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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n 28. 2021

#11. 아들, 엄마 해외여행 한 번 가고 싶어.

슬픔과 행복의 비율은 5:5로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결혼식 이후에 어머니가 건강검진을 시켜드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냥 무심하게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지나갔더라면…. 

아마도 말기 암이 되어 발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그랬다면 치매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만 같았다. 암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것도 역시나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그래도 후회 없이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렸을 것이었다. 


괜한 짓을 해서 이미 나약해져 버린 어머니를 더 지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계속 자책을 하게 되었다. 

아이를 가지면 태어나는 날을 예측 할 수 있듯이, 죽는 날은 미리 아는 것은 그리 나쁜 삶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봐도 그랬다. 적어도 주변을 정리하고, 후회를 털어놓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미리 보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모두에게 두렵지만 그래도 정해 진 운명이었다. 그런데 엄마한테 남은 것은 의미가 사라진 인생이었다. 무엇을 해도 그냥 멈춰버린 그런 색깔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 무색의 공허함은 오로지 우리 자식들의 몫이었다. 그랬다. 우리들이 감당하고 슬퍼해야 할 시간만 남아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어두운 터널을 우리는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가 건강할 때 엄마는 가족 모두 가까운 곳으로 해외여행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고생만 하고 평생 일만 하느라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도 못하고 늙으셨다. 지금 이렇게 시간이 흘러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그 부분이 정말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떻게든 가려고 마음먹었으면 가까운 동남아 여행이라도 다녀올 수 있었다. 

그저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이 정말 많은 줄 알았다. 조금만 더 돈을 모아서 더 좋은 곳에 모시고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결국 제한된 모두 시간을 모두 써버린 것 같았다. 


엄마는 비행기 한 번을 못 탔는데 못난 아들은 해외에서 공부한다고 유학도 가고, 종종 주변 국가들 여행을 다녔다. 마음은 항상 불편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중에 귀국하면 내가 다녀온 나라들을 꼭 가족들과 함께 가야지라고 다짐만 했다. 엄마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무턱대고 떠난 아들을 보면서 돈이 없어 못 해준 게 많은 것에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하셨다. 


차라리 내가 욕심 없는 놈이라서 공부도 안 하고 그냥 한국에 평범하게 직장만 다녔다면 이런 미안한 감정은 덜 들었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하신다. 

손녀딸을 보여 주려고 집에 모시고 와도 그저 멍하니 텔레비전만 보려고 한다. 

이런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살아 계실 때 잘하라는 그 흔한 대사 같은 말은 거짓이었다. 살아계셔도 건강하실 때 잘 해 드려야 한다. 나중에 나중에 라고 생각하면 그 시간은 인생에서 달아나 버린다. 우리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도 못하는 불안한 상태에서 삶을 이어간다. 마치 오늘 같은 내일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짧은 시간에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행복으로 가는 길이 너무도 멀고 험하게 느껴졌다. 

좌절감과 배신감에 세상을 등져 버리고 싶기도 했다. 착하고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하는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지나가는 파마머리의 뒷모습만 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육아 휴직 이후 서울에 올라오는 날이 늘어났다. 엄마한테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어머니 옆에 앉아 드라마를 보며 같이 큰 소리 웃기도 하고  웃는 엄마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견디기 힘들어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근심과 걱정이 모두 사라지면 이렇게 사람이 순수한 모습이 변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언제 엄마가 살면서 저렇게 웃었던가. 

표정이 항상 어두웠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 모습은 차리리 행복해 보여서 좋았다.


그동안 얼마나 웃을 일도 없이 살았는지 알고 있다.

어쩌면 슬픔과 행복의 비율은 5:5로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지출처: googl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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