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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06. 2021

사람이 변하더라

그냥 살다 보면 살아진다.(2화) -소설

민중이는 군대에 가고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끝도 없는 부조리는 아무리 또래보다 사회경험이 많아도 그를 한순간에 굴복시켰다. 그저 버틴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일주일에 한 번 공중전화를 시켜주는 시간이 오면 오로지 여자 친구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변해있었다. 오랫동안 통화도 못하고 뒷사람 눈치를 보느라고 몇 마디 하지 못했다. 여자 친구 핸드폰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 소리로 시끄러웠다. 불안했지만 민중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군대라는 곳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앉으면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 식사 시간도 막내라고 수저통을 옆구리 끼고 챙기고 다니는 바보 같은 행동도 이제는 평범하게 느껴졌다. 그가 적응을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민중이 스스로 사회와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100일을 버티면 휴가를 간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가난하고 희망이 없고 지쳐서 쳐다보기도 싫었던 밖이었지만 민중이는 휴가를 가서 여자 친구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렇게 위로를 받으면 그동안 군대에서 이등병으로 고생했던 시간들이 치유될 것 같았다. 하지만 100일을 버티는 동안 여자 친구에게 편지가 한통도 오지 않았다. 불안했다. 같이 동반으로 입대한 친구 놈은 일주일에 한통씩 편지가 오는데 민중이는 그저 마음을 마음 한편으로 여자 친구가 바빠서 그렇다고 믿고 싶었다. 군대라는 곳에 오면 누구나 경험하는 그런 이별에 아픔을 경험할 준비를 천천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긋지긋한 사회생활에서 잠시 탈출한 시원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완전히 단절된 또 다른 세계 그것이 군대였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제 민중이는 집안에 해결사 노릇을 할 수 없었다. 그는 철저하게 군대 속에 민중이었다. 가끔 엄마에게 전화를 하면 그저 별일 없냐는 심심한 답변만 돌아왔지만 말썽 피우는 아빠를 잘 감당하고 있을지 민중이는 항상 걱정이 앞섰다. 

이제 휴가는 10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임들은 막내들이 휴가를 나간다며 전투화도 닦아주고 옷도 손질해주면서 얼룩무늬 전투복을 주말에 손봐주고 있었다. 하지만 큰 훈련을 마치고 다음날이 휴가 출발 날이어서 걱정이 되었다. 


4박 5일 동안 야외훈련은 민중이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체 무거운 군장과 총을 들고 이리저리 저리 다니며 군장을 풀고 앞을 보고 군장을 들고 이동하고를 반복했다. 저녁에 되면 진지 사이에 침낭을 덮고 누워서 산속에서 교대로 잠을 잤다. 

입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래도 마지막 전술행군만 마치면 휴가라는 생각에 밤하늘에 별이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모든 훈련 일정을 마치고 행군으로 부대로 복귀하는 일만 남았다. 산에서 비닐봉지에 싸진 정체를 모를 밥을 먹고 행군을 출발했다. 군장은 시간이 갈수록 어깨의 감각을 무너트렸다. 발바닥은 점점 뜨거워졌고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평소 멍청해 보이던 선임들도 나름 선임이라고 익숙한 듯이 걷는 모습을 보며 민중이는 참고 또 참았다. 열외 하면 영원히 복귀해서 시달릴 것 만 같았다. 아니 열외는 불가능했다. 목이 타들어가는 목마름을 느껴서 잠시 휴식시간에 수통에 물을 마시려고 하니 분대장 와서 수통의 물을 모두 바닥에 버렸다. 민중이를 보면서 분대장은 말했다.


"물 많이 먹으면 탈수해,,, 먹지 마."


다른 건 몰라도 물이 가장 필요했는데 물을 버리고 떠나는 분대장이 죽도록 미웠다. 이제 겨우 5시간 걸었는데 아직 5시간 남았다고 했다. 민중이는 다음날 아침에 휴가 출발할 생각만 하면서 버티고 또 버텼다. 새벽이 다가오고 온몸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50분을 걷고 10분을 쉬는 동물 사육과 같은 반복적인 패턴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휴식 시간에 군장을 내려놓으면 그대로 길바닥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출발이라는 말 한마디에 기계처럼 군장을 메고 일어났다. 

걸으면서 잠을 잔다는 선임들의 말을 한 귀로 듣고 비웃음으로 넘겼는데 자신도 모르게 걸으면서 졸고 있는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버티고 버텨서 드디어 민중이 눈에 위병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그토록 싫었던 곳인데 훈련을 마치고 본 위병소는 그 무엇보다 반가웠다. 꼭 내 집에 도착한 그런 묘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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