 상태가 연세에 비해서 너무 빨라서 가족력이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우리는 대답을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분명 친가, 외가 쪽 모두 젊은 나이에 아프셨던 분은 없었기 때문이다. 꼭 아버지가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선생님을 만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도 가족력을 물어보았다. 이런 비슷한 상황은 우리 형제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중에 우리 자녀들이 똑같은 상황을 맞이 할까 봐 두렵고 무서웠다.


몇 분이 흐른 후.... 내가 알기로는 없어서 아니라고 말했다.


그때 조용히 천장만 보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그 한마디는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처럼 진료실을 고요하게 만들었다. 자식들에게 조차 20년 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선생님은 말을 듣고 사실이냐고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이제는 치매가 어머니의 비밀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든 것만 같았다. 사실 어머니도 피해자이고 아픔과 상처를 받은 사람인데...... 죄인도 아닌 엄마는 그저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과거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니기에. 엄마가 잘 못한 것이 아니기에. 

그래서 나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봤다. 잠시 잊고 있던 엄마의 과거가 지금 상황을 더 서글프게 만들었다.



이미지 출처:  google.co.kr


#치매 #병간호 #엄마와아들 #에세이 #비밀 #사랑 #가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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