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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20. 2021

준비도 안되었는데 아빠가 된다.

제6화 - 단편소설

바쁜 일상을 보내는 중에 아내의 배는 정말 명절 때 먹는 배처럼 커져버렸다. 무엇을 옆에서 해준 걸까? 사실 다정한 남편 노릇을 하지 못했다. 애정인지? 동정인지? 허망한 현실 탈피의 현택인지? 뭔지 모를 결혼을 선택하고 민중이는 참으로 답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생겨서 미칠 듯이 혼란했다. 


외국인이고 한국에서  임심을 하는 동안 아내는 많이 외로워했다. 문화도 틀리고 대화도 안되고 산부인과를 가도 시골 의사 선생님이 설명하는 짧은 영어 설명을 듣고 답답해만 했다. 가급적 휴가를 내서 같이 가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유난 떨다는 눈치를 주었다. 


직장 선배는 따갑게 말했다.

"민중아, 무슨 병원을 매번 가냐? 누가 보며 너만 예비 아기 아빠인 줄 알겠다."


재수 없는 선배라서 '재수 선배'라고 민중이는 전화번호부에 저장해 두었다.


'네,, 선배님 근데 아시다시피 외국이라서 한국어가 안돼서 제가 짧은 영어로 도와줘야 해서요..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산부인과로 가는 길에 발걸음이 무겁다. 요즘은 영어를 배운 것을 후회한다. 특히 산부인과나 병원 진료 통역을 해줄 때면 식은땀이 난다. 의학용어는 정말 돌려 쳐서 통역해줘도 민중이도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내는 계속 세부적인 것을 물어오고 그럴 때면 민중이는 이마에 짜증 살이 생긴다.


가끔 일찍 퇴근하면 집 앞에 주차장에 차를 데고 그냥 멍하니 한 시간, 두 시간 앉아서 있다가 아내가 잠들면 들어가곤 했다. 그냥 피하고 싶었다. 이렇게 애정이 없는데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어떡하지? 민중이는 걱정이 몰려왔다. 

특히, 입덧을 하는 유난이나 가끔 어머니를 보러 서울에 가면 차에서 토를 하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마도 도 미친 듯이 사랑해서 결혼했다면 그 모습도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모든 잘못은 민중이게 있는 게 분명하다.


결국, 시골 의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아내는 서울에 엄마 집으로 출산 시기를 맞춰서 올라갔다. 영어를 잘하는 대학 병원 의사가 있다는 말에 한번 방문하고 아내는 집에 와서 그 의사 이야기만 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한 달 정도 생활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아내 맘 편하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올려 보냈다. 


아내가 떠나고 다시 완벽한 솔로가 된 해방감을 느꼈다. 동료들과 늦게 까지 술도 먹고 집에서 편하게 TV도 보고, 10시 넘어서 불도 켜도 되고 이런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곧 아빠가 될 생각에 그 자유스러움도 족쇄처럼 느껴지곤 했다.


아빠가 된다면 어쩔까?? 어떤 게 좋은 아빠가 되는 걸까?? 

민중이는 멍하니 밖을 보며 생각한다. 사실 좋은 민중이의 아버지는 좋은 아빠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딱히 좋은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이미 좋은 남편은 물 건너갔고 좋은 아빠마저 안되면 민중이의 존재의 이유가 사라지는 것만 같은 불길함이 몰려왔다.

더 마음에 걸렸던 건 원하지 않던 임신을 한 터라 아이에 대한 애착도 크게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이미 산부인과에서 이쁜 공주님이라고 말까지 해줬는데 민중이는 설레고 그런 마음이 없다.

아마도 아직 눈으로 보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정신없는 월요일 출근해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도 걸렀다. 항상 이런 식이다. 직장인 그것도 고졸 학력이 들어올 수 있는 직업을 가난 때문에 택한 터라 불만을 가질 수도 없었다. 잠시 허기진 배가 콕콕 쑤신다. 민중이는 널리고 널린 밀크커피 두 봉지를 종이컵 어 넣고 정수기로 향한다. 발걸음은 흡연장으로 향한다. 한숨인지 담배 연기인지 구분 안 되는 것들이 하늘로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 갑자기 정체 모를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남편분 되시죠?"

" 네,,, 어디시죠?"


"아내분 아니가 곧 나올 거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민중이는 "네"라고 대답하고 어리둥절해한다...

갑자기 아기가 나온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 며느리 어디 갔어?"


엄마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그러게 아침에 일어나니 없더라... 아직 집에 안 왔어. 뭐 배가 뽈록 나와도 매일같이 근처 외국인 친구들 보거나, 공원에 가니까.. 아마 어디 있겠지...... 왜   아들...????"


민중이는 조금은 짜증이 났다. 그래도 며느리인데 잘 챙겨주지... 


"아니야... 병원인가 봐,, 곧 손녀딸 나온데... 나 올라가는데 4시간은 걸리니까 병원에서 봐요.."


민중이는 상사에게 보고를 한다. 그리고 황급하게 직장을 나온다. 

잠시 머리가 하얗게 변한다.. 뭘 가지고 가야 할지? 그냥 가면 되는지... 두뇌가 산소 공급이 멈춘 것만 같았다.

고속도로를 타고 제한속도보다 조금 빠르게 카메라만 피해서 악셀을 밣는다.

그래도 딸이 태어나는 건 아빠로서 보고 싶다. 

그리고 말도 안 통하는데 혼자 출산하는 아내도 마음에 걸린다.


라디오 소리도 신청곡도 들리지 않는다. 머릿속에 온통 아이 생각뿐이다. 

건강한 아이가 나와야 할 텐데... 

혹시 드라마처럼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영어 통역이 잘 못돼서 잘 못된 처방을 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나름 30년을 살았는데 이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막막하게 이 세상에 어둠 속에서 밝은 곳으로 태어나는 한 생명처럼

민중이도 아무것도 모르겠다.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다.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 내 딸아.


#출산 #예비아빠 #아빠는처음이라서 #국제결혼 #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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