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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Aug 03. 2021

#15. 엄마의 사랑상자 김치냉장고

김치냉장고는 사랑이고 추억이었다.

틈나는 대로 서울 집에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났다. 서울에 볼 일이 있는 것도 그렇고 어머니 집을 정리하다 보니 일이 끝나지 않아서 동생과 함께 정리해서 버리는 일을 반복했다. 치매 이후 멈춰버린 시간 속에 사는 어머니의 모든 것들을 정리할수록 언제부터 아프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가슴 아픈 것은 대략 2019년부터 치매 초기증세가 시작된 것 같은 흔적들이었다. 그때 나는 일하는 것에 바빠 서울 올라오기도 힘들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조금이라도 더 많이 어머니를 보러 올라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후회를 파도처럼 밀려왔다.


서울 오기 며칠 전 동생은 이번에는 엄마의 보물상자인 김치냉장고를 정리하자고 하였다. 동생이 가끔 열어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것들이 그 속에 있다며 혹시 썩거나 버릴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면서 두려워했다.


저녁에 퇴근하는 동생을 배웅하고 같이 밖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화를 시킬 겸 고무장갑을 끼고 오래된 김치냉장고 문을 열었다.


알 수 없는 검은색 봉투들이 위에 쌓여있었다.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마른 버섯, 마른 호박, 마른 무, 그리고 알 수 없는 것들이 그 속에 들어있었다. 생각보다 괜찮다면서 웃으면서 그것들을 봉투에 담고 나니 저 밑에 나란히 놓여있는 김치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길했다.


최소 3년은 넘게 사람의 손길이 타지 않았는데 과연 저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동생은 썩은 김치가 있을 거라면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통을 들어 올렸다.

묵직한 것이 분명 무거운 것이 들어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가서 열어보자고 제안했다.


김치통은 총 7개가 있었다. 상했을까 봐 큰 마음먹고 뚜껑을 열었는 김치 냉장고 속에는 김치가 없었다.


그 대신 오이 장아찌와 고추 장아찌만 가득했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반찬들이었다. 아버지는 유독 짠지와 간장에 절인 무나 고추를 좋아하셨다. 가난했던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던 '밥도둑' 들이었다. 

할머니가 간장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서 어릴 적 맨날 먹었다고 하면서 살아계실 때 늘 밥상에서 말씀하시곤 했다.


먹을 게 없는 시대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엄마가 신경 써서 다른 반찬을 정성스럽게 만들어도 아버지는 오이 장아찌랑 밥 한 공기를 뚝딱 먹곤 하셨다. 


처음부터 엄마의 장아찌를 아빠가 맛있어하고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해주던 그 맛이 아니라면서 힘들게 만든 어머니에게 반찬 투정을 하곤 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장아찌를 만들고 또 만들었다. 아버지는 너무 맛있다는 말을 하면서 먹을 때까지 그 향수의 레시피를 찾고 또 찾으셨다. 

사실 우리 가족 중에 아버지를 제외하고 그런 반찬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동생도 엄마도 우리는 육식과 면 음식을 더 좋아했다. 오로지 못난 아버지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눈앞에 장이찌들을 넌지시 보다 보니 반찬고 위에 엄마가 적어둔 글씨가 보였다.

'2017년 2월 만듦',  '2018년 5월 만듦' , '2018년 11월 만듦'

 그 짠지와 짠무, 절인 고추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만든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아빠를 떠올리며 아무도 먹지도 찾지도 않을 반찬을 만든 것이었다. 


그토록 속이 타게 고생만 시켰던 아버지인데 아머니는 아버지가 그리웠던 것 같다. 30년 세월 동안 매일 얼굴 보며 살았던 시간 속에 미움이라는 감정도, 철없는 아버지의 행동도, 모두 사랑으로 감싸며 치유하고 용서하기 충분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보내고 그렇게 홀로 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반찬들을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 만들어도 아무도 먹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길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아버지와 보내왔던 시간을 떠올리면 만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제 다 커서 밖으로 싸돌아 다니고, 한 집안에 가장이 되어 버린 두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립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움과 공허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두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짱 이치를 앞에 두고 한참을 버리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음식이 아닌 추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한 입 먹어보았다.


어머니의 바로 그 맛이었다. 그 아버지가 콧노래를 부르며 맛있다고 칭찬했던 그 맛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본인에게 치매가 오고 있다는 것을 더 빨리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았던 그 시절이 잊히기 전에 다시 가슴에 새겨두고 싶으셨던 거 같다. 

나는 동생과 그렇게 다시는 먹어보지도, 볼 수도 없을 어머니의 마지막 짱이치를 버렸다.

봉투에 담으면 담을수록 가난했지만, 조금은 불안했지만 그래도 우리 네 식구가 온전하게 존재했던 그 시절이 미친 듯이 그리웠다. 마치 짱이치처럼 봉투에 담겨 어디론가 버려진 거 같았다. 

그렇게 나와 동생은 엄마가 숨겨둔 보물을 비닐에 담아 버렸다.


김치냉장고 속에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장아찌처럼 아빠를 잃고 홀로 외로워했을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렀다. 




 #김치 #김치냉장고 #추억 #아버지 #어머니 #장아찌 #에세이 #치매 #병간호 #부모와자식


<가족 이야기를 담은 저자의 에세이, 보잘것없는 사람>

http://m.yes24.com/Goods/Detail/99272994


이미치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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