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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Aug 29. 2021

#18. 엄마가 넘어졌는데, 동생이 내게 화를 냈다.

어깨뼈가 골절된 어머니

어머니 생신과 내 생일 축하를 마치고 서울로 가기 전 딸아이가 키즈카페를 가고 싶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키즈카페로 향했다. 외동으로 항상 외롭던 딸은 할머니와 삼촌과 함께 키즈카페에 가니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놀기 시작했다. 딸은 할머니가 치매인지 몰라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엄마를 이곳저곳 끌고 다녔다.


 증상이 악화될 수도록 손녀딸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져 가는 엄마는 함박웃음을 머금고 행복하게 끌려다녔다. 가만히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어쩌면 이게 엄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생일 선물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2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딸도 엄마도 지쳤는지 앉아 있기도 했다. 키즈카페 종료시간이 다가와서 나는 동생에서 천천히 어머니를 모시고 차에 먼저 가있으라고 했다. 가족과 함께 떠날 준비를 했고, 계산한 후 마지막으로 내려갔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어머니는 신음으로 내며 주차장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아내는 딸아이를 데리고 그냥 걸어서 가겠다고 나를 보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피해버렸다. 동생은 화가 난 표정으로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뭐하는 거냐면서 먼 일이냐고 동생에게 다그치며 물었다.


"엄마가 뛰지 말라니까 말 안 듣고 뛰다가 주차장 돌에 걸려 넘어졌어."


동생은 분노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폭발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우리 형제 모두 다혈질이었다. 성격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내 경우 군대에 낮은 계급으로 15년 넘게 살았더니, 많은 통제와 절제를 삶을 통해 터득할 수 있었지만 아직 동생에게는 수양의 시간이 부족했다.


동생에게 멍하니 보지 말고 어머니를 같이 부축하자고 했다. 어머니를 일으켜 세우는데 엄마는 눈문을 흘리며 어깨가 아프다고 애기처럼 말을 했다. 순간 그냥 넘어진 게 아닌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오른쪽 어깨를 건들지 않아도,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엄마는 신음소리를 냈다. 옆에 엄마를 원망하는 눈초리로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동생을 보고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머니를 차에 태우고 동생에게 한마디 했다.


"넌 엄마가 다쳤는데 뭐하는 짓거리냐?"


동생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며 말했다.


"형은 암말도 하지 마, 엄마 모시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순간 당황했다. 물론 힘든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어하는 동생의 모습을 보았다. 동생은 내게 엄마를 모시고 당장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나는 지금 상태도 파악이 안 되는데 4시간 동안 차에 태워서 가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니 일단 동네 큰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내게 분노를 표출한 동생은 민망한지, 미안한지 순수하게 나를 따랐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상황을 말하고 급하게 응급실에서 엑스레이와 간단히 진료를 봤다. 엄마는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곧 의사 선생님이 검사 결과를 확인하더니 어깨뼈가 골절됐다고 말했다. 치매로 인지장애 증상이 심해지는 것도 모자라서 오른쪽 어깨뼈가 골절된 것이었다. 아파하는 엄마를 앞에 두고 머리가 터질 것처럼 복작해졌다. 수술을 하게 될 경우도 고려해야 했고, 장기요양 등급이 인지라서 무엇인가 조치하는데 제한사항도 너무나 많았다. 일단 간단한 어깨 보호대를 착용하고 진통제 처방을 받았다.


 수술 여부 확인을 위해서 정밀검사를 의사는 권유했지만, 연고가 있는 서울에 근처 병원에 가는 게 현명하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로 보호자 입장은 한 명으로 제한돼서 동생은 초조하게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를 부축해서 밖으로 내가 나오자 동생은 한 걸음에 다가왔다.


"엄마 어깨뼈가 골절됐단다.."


동생은 심하게 자책하고 있었다. 어린아이 돌보듯 옆에 부축해서 주자창을 내려왔더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라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일단 처방된 약을 어머니에게 먹이고 동생에게 천천히 병원으로 모시고 갈 것을 권했다. 우리 집에 도착해서 빠르게 엄마와 동생의 짐을 챙겨서 바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동생은 아까 내게 큰소리친 게 미안했는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동생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형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해결책을 마련할 테니 좀 만 참아...... 엄마한테 화내지 말고 너 나중에 후회된다. 형처럼"


동생은 알겠다고 짧게 대답하고 서울로 차를 돌렸다. 동생이 떠나고 주차장에서 홀로 서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지 않은 일만 계속 생기는 걸까?, 이번 난관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동안 동생은 얼마나 힘들어했던 것일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내가 무너지면 안 되는데 나조차 흘러내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치매환자가 된 후 삶은 달지고 있었다. 보호자들이 받는 심리적인 충격과 스트레스도 환자만큼이나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어떤 시간을 보내 던 시간은 흘러가겠지만 이런 시간은 역시나 고통스러웠다.


치매는 환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어려운 길을 안내한다. 너무 험난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버려진 것만 같았다. 제발 수술이나 추가적인 골절이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동생이 서울에 도착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기다리는 게 전부라는 것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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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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