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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Oct 03. 2021

#20. 엄마를 잃어버렸다.

엄마 항상 아들 손 꼭 잡아야 해.

이사를 마치고 전셋집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중증 치매 환자에게 새로운 환경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설명은 들어서 우리 형제는 정말 많은 걱정을 했다. 그래서 퇴원 후 동생과 나는 일주일씩 시간을 내서 엄마 곁에서 적응을 도와드리고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혹시나 집 밖을 나가면 다시 못 돌아오까 봐 반복적인 교육이 필요해 보였다.


퇴원을 하고 집으로 간다고 하니 엄마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데 도착한 곳이 예전 집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머뭇거렸다.


"여기 우리 집 아니잖아.. 집으로 가자...."


나와 동생은 한숨을 쉬었다. 달래고 달래서 겨우겨우 안으로 들어갔다. 최대한 이사한 집에 모든 가구 배치를 예전과 동일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엄마는 여기가 어디냐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치매가 진행되면서 감정표현이 격해지는 횟수는 늘어났다. 물론 그런 이유로 병원 입원 기간 동안에도 문제는 계속 발생했다.  

싫으면 싫다고 주변 의식을 하지 않고 바로 말로 표현해 버려서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샀다. 치매 전문 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것도 큰 문제였다. 동생은 곤란한 상황에 많이 놓였지만, 넘어져서 어쩔 수 없이 병원 신세를 진 것과 코로나로 받아주는 병원도 없는 이 시점에 이렇게 배려를 받아서 자기가 일하는 병원에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여기며 가슴으로 모든 것을 눌러대며 참고 참았다.

엄마는 남에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하고, 치료 시간에 치료사에게 욕설을 하기고 하고, 간호사의 통제를 따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 중에도 우리 형제의 가슴을 타들어 갔다.



나는 엄마한테 단호하게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말했다. 엄마한테 2년만 여기에 살고 다시 예전의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2년, 2년, 2년을 반복하면서 내 뻔한 거짓말을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겨우겨우 엄마를 모시고 가서 TV를 틀어주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영화가 나오자 바로 잠잠해졌다. 마치 말 안 듣는 딸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면 바로 조용해지는 것처럼 엄마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집중해서 영화를 봤다. 그리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웃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은 힘든 오늘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아무 사고 없이 이렇게 엄마가 빨리 적응하기만 바랬다.


다음날 동생은 출근을 했다. 나는 집 정리를 하고 엄마를 모시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엄마는 적응하기보다는 새로운 환경에 나오니 예전 집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다시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현관문 비밀번호도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기억하지 못하고 예전 비밀번호만 반복해서 눌렀다. 엘리베이터도 혼자 타지 못 했고, 한 층에 3가구가 있는데 이사한 집도 찾지 못했다.


나는 엄마가 영원히 이 집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에 미친 듯이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시 예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이미 다른 사람의 집이 되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었다.


결국 분위기 전환을 위해 엄마를 모시고 이마트에 갔다. 예전 집도 근처에 이마트가 있었는데 엄마는 이마트를 보자마자 반가워했다. 엄마가 암 수술을 하고도 꼬박 10년을 매일같이 출근했던 곳이었다. 엄마는 이마트에 들어가기 전까지 동네 식당 주야간 일을 하면서 몸을 혹사시켰다. 물론 못난 신랑을 만난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마트는 엄마한테 정말 좋은 직장이고 좋은 기억이었다. 그곳에서 동료들도 만나고, 서로 힘들 때 위로도 해주고 때로는 저녁도 같이 먹으며 다시 엄마에게 살아가는 희망을 안겨 준 고마운 일터였다.


이마트에서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내 옆에서 붙어서 손을 꼭 잡고 다녔다. 작고 거친 손은 엄마의 고된 삶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엄마랑 걷고 있으면서도 문득 이런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길한 잡념이 내 머리를 점령했다. 겨우겨우 나쁜 생각을 떨쳐내고 식료품 코너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는데 갑자기 엄마가 대변이 나올 것 같다고 내게 말했다.


최근 들어 실수 몇 번 한 적이 있어 나는 당황스러웠다. 점원은 내부에 화장실이 없다고 말하며 가까운 곳은 직원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이 있다고 안내해주었다.

직원 통로로 들어가서 엄마를 여자 화장실에 안내하고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직원 통로라면서 나가서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통로가 하나기에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길은 이곳 한 곳이니 이쪽으로 분명 나올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직원에게 말하고 화장실로 바로 달려갔다. 여자 화장실 문 앞에서 엄마를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직원들이 몰려왔고, 무슨 일 인지 물어봤다. 나는 상황을 다급히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여자 직원분이 다급하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손님,,, 아무도 없는데요..."


당황한 나는 여기 출구가 또 있냐고 묻고 또 물었다. 직원들은 출구는 아니지만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고 말을 했다. 나는 바로 다른 통로를 안내받고 뛰어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도 엄마는 없었다. 

나는 직원한테 방송을 부탁하고 진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엄마를 잃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한참을 매장 뛰고 또 뛰었다. 혹시나 해서 밖으로도 나가서 몇 번이나 둘러봤다. 

그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다. 핸드폰도 없었고, 엄마에게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우리들 전화번도 기억하지 못했고, 집이 어딘지도 몰랐다. 이곳은 엄마에게 새로운 세상이었다.


30분이 마치 30년처럼 느껴졌다. 눈앞이 깜깜하고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퇴원할 때 위치추적기를 살까? 말까? 잠시 고민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나는 주저앉았다. 엄마를 잃어버린 식품 코너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쳤다. 어딘가 있다가 나타났는지 엄마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는 뭔가 안쓰러운 듯 내 눈을 바라보며 태연하게 말했다.


"사탕..."



그런 엄마에게 어디로 나왔는지? 뭐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어떤 질문도 의미가 없었다.

대신 엄마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아들이 걱정했잖아... 미안해 내가 다음부터는 문 앞에 꼭 서 있을게.. 화장실 잘 다녀왔어? 배고프니까 우리 뭐 먹을까?" 


엄마는 웃으며 내게 말했다.


"사탕" 


나는 작고 거친 엄마 손을 다시 잡고 사탕을 사러 갔다. 그리고 다짐했다. 다시는 이 작은 손을 놓지 않겠다고 엄마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항상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겠다고..




저자의 첫 번째 고백, 아버지와 사연을 담은 슬픈 가족 이야기 [보잘것없는 사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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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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