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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07. 2021

눈떠보니 결혼식장

그냥 살다보면 살아진다.(4화)-소설

고민중씨는 머리가 복잡하다. 아침 4시에 일어나서 강남으로 영혼 없이 운전을 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아내가 강남에서 메이크업을 한다고 해서 픽업을 가는 길이다. 외국인과 결혼하면 간단할 줄 알았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복잡하다. 결혼식장도 집 근처에서 하려고 돌아다녔는데 야외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그나마 창이 있는 외곽에 잡았다. 미국에서 가족들이 오기 힘들어서 비행기 값을 주고 누나들을 초대했다. 

민중이는 강남으로 향하면서 이 결혼을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 하지만 불안함을 느끼는 아내는 밀어붙였고 민중씨는 결국 혼인신고를 결혼식 몇 달 전에 하고 말았다. 결혼식은 그저 하나의 행사에 불과했다. 데이트를 할 때도 왠지 모를 문화 차이와 속궁합도 맞지 않아서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하늘의 뜻인지 혼인신고 후 가진 한 번의 관계에서 아내는 임신을 했다. 

모든 것을 단념해야 하지만 민중이는 단념하지 못하고 이 불안한 결혼 생활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운전을 하고 있다. 아내가 메이크업을 마치고 다시 2시간 거리인 식장까지 이동을 한다. 평소 화장을 거의 안 하던 아내가 풀 메이크업을 하니 그 옆에 신랑인 민중이는 초라해 보인다.

이렇게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외국인과 결혼을 하게 되는구나.... 민중이는 아직도 꿈을 꾸는 것만 같다. 

결혼식장에 도착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손님이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인들이 많이 왔다. 모두 신기한 듯 몇 마디씩 건네면서 축하한다고 말을 건넨다. 민중이 친척들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얼른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라면서 모두 잘됐다고 말을 한다. 

민중이는 고민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머리가 혼란스럽다. 

입덧이 심하던 아내는 식장에 밝은 미소로 하객들을 상대한다.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마치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행복한 모습을 보니 민중이는 죄책감이 든다. 그리고 어느덧 신랑이 입장할 시간이 다가왔다.


하객들에게 어색하게 인사하면서 주례 선생님 앞에 선 민중이는 이제 모든 것을 단념한다. 

그래 이렇게 다들 결혼해서 사는 거겠지.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아내의 어머니는 몇 년 전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이혼을 했다. 서양스럽게 딸이 결혼을 하는데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 친누나 두 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파란 눈에 노란색 머리를 하고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럽다. 민중이 아버지도 작년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만 홀로 앉아서 큰 아들을 바라본다. 직업군인인 민중이는 동물원에 원숭이가 된 것만 같았다. 주례를 봐주는 대 선임인 선배님도, 친한 선배와 후배들도 수군대는 것만 같았다. 


결혼식은 한순간에 흘러갔다. 하객들에게 아내와 함께 인사를 하면서 보통 사람들이 결혼을 하는 것처럼 애써 마무리를 지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민중이는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 그동안 이렇게 억울하려고 열심히 산 것이 아닌데 꼭 조선시대에 끌려가서 시집가는 그런 신세가 된 생각을 한다. 


무엇이 여기까지 민중이를 끌고 온 것일까? 왜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을까? 

누구를 배려하기 위해서 자신을 버린 것일까? 민중이는 썰렁해진 결혼식장을 보며 한숨을 쉰다. 

아내는 옆에서 그동안 참았던 입덧을 하고 있다. 다시 한번 민중이는 생각한다. 


"이건 꿈일 거야. 내일 일어나면 나는 유부남이 아니고 총각일 거야."


불안해하는 민중이를 보면서 어머니는 말한다. 


"아이도 생겼으니 며느리한테 잘해야 한다." 


순간 더 이상 꿈은 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그렇게 민중이는 공식적인 품절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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