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Jun 24. 2021

#10. 엄마의 진단명은 전두측두엽 치매였다.

엄마한테 아직 기대고 싶은 30대 후반 아들

선생님은 어머니가 아직 많이 젊으신데 그에 비해 진행이 너무 빠르다고 말했다. 분명히 유전적인 부분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진단명은 ‘전두측두엽 치매’였다. 

십만 명당 3명에서 15명꼴로 유병률을 보인다고 했다. 정말 운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의사는 MRI 촬영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의학적 상식이 없는 우리가 봐도 검은 부분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멀쩡한 다른 쪽 뇌와 비교하니 말할 것도 없는 중증 환자였다. 


그리고 다른 부위에도 미세한 출혈의 흔적들이 너무 많다고 설명해 줬다. 어머니의 뇌는 이미 고통 속에 살고 있었다. 동생은 지금까지 나타난 증상들에 대해 세부적으로 의사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어머니한테 무엇을 기대하면 절대로 안 돼요. 그리고 화도 내지 말고요.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를 못 하실 거예요. 근데 감정을 느끼는 부분은 아직 살아 있어서 자식들이 화를 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계속하면 악화가 더 빨리 될 거예요.”     


엄마의 증상은 인격 변화와 언어 기능 저하가 두드러지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단지 기억력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조금 오래 유지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우리 형제에게 희소식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우리가 아들이라는 사실은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동생은 계속 침묵했다. 이렇게 아픈지 모르고 잔소리를 했던 본인을 자책하고 있었다. 동생은 내가 결혼한 후로 엄마와 단둘이 살았고, 충분히 화를 낸 일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모습은 아버지에게 내가 했던 행동으로 오랜 시간 괴로워했던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한동안 나도 내 행동을 용서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이제는 동생 괴로워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나 잘고 있기에….


선생님은 더 세부적인 검사를 받는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 진단서에 중증 치매라고 기록했다. 위암도 모자라서 치매까지 얻은 엄마지만 오히려 별로 걱정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드라마와 영화만 보고 싶어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어머니가 울면서 억울하다고 소리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게 많으니 돈을 달라는 한다면 빚을 져서라도 드렸을 것이었다

자식들에게 그동안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면 어떤 것이라도 해드릴 텐데, 그저 어린아이처럼 아무 생각이 없는 엄마가 밉기까지 했다. 내 앞에 있는 엄마는 더 이상 내가 알고 있는 엄마가 아닌 것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상담을 마치고 병실을 나설 때 선생님이 우리 형제를 조용히 불렀다. 앞으로 진행 속도가 상당히 빨라질 것이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장기요양 인정 신청을 빨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우발 상황이 걱정된다고 덧불였다.


병원을 나오는데 어머니 또래의 병원을 오가는 아주머니들이 눈에 보였다.

병원을 오시지만 정신은 모두 건강해 보였다. 이제까지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듯이 여행도 다니고, 제2의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런데 엄마는 길이라도 잃어버릴까 봐 마디마디 구부러진 그 작은 손으로 두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 손을 잡고 생각했다. 나쁜 일은 몰아서 온다고 했던가. 하지만 너무도 짧은 시간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것이 야속했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틸 힘도 없어 엄마의 손을 잡을 손에 힘이 빠졌다.



#치매 #어머니 #에세이 #보잘것없는사람 #기억상실증 #부모님건강 #위암


이미지 출처 : google.co.kr

매거진의 이전글 #9. 어린 동생을 잃어버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