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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l 23. 2021

#13. 치매환자는 누가 돌보나?

장기요양보험 등급은 과연 환자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의사의 권유로 불편마음이지만, 동생과 나는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했다. 기다림에 시간 끝에 공단에서 직원이 집을 방문한다고 했다. 동생은 휴가를 내서 어머니 곁을 지켰다. 나도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지방 근무의 여건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동생에게 무슨 조언도 해 줄 수 없었다. 그저 공단 직원들이 방문 후 의사 선생님의 진단과 더불어 심사를 하고 우리는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초조하게 어떻게 면담했는지 동생 전화를 기다렸다. 저녁 시간이 돼서야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당황하고 놀랐다는 무엇보다 실망했다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형, 엄마가 다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대답하더라고.... 엄마한테 밥도 혼자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고, 혼자 씻냐고 물어보고, 빨래도 혼자 다한다고 물어보더라..."




동생은 분명 화가 나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음식도, 빨래도, 청소도 모두 동생이 하고 있었다. 근데 엄마는 그 직원들 앞에서 다 자기가 한다고 대답했다고 했다. 동생은 개입해서 아니라고 말했지만 공단 직원들은 그다지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어떻게든 자식들 음식을 챙겨주려고 했던 그 모습도, 항상 정리를 잘했던 그 청결함도, 옷에 주름 하나도 신경 써도 빨래하던 엄마의 모습이 우리 곁에서 떠난 지 사실 오래였다.


"형 그리고 황당한 게 그 직원들은 그냥 끄덕거리고 나한테 뭐 물어도 안 보고, 엄마가 아무 이상 없다는 듯

대충 하더라고, 내가 설명하려고 하니까 엄마 말하게 두라고 하면서.... 얼마나 사람들이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지... 아!!.."


나는 다급하게 동생을 달랬다.


"그냥 기다려봐. 의사 선생님 진단서도 있고, 엄마는 진행이 빠를 거라고 했으니까 심사결과 나와보면 알겠지.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면서 기분 좀 진정시켜.. "


이후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높은 등급을 받기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라에서 보장해주는 나름의 제도인데 우리는 해당이 안 되는 것만 같았다. 일단 연령이 가장 큰 문제였고, 우리는 심각하지만 그들은 더 심한 조건을 많이 봤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확률이 높았다.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근거하여 2008년 7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고 한다. 시작된 이유 대한민국의 노인 인구 증가가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이미 고령 사회(Aged Society)로 진입한 국가라고 인터넷에 쓰여 있었다.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하면 방문 조사 후 공단 내 지역별로 구성된 장기요양보험등급판정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등급이 부여된다. 등급은 점수에 따라 달라지며 등급에 따라 서비스도 달라진다. 장기요양보험은 1~5등급으로 시설 등급과 재가 등급이 있고, 1~2등급은 시설 등급으로 요양원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9인 이하 요양원) 같은 시설에 입소 가능하지만, 3~5등급은 재가급여 혜택만 주어지므로 시설입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1등급 - 95점 이상, 2등급 - 75~94점, 3등급 - 60~74점, 4등급 - 51~59점, 5등급 - 45~50점

등급 외(인지 지원등급) - 45점 미만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몇 주가 지나고 우편물이 나왔고, 엄마는 인지 등급을 받았다. 일단 등급이 나오면 병원을 방문해 달라는 의사 선생님에 말에 따라 병원으로 엄마를 모시고 갔다. 선생님에게 보여드리니 '인지 등급'이 뭐냐고 내게 되물어보는 것이었다. 최소 5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며 전화를 했다. 

운이 없게도 새로 생긴 등급이었다. 그만큼 받을 수 있는 혜택도 한정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뭐 이런 게 있냐면서 황당하다고 말했다. 우리 가족이 등급을 받기 희망했던 이유는 자기 부담금이 든다고 해도 요양보호사님을 매일 집에 모셔서 엄마가 혼자 있는 시간 동안에 말동무나 식사라도 챙겨드리게 하고 싶음이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무기력하게 있으면서 단것만 먹고 아무 활동도 안 하면 진행이 더 빠르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다.

하지만 인지 등급은 요양보호사를 부를 수가 없었다. 대신 방문센터 주 3회 이용만 가능했다. 매우 실망스러웠다. 늘어나는 노인인구와 환자를 위해서 정해 진 예산을 초과할 수 없으니 추가 등급을 만든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왠지 피해자가 된 것만 같아서 제도에 대한 불신이 가슴속에서 싹트고 있었다.


선생님은 다시 재심을 할 수 있으니 일단은 기다려보자고 했고, 안 본 사이에 증상이 악화된 거 같다며 약물 처방을 다시 해주었다. 먹어도 먹어도 완치가 안 되는 약이지만 우리가 의지할 것은 약이 전부였다. 그래도 처음에는 차갑게 보였던 선생님이 우리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의사에 대한 불신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 치료 때, 기계적으로 대했던 그 모습이 상처로 남았던 것이 분명했다. 그저 직업일 뿐이라고 연속극에 나오는 그런 따뜻한 심장을 가진 의사는 그저 TV 속에만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생님에게 약간의 위로를 받고 병원문을 나섰다. 


병원 나온 엄마는 이런 상황도 모르고 두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삼계탕 먹으러 가는 거야? 병원 오면 그거 먹잖아?"


나는 웃으며 말했다.


"삼계탕이 먹고 싶어요? 울 엄마 이번에 가면 많이 먹어야 해.. 먹으러 가자."


식당에 도착해서 삼계탕을 먹는 엄마를 보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며 앞으로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앞이 깜깜했다. 이런 심사를 받고 이런 이야기를 의사와 주고받고, 이런 걱정과 근심을 품고 사는 게 억울했다.

이제야 조금은 먹고살만해져서 잘해드릴 수 있는데, 이제야 아주 호강은 아니더라도 평범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냉혹한 현실 앞에서 모든 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마치 몇 시간을 노력해서 쌓은 모래성이 밀려드는 파도 한 번에 자취를 감추는 것처럼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결국 이런 마침표 인생이라면 우리는 왜? 이토록 치열하게 사는 걸까? 싶었다. 우리 인생에 마지막 페이지에 어떤 결말이 쓰일지 아무도 모르는데 왜 우리는 수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하며 발버둥 치며 사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에 삼계탕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는데 엄마는 국물까지 마시고 해맑은 얼굴로 나에게 말을 했다.


"또 줘.."




가족 이야기를 다룬 베스트 저자의 첫 번째 에세이 #보잘것없는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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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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