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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Aug 19. 2021

#16. 엄마 친구 집에 방문했다.

엄마를 사랑해줘서 감사합니다.

휴직 기간 동안 서울 집에 올라오는 일이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엄마 치매가 확정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한 친구분들께 연락을 드리고 어머니 소식을 전했다. 안타까워하면서 가까이 사는 친구분들이 집에 와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주셨다. 하지만 어머니가 처녀시절 정말 가까이 지냈던 친구분께는 미쳐 연락을 드리지 못했다. 사실 그분과 그 정도로 가까웠는지 알지 못했고, 아프시기 전에 어머니가 해주었던 그 친구분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렸다.


친구분들이 집을 방문하고 몇 주가 지나서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 늦은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는데, 술에 취해서 어머니 괜찮냐고 울면서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사실 울면서 말씀을 하셔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고 했다. 

이름을 기억하냐는 말에 동생은 00이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어머니와 예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시설에서 나와서 일본 자수를 하는 곳에서 만난 친구 중에 가장 친했고 엄마에게 잘해줬다고 했던 그분이었다.


동생에게 번호를 물어서 다음날 직접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을 말하니 이모는 흐느끼며


"어떡하냐고.... 괜찮냐는 말을 반복하셨다."


밝은 목소리로 이모의 안부를 여쭙고 연락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이모는 괜찮다면서 본인이 엄마를 보러 가고 싶은데, 교통편이 불편해서 시간을 맞추기 힘들다고 하셨다. 대신 이모 집에 엄마가 올 수만 있으면 하룻밤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모에게 서울 올라갈 일이 있으니, 어머니를 모시고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이모는 정말이냐면서 너무 좋다고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며칠 후 서울 집에 가서 엄마에게 친구 집에 갈 거라고 하니 엄마는 기분 좋아하셨다. 이것저것을 챙겨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뒷자리에서 엄마는 친구 이름을 부르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00는 나한테 참 잘했는데, 옛날에 나한테 옷도 사주고 결혼하기 전에 같이 여행도 가고 했는데... 근데 난 걔 남편이 싫더라... 우리 00을 고생만 시키고..."


마음속에 있는 진심들이었다. 올림픽 대로는 엄마의 속사정도 모르고, 끝도 없이 막히기 시작했다. 한동안 차가 움직이지 못하니 뒷자리에서 엄마는 답답해하며 언제 도착하냐고 계속 묻기만 했다. 2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고서야 겨우 이모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 근처에 가니 골목에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모는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며 엄마를 포옹했다. 엄마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왜 이런 일이 너에게 생기는 거냐고 한탄하고 또 한탄했다. 곁에서 바라보는 나는 이모가 받은 충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우리 형제는 살기 위해서 그동안 더 담담해졌다. 처음에 치매 증상이 나타나면서 동생과 함께 이야기를 할 때는 나보다 여린 동생은 항상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울지 않는다. 

이미 벌어진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그저 앞으로 감당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야만 했다. 


언제나 위기가 닥치면 나를 바라보던 우리 가족들이었기에 나는 더 강해져야만 했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버티고 이겨내야만 했다. 하지만 이모는 달랐다. 정말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변해버린 친구의 모습에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본인이 더 여유 있게 살았으면 얼굴을 자주 봤을 텐데...라는 후회의 말을 끝도 없이 반복하며 엄마의 빰을 어루만지고 또 포옹하고 만지기를 반복하셨다. 


골목에서 한참 동안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이모는 잠시 이모 집에 들어와서 차 한잔을 먹고 가라고 했다. 이모가 사는 집은 반 지하였다.  나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이토록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렇게 어렵게만 살아야 하는 이 현실에 밉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모는 너무도 밝고 밝았다. 

잠시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는 동안 이모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마땅히 드릴 것이 없어서 내 책을 선물로 드렸다. 이모는 엄마랑 가고 싶은 곳들을 나에게 어린아이처럼 말해주면서 엄마랑 내일 갈 거라고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엄마가 좋아했다던 남한산성도 갈 거라고 했다. 

우리 자식들도 버거워서 어느 순간 포기해버린 그런 평범한 나들이를 이모를 계획했다. 

엄마를 모시고 어디 다니기 조금  힘들 거라고 말하는 내게 이모는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아, 나랑 다니면 다 잘할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그동안 힘들었을 텐데 동생이랑 편하게 하룻밤이라도 시간 보내.."


그 다정한 말 한마디에서 나는 사랑을 느꼈다.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위로를 전하는 듯했다. 잠시 잊고 지냈던 엄마의 사랑이 다시 떠올랐다. 언제나 본인보다 자식들을 위해 서운한 감정도 숨기고, 힘들어도 참고, 줄 것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주려고 애쓰는 엄마의 사랑이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고 이모집을 나섰다. 엄마는 맑은 미소로 나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머릿속은 텅 빈 공간이 돼버린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겁게 짓누르던 무게감에서 잠시 해방된 것처럼 통증이 사라진 것 같았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산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 전혀 예상도 못했다.'


사고치 던 아버지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어서 어머니의 위암 소식은 우리 형제들 가슴에 큰 구멍을 냈다. 힘들게 5년이라는 시간을 넘겨 전이 없이 완치되는 어머니의 삶을 기대하고 기대했는데, 우리 앞에 나타난 치매라는 병은 모든 생각과 희망을 멈추게 만들었다. 마치 고통의 물레방아를 끝없이 달리는 그런 느낌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보니 이모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들이었다. 살면서 웃는 날보다 슬픈 날이 많았던 엄마에게 이런 식으로라도 웃음이 찾아온 것에 다시 한번 위안 삼았다.


이모에게 고맙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동생과 저녁을 먹었다. 동생은 이모에게 전화받은 첫날 너무 놀랐다고 거듭 말했다. 얼마나 엄마를 아끼는지 전화기 너머로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고 했다. 

자식은 참으로 이기적이다. 엄마는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친구들, 좋아하는 옷 색깔, 좋아하는 이상형 등 모든 것을 알고 있는데 자식이라는 놈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것이 참으로 부끄러웠다. 

살면서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묻지도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저 받기만 하느라고 사랑하는 한 사람에게 소홀했던 모든 시간들이 후회스러웠다. 분명 엄마도 꿈 많던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텐데 우리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무수한 것들이 엄마 인생에 남아 있을 텐데, 나는 이기적으로 내 것만 엄마한테 요구했다. 

이제는 물어보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살지만 그래도 나중에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꼭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같이 잃어버린 그 꿈을 찾기 위해 도와드리고 싶다. 


우리 꼭 다시 태어나도 다시 만나요. 그때는 아들이 정말 잘할게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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