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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02. 2021

혼인신고 날 자살을 시도했다.

그냥 살다보면 살아진다. (1화) - 소설

고속도로 달리는 차안에서 눈을 감아본다.

"이대로 죽어버릴까?" 몇 초가 겨우 지났지만 몇 시간처럼 느껴진다.

이마에는 벌써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눈을 뜨고 다시 핸들을 잡는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졸음쉼터에 차를 주차하고 담배를 피운다.


"방금 뭐를 하려고 했던거?? 자살인가??"


그날 아침  혼인신고를 하러 여자친구 직장 근처로 갔다. 설레고 자랑하고 싶고 행복해야만 하는 그 순간에도 신랑이 될 그 남자의 얼굴에 걱정만 가득하다.


"엄마.. 나 결혼하면 안 될 거 같아,,,,,,,,,"


혼인신고 며칠 앞두고 엄마에게 불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외국인이라도 착하고 너 좋아하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고 결혼하기 전에 월래

다 불안해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잘 살 거야..."


아무리 힘든 일에도 척척 스스로 모든 일을 해내면서 살아오던 큰 아들의 속마음에 엄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내색 안 하던 아들이 걱정도 되었지만 계속 흔들리게 둘 수는 없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고민중 이다. 30대 초반이고 아주 가난한 집안에 사고 치는 아버지 밑에서 큰 아들 노릇을 아주 성실히 하면서 집안에 기둥 같은 존재이다. 민중이는 항상 생각이 많다.


혼인신고를 앞둔 이쁜 여자 친구는 서양인이다. 민중씨가 일을 하면서 신분상승을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한 영어가 인연의 다리가 되어 만나게 되었다. 왠지 다른 느낌, 한국 사람들처럼 속물이 아닌 것 같은 신성함과 데이트할 때 계속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민중씨가 3년 동안 데이트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실 민중씨는 연예 경험이 나름 많은 편에 속했다. 첫사랑을 시작으로 열명이 넘는 여자와 사귀고 데이트를 했다. 문제는 오래 사귄 경험은 첫사랑이 전부였다는 것이다.


20대 중반이 되면서 직장생활에 영어공부까지 하면서 여자를 만날 시간이 없었고, 무엇에 푹 빠져 있다 보니 외롭지도 않았다. 그런 오랜 솔로의 시간이 지나고 29살쯤 갑자기 많은 인연들이 나타났다. 사실 양다리를 걸치거나 이곳저곳 탐색을 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지만 성품이 정직해서 한 사람을 택했다. 그게 바로 외국인 여자 친구였다. 그때는 결혼해서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신기한 경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 친구와 함께 혼인신고를 하러 구청에 들어가는 민중씨는 티가 날 정도로 표정에서 싫은 티가 난다. 이것을 감지한 여자 친구는 민중씨의 눈치를 살핀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억지로 혼인신고서를 잡아들고 펜을 잡는 모습을 보며 여자 친구는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안 그래도 찜찜한데 앞에서 울고 있는 여자 친구를 보니 민중씨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별을 직감한 것일까? 서글프게 우는 그녀를 보며 민중씨는 다시 한번 생각한다.


"왜..? 이 여자랑 헤어지지 못하고 몇 년을 만난 걸까?"


호기심도 있었지만 도피도 있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초반에 데이트를 하면서 여자 친구 나라에 가서 사는 상상을 했다.


"미국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이 지긋지긋한 한국생활에 마침표를 찍어줄 구세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랑해서 만나고 사랑해서 평생을 약속해야하는데 민중씨는 처음부터 사랑보다는 다른 목적과 다른 결말을 생각하고 이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민중씨는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집안도 어려웠고, 학교 성적도 계속 떨어졌다. 큰 문제없이 학교를 다녔으나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을 잠시 경험하기도 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숨고 싶었다. 다시 새 출발을 한다는 생각으로 자퇴를 했는데 돈 버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그렇게 미성년자 신분으로 이곳저곳에서 일을 하다가 채팅으로 첫사랑을 만났다. 서로 온라인에서 채팅으로 밤새도록 이야기도 하고 전화통화도 하면서 얼굴이 궁금해졌고 동대문에 첫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에 민중씨는 그녀에게 빠져버렸다. 다행히도 그녀도 민중씨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연인이 되었고 불타는 사랑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민중씨 인생은 언제나처럼 쉽지 않았다. 첫사랑 여자친구 엄마가 민중씨를 너무 싫어했다. 집요하게 민중씨를 파고들었고 자퇴생 신분이라는 것을 결국 알아냈다. 그 이후로 태도가 달라졌고 민중씨는 첫사랑을 만나는데 어려움을 경험했다. 민중씨 어머니가 운영하는 분식집도 찾아와서 돈도 없는 집안의 자퇴생 장남인 것을 알고 난 후 그들의 만남은 정말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반대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더 갈망했다. 사랑을 더 깊어져만 갔다. 가출도 시도하고 서로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기도 했다. 미친 사람들처럼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키스, 첫경험, 가출, 임신 등 민중씨에 정말 많은 추억과 아픔을 안겨준 어리숙하고 준비가 안되서 더 아름다운 그런 사랑이었다.

그들은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몇 번의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결국 성인이 되었다. 그쯤되니 자연스럽게 아줌마의 반대도 관심도 약해졌다. 하지만 민중씨는 트럭을 몰고 다니며 배달을 하고 있었고 첫사랑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캠퍼스를 즐기고 있었다.


민중씨는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다. 아니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그녀랑 살면 민중씨가 행복할거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대학교에는 정말 더 멋지고 능력있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었고, 그녀에게 관심을 던졌다. 그들은 그럼에도 정들고 오래된 커플이 버티는 것처럼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민중씨가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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