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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07. 2021

기댈 곳을 잃어버린 한 남자

그냥 살다보면 살아진다.(3화)-소설

물집으로 걷는 것도 힘든 민중이는 아픈 내색 없이 중대장에게 100일 휴가 출발 신고를 했다. 얼마나 참았던가... 어제 새벽에 행군으로 들어온 위병소를 다시 나가는 느낌은 다시 태어난 듯한 황홀함이었다. 위병소를 나오자마자 위병소 공중전화로 뛰어갔다.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바쁘겠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불안했다. 기다리고 있던 동기들과 부대 앞에서 간단히 낮술을 한잔하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군 입대 후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누워서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나 마음대로 먹는 거,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자마자 현실로 돌아온 느낌을 받았다. 반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님은 모두 일을 하고 계시느라 민중이게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텅 빈 집에 도착해서 다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핸드폰을 받지 않았다. 


이렇게 이별통보를 받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미 끝난 것을 민중이만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17살부터 사귀는 동안 정말 미친 듯이 사랑을 했다. 바라만 봐도 너무 행복했고 모든 첫 경험과 아픔을 함께 공유한 그녀는 민중이에게 각별했다. 어쩌면 부모님 다음으로 민중이를 잘 아는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만큼 실수도 많이 했다. 다혈질인 민중이는 첫사랑에게 화를 많이 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민중이가 가난한고 자퇴생이라고 만남을 반대했던 것이다. 성인이 돼서도 만남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약간 포기하신 듯했지만 그들은 떳떳하게 만남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그리고 자신을 싫어하는 첫사랑의 어머니를 민중이는 피해 다녔다. 가난한 게 죄도 아닌데 피해 다녔다. 아줌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었지만 민중이는 자퇴생에 일용직이나 하는 그런 볼품없는 존재였다. 


민중이는 입대하기 전날을 떠올렸다. 민중이 어머니와 여자 친구 그리고 민중이는 같이 식사를 했다. 사근사근하게 말을 엄마에게 대하는 여자 친구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민중이 엄마는 민중이를 정말 믿었다. 아들로서, 남자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믿어주었다. 

그날도 식사를 마치고 좋은 시간을 보내라고 하면서 자리를 피해 주었다. 민중이와 여자 친구는 모텔로 향했다. 마지막 밤이 될 거라고 민중이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만약 그날이 그녀와 마지막 잠자리인 것을 알았다면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평소 특별한 표현을 하지 않던 그녀가 그날은 관계를 마치고 이야기를 하던 중 한번 더 하자고 제안하였다. 민중이는 군대 입대할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서 웃으면서 몰 또 하냐면서 웃었다. 그리고 먼저 잠이 들어버렸다.

아마 그날 민중이 여자 친구는 마지막 밤인 것을 알고 있었던 거 같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민중이를 한번 더 느끼고 싶었던 것이다. 키스를 어떻게 할 지 몰라서 하고 싶다고 말했던 순수한 남자가 민중이였다. 귀여운 외모지만 나름 대담했던 여자친구는 눈을 감아보라고 하면서 민중이게 먼저 키스를 해줬다. 그렇게 순수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으로 시작한 그들의 스킨십은 그렇게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민중이는 어두워진 창 밖을 바라보며 다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저녁이 돼서 민중이는 불편한 마음을 담고 동네 친구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술을 먹으면서도 여자 친구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민중이는 지금 이 시간 그녀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상상하며 100일이라는 시간을 버텼다. 하지만 그녀는 민중이 인생에게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겉으로 강한 척 하지만 한없이 눈물 많고 연약한 민중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에 민중이는 절망했다. 그녀는 유일하게 하찮은 민중이에게 용기를 주고잘 하고 있다고,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위로를 해준 하나뿐인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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