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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Sep 11. 2021

#19. 엄마 몰래 집을 팔기로 결심했다.

미안해요. 하지만 더 좋아질 거예요.

결국 어머니는 골절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동생이 일하는 병원에서 재활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안 좋은 일이 몰려와서 지쳐가고 있던 우리 형제에게 병원 원장님의 배려는 우리에게 쉴 틈을 주었다.


어머니 입원을 진행하고 나는 동생과 중대한 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부터 엄마 집인 지금 살고 있는 빌라 처분에 대해 많은 상의를 했었다. 어머니의 첫 집이자 새집이었던 그 집은 물건 하나하나 어머니의 손결이 묻어 있는 엄마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치매가 오기 전에도 재테크 목적으로 나는 아파트로 이사하자고 엄마를 몇 번이나 설득했다. 혹시나 돈 때문이라면 돈은 지원해드린다고 계속 말했지만, 엄마는 고집을 부리셨다. 물론 당시 추천했던 아파트로 이사했다면 적어도 많은 경제적 이득을 봤을 테지만,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엄마의 의견을 존중하게로 했었다.


50세가 넘도록 자기 집 하나 없이 서럽게 살다가 비록 자식들에게 손 벌려서 어렵게 산 빌라였지만, 어머니의 전부이기도 했다. 아직도 당시 엄마가 행복해하며 거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 전 새 집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히 기억났다. 그래서 당신만 행복하다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몇 년 뒤 치매는 모든 상황을 다르게 만들었다. 이사를 고려한 이유는 우선 증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다른 곳으로 이사해서 빨리 적응을 시키기 위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변두리 서울 빌라촌인 지금 동네는 차도 많이 다니고 언제나 복잡했다. 혹시나 길을 잃어버리거나, 사고라도 날까 봐 항상 불안했던 우리 형제였다. 무엇보다 현재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동생이 이사를 하고 싶어 했다. 


동생은 조금 한적한 곳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고른 빌라였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 집이 싫었다. 그 집으로 이사하고 우리 집은 단 한순간도 마음 편했던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빚으로 우리를 힘들게 했고, 어렵게 빚 문제를 해결하자 바로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2년의 간호 끝에 아버지를 보내고, 그해 말 어머니도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마지막은 치매였다. 시세보다 약간 저렴했던 신축빌라는 사방이 다른 빌라에 둘러싸여 있었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음기가 가득한 곳에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물론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부 인테리어를 많이 신경 썼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집으로 이사 와서 모든 일이 벌어진 것처럼 항상 찝찝했다.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더 큰 재앙이 우리를 덮쳤다. 게다가 동생과 엄마는 가위에 눌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엄마가 잠시 입원 한 사이 집을 처분하고 싶었다.


결국 우리는 이사를 결심하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어머니가 집에 계실 때도 몇 번 시도했지만 중개사 분들이 집을 보러 오면 엄마가 못 들어오게 해서 몇 번이나 실패했었다.

치매 증상이 심해지면 특히, 인지에 문제가 생기면 정상적인 대화나 설득이 절대 안 된다. 오로지 어머니는 어머니 만의 세상에 사는 것만 같았다. 무조건 고집만 피우고, 싫은 것은 싫다고 표현하는 것들이 매일매일 늘어났다. 그중에 하나는 집을 파는 것이었다. 


엄마가 우리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전혀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 집이 어머니에게 너무 소중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다시 집을 내놓고 나니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나를 괴롭혔다. 얼마나 아끼고 좋아했던 엄마의 첫 집이었는데 그렇게 남에 손에 넘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나를 한없이 고통스럽게 했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이 떠돌아다녔다.


'어머니가 퇴원해서 새로 이사한 집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과연 내가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일까?'

'이사를 가서 엄마가 적응을 못하게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는 동안 부동산에서 많은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집값 상승과 전세가 자취를 감춘 것 때문에 서울 변두리 빌라도 귀한 물건이 된 것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정말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문의도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은 정말 달랐다. 게다가 시세도 제법 올라 있었다. 


나는 주변 시세를 철저히 확인하고 매입가보다 6천만 원 정도 높여서 내놓았다. 그런데 산다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에 놀랐다. 자세히 물어보니 갭 투자를 하는 투자자였다.

순간 집을 팔지 말까? 고민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사를 가는 것이 더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그냥 밀어붙이기로 했다.


기회가 왔을 때 동생이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었다. 아픈 엄마를 모시고 살면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나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묵묵하게 그 옆을 지켜주는 게 그저 고마웠다.


그리고 좀 더 밝고 환하고 밝은 집으로 이사하면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라는 작은 희망을  품었다.

가계약을 마치고 우리는 경기도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마침 예전에 투자를 할 때 거래했던 사장님의 소개로 정말 막힌 곳도 없고, 저렴한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마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전셋집도 바로 계약하고 나와 동생은 분주하게 이사 준비를 했다. 


그나마 생긴 조금의 차액은 엄마를 위해 쓰기 위해 계획을 하고 이사 날짜를 잡았다. 모든 일을 진해하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에 입원 중인 엄마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다. 한편으로는 미안했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이라고 우리 형제는 서로를 위로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지금까지는 그저 집 터가 좋지 않아서 그랬던 거라고....

엄마도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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