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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l 27. 2021

#14. 서랍속 엄마의 편지 한 장

엄마 걱정말아요. 덕분에 너무 행복해요.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고 우리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노력을 했다. 그냥 조금 달라진 것뿐이라고, 큰 병이나 죽을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진정시키고 마음을 추슬렀다.

이기적이지만 나는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겉모습은 똑같지만 변한 행동들은 무엇으로 설명하고 표현하기 어려웠다.

엄마는 대충 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도 사람을 알아보고 질문하면 대답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달라진 것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대화가 전혀 안되고 하고, 싶은 말만 계속하고, 무언가 해야겠다는 욕구가 없고, 음식을 먹을 때 자제를 못하고, 말하고 있는 도중에 전화를 끊고, 그 잘하던 요리도 못하고, 깨끗했던 집이 더러워지고, 씻는 것을 까먹는 등등 일상에 작은 것들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우리 엄마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형제는 천천히 새롭게 다시 태어난 엄마를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과제를 하듯이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엄마도 보고 병원도 모시고 갈려고 서울 집을 갔을 때, 짐으로 가득 차서 발 둘 곳도 없는 엄마방을 치우기로 결심했다. 이사도 계획하고 있었기에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다. 동생과 나는 눈에 보이는 불필요한 물건부터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치매가 심해지고 버리는 것에 민감해진 엄마는 가끔 밖에서 남들이 버리는 물건을 주워서 방에 두기까지 했다.

구석에 있는 오래된 밥통을 열어본 동생은 비명을 질렀다. 무엇인지 몰라도 안에는 움직이는 징그러운 것들이 악취와 함께 들어있었다. 이렇게 무엇하나 여는 것도 마음 조리며 하나씩 물건을 밖으로 꺼냈다.

어느 정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정리하는데 꼬박 5시간이 걸렸다. 점심을 먹고 기운을 내서 옷장과 서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랍장 한쪽에는 엄마가 항상 적던 가계부가 고지서들과 함께 있었다.

2019년 1월 이후로 모든 것은 멈춰있었다. 항상 달력과 가계부에 지출을 꼬박꼬박 기록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엄마의 치매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진행되었던 거 같다.


모든 서랍장 정리는 마치고 옷장에 옷을 하나씩 추리기 시작했다. 옷을 갈아입는 횟수도 적어지고 더워진 것에 대해서 인지가 없어져서 그렇게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쁘고 좋은 것들만 남기고 모두 버리기로 했다. 큰 서랍장을 하나씩 비우면서 왠지 모를 감정들이 몰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방을 정리하던 날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물건을 버렸는데 달라진 것은 그때는 엄마와 함께 아빠 물건을 버린 것이고 지금은 엄마의 물건을 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맨 위쪽 서장에는 각종 추억이 담긴 사진과 물건들이 가득했다. 앨범에 들어가지 못한 우리 형제들 아기 때 사진이랑, 비싸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에 받은 것 같은 선물들이 있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잘 정리해서 한 곳에 담아두기로 했다. 작은 박스들을 열면서 지나온 엄마의 인생을 읽을 수 있었다.

슬픔, 고통, 인내, 행복, 추억,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물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란색 서류봉투 하나에는 편지들이 모아져 있었다.


대부분 나와 동생이 엄마에게 쓴 편지들이었다. 군대 입대 후 쓴 편지부터 중간중간 사고 치거나 미안했을 때 엄마에게 쓴 손편지였다. 엄마는 노란 봉투 속에 그런 것들을 모아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한참 편지들을 다시 읽으면서 지나온 추억을 떠올렸다.

건강했던 그 시절, 꿈 많았던 그 시절, 힘들었지만 희망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


그 틈에서 엄마가 엄마에게 쓴 편지 하나가 나타났다.


글을 읽은 나는 눈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엄마가 자신에게 글을 남기던 그때의 심정을 떠올려 보았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식에게 당당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자식 눈에서 눈물 흐르지 하지 않겠다고...

글자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서 쓴 그 애절함이 내 삶 전체를 반성하고 돌아보게 만들었다.


언제 저 글을 남겼을까? 떠올려보니 어럽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아직도 내 기억 속에 깊게 남아 있던 그날이 엄마에게는 더 고통스러웠던 거 같다. 만약 그 기억이 강렬하지 않았다면 책 #보잘것없는사람 의 시점도 그날이 아녔을 것이다. 어렵게 결정해서 모든 걸 걸고 영국으로 유학 간 큰 아들을 불러 들어야 했던 엄마의 미안한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엄마는 아빠의 잘못을 막지 못한 것을 본인의 실수라고 표현하고 자녀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에게 이혼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울었던 큰 아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으로 글을 남겼던 것이다.


 한쪽에서 작은 책상에 앉아 홀로 메모장에 글을 남겼던 그 순간의 엄마의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어떤 심정이었는지 감히 상상이 되었다. 결국 내가 엄마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부담감이 지금의 치매를 불러온 것만 같아서 죄책감이 밀려왔다.


예전처럼 엄마랑 밤새도록 수다를 떨 수만 있다면...

아빠 걱정, 동생 걱정으로 수도 없는 고민을 들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남긴 글처럼 '되자'라는 강한 의지를 다시 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가 바랬던 것처럼 큰 아들이 우리 가족들에게 웃음과 행복이 끊임없이 넘쳐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비록 듣지 않는 엄마가 되었지만 내일은 전화해서 짧게라도 목소리를 들어야 겠다.


비록 엄마의 다짐대로 모든 것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가 치매여도 치맥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고 조금 무겁기는 해도 행복한 짐을 지고

평생 걸어갈께요.

그리고 아직 우리를 알아봐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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