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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11. 2021

결혼은 현실이다.

그냥 살다 보면 살아진다.(5화)-단편소설

오늘도 민중이는 바쁘게 출근을 한다. 언제나 정신이 없는 직장에서 여유를 찾을 틈도 없이 이리저리 다니며 일을 한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끝을 낼 용기가 없었던 민중이는 이제 유부남이다. 공식적인 유부남은 직장에서 미혼, 기혼을 표시할 때 기혼자에 속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혼이지만 전혀 설렘이나 퇴근이 기다려지지 않는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면 결혼 연차가 된 선배 중 몇 명은 퇴근보다 직장에서 야근을 더 즐기는 것 같은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예전에는 전혀 이해가 안 갔는데 왠지 오늘은 그 선배 중 한 명에게 찾아가서 소주 한잔 먹자고 말을 걸고 싶어 진다. 민중이는 물어보고 싶었다. 

"선배님도 혹시 결혼할 때 별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억지로 떠밀려서 하는 느낌으로 하셨어요?"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그 선배의 입으로 듣고 싶은 심한 충동이 밀려온다. 하지만 현실은 그래도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해서 퇴근길에 빨리 오른다. 

외국인 아내는 집에 홀로 있다. 혼인 신고쯤 해서 직장 발령을 지방으로 받았다. 거부권은 없다. 이유는 민중이의 직업은 군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사랑이든 아니든 아내도 본인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묵묵히 지고 있기 때문이다. 

임신을 했지만 그렇게 호들갑이나 여러 가지 행동을 크게 하지 않는다. 아내의 생활은 단조롭다. 그래도 주변에 친구 하나도 없는 게 마음에 걸려서 주변에 친한 선배에게 이쁜 강아지 한 마리를 분양받았다. 다행히도 아내의 좋은 산책 친구가 되어줬다. 

민중이는 퇴근길에 나름 괜찮은 남편인 척 전화를 해본다. 아내의 한국어 실력이 민중이의 영어실력보다 좋지 않아서 둘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런 점이 나름 불편함을 불러온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민중이가 묻는다. 아내는 "없어"라고 답변한다. 

영화나 드라마 보면 음식 사 오라고 귀찮게 한다는데 입덧 때문인지 아내는 도통 뭐를 먹지 못한다. 주변에 친정 엄마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내의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몇 년이 되었다. 만약에 미국에 계신다고 해도 멀어서 보내는 것이나 오라고 하는 것도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집에 도착한 민중이는 아내에게 별일 없었냐고 묻는다. 아내는 하루 종일 혼자 있었지만 아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쏟아낸다. 애정이 없어서인지 공감대가 부족해서인지 솔직히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는다. 왜 이런 사소한 것 까지 말하는지 민중이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냥 말을 들어준다. 

민중이도 직장에서 최근 이슈를 말해보려고 했지만 아내는 남의 말을 잘 듣지 못하는 성격이다. 언제나 화재를 자신에게 돌려버린다. 그리고 말을 하려면 아무리 회화 좀 한다고 하는 민중이라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민중이는 오늘도 포기를 한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만큼이나 민중이도 누군가에 자신이 걱정하는 여러 가지를 말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고 민중이는 요즘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하다. 앞으로 진로를 택하는 게 가족에 좋을지? 온통 가족을 앞에 두고 생각하게 된다. 총각 때는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달려왔던 민중이는 사라진 것 만 같다. 안 그래도 시골에서 사는 게 계속 마음에 걸리고 어릴 때는 괜찮지만 어린이집부터 마음에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 아내랑 이런 부분에서 공감대를 찾기는 너무 힘들다. 

그냥 민중이는 아직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고 입을 닫아 버린다. 몇 번 시도했지만 자유분방하게 키우며 사교육에 그다지 큰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아내의 태도를 보고 대화를 잘 못하면 싸움만 될까 피하게 된 것이다. 


저녁 10시 전에 항상 잠이 드는 아내는 임신하고 9시면 잠자리에 든다. 동화책 속 나오는 착한 어린아이도 요즘 9시에는 안 잘 거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아내는 밝은 것과 소리에 매우 민감하다. 데이트할 때는 잘 못 느낀 것이지만 같이 살다 보니 여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중이는 아내를 생각해서 9시 쯤해서 밖으로 나온다. 동네를 걷고 또 걷고 해도 시간이 잘 안 간다. 그다지 취미도 별로 없고 대인관계도 소수의 사람들과 깊게 만나는 스타일이어서 민중이는 만날 사라도 없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마땅히 갈 곳도 없다.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공원에 걸어가서 벤치에 앉았다. 

마냥 행복해야 하는데 왠지 씁쓸하다. 민중이가 생각했던 결혼 생활은 이런 게 정말 아니었는데...


그때 아들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아들, 뭐해?" 차마 밖에 혼자 처량하게 앉아 있다는 말을 하지는 못한다. 

"며느리 일찍 잠들어서 운동하고 싶어서 운동하고 있어요."


엄마는 알고 있는 목소리인 듯 하지만 아들에게 격려를 해준다. 

"잘했네, 며느리 일찍 자니까,, 잘해줘. 임신했을 때 서운하게 하면 안 돼.." 


민중이는 당연히 잘하고 있다는 듯이 걱정하지 말라고 허세 부리 듯 말을 한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 나 이게 맞는 건가 싶어요..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요?"


엄마는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말을 한다. 

"네 아빠처럼 하면 안 된다." 


민중이는 순간 놀라서 할 말을 잃어버린다. 민중이와 엄마를 그리고 동생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아빠가 떠올랐다. 지금은 돌아기시고 세상에 없지만 엄마의 말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민중이는 알고 있다. 


문화 차이가 나고 결혼이라는 게 처음에 다 맞춰가는 시간이 힘들어서 그렇지 아이가 태어나면 모든 게 달라진다는 게 엄마의 생각이었다. 민중이도 그렇게 믿어보려고 마음을 가다듬고 공원을 뛰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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