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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21. 2021

아이가 태어나고 세상이 달라졌다.

제7화

과속운전을 해서 민중이는 대학병원에 3시간 조금 걸려서 도착했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예정일보다 조금 빨랐고 진통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도착하기 30분 전까지도 아이는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내 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민중이는 급하게 2층 산부인과 수술실로 향하다. 아내의 진통 소리가 들려온다. 평소 그다지 듣고 싶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민중이는 비닐로 된 옷과 장갑, 두건을 쓰고 아내 옆에 앉았다. 능청스러운 노인 산부인과 의사가 100번은 넘게 민중이를 본 것처럼 친한 척을 한다.


"고민중씨 시간 맞춰 잘 오셨네요.. 자연 분만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 의료진도 아내분이 외국인이라서 따님이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 궁금해해요.."


민중이는 생각한다.. "내 딸이 무슨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뭐가 궁금하다는 거지.."

아내는 진통이 심해져서 심호흡을 하면서 의사의 엉성한 콩글리쉬 엑센트에 맞춰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아내 손을 꼭 잡아 달라고 하는데 어색하지만 민중이는 손을 잡고 아내의 눈을 바라본다.


민중이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픈 아내 앞에서 뭘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

아픈 척을 해야 하나... 드라마처럼 오버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있어야 하나...


"뭘 한다고 나중에 기억이나 할까?"


진통과 사투를 벌이는데 갑자기 수술실 문이 열렸다. 젊은 여성처럼 보이는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우르르 분만실로 들어온다. 초록색 천으로  가려진 아내의 출산 부위를 본다.


민중이는 상황이 이해 안 가서 의사를 째려본다.

"이게 뭐죠?"


의사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아... 대학교 인턴인데요.. 아시다시피 외국인 출산이 흔한 게 아니라서요... 아버지 신경 쓰지 마시고

아내분 도와주세요"


아내는 고함을 친다. 민중이는 또 고민을 한다.

"의사에게 고함치고 나중에 싸가지로 변신할 저 의사들에게 꺼지라고 해야 하나?"

"고소 하나고 신고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곧 아이가 나온다고 간호사가 외친다. 아내의 숨소리는 더 거칠어진다.

좁고 좁은 분만실에 10명의 인턴의 숨소리와 공기가 더해지니 초미세먼지 농도가 최고인 것처럼 숨이 막힌다. 갑자기 적막이 흐른다.


"으아아... 응애.. 아... 으으앵....."


딸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피가 온몸에 묻어 있다. 생각보다 이쁜 거 같지 않다. 아니 사람이 아닌 거 같다.

민중이에게 탯줄을 달린 아이를 간호사가 안고 온다. 민중이는 매의 눈으로 딸아이를 스캔한다.


"눈, 코. 입, 팔 2개, 다리 3개, 엉덩이, 가슴....." 큰 문제는 거 같다. 다행이다."


"딸을 안고 바라보니 생각보다 이뻐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민중이는 아빠가 생각난다.

그토록 말썽만 피우고 속이 타들어가도록 민중이와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그리고 1년에 암으로 돌아가신

그 아버지가 생각난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지금 이 대학병원에서 장례도 치렀다.

아빠가 되고 나니 아빠가 가장 많이 보고 싶다."


지치고 탈진된 거처럼 보이는 아내는 딸을 옆에 안고 너무도 좋아한다. 행복해 보인다.

꼭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아내는 정말 아이들을 좋아한다. 아마도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


재수 없는 인턴들은 아직도 벽에 모기 마녕 붙어서 소곤거린다.

민중이는 의사에게 말한다.

"선생님 개인 프라이버시도 있는데 저분들 좀 어떻게 내보내세요.."


"그냥 웃으면 잠시만요 하하... 곧 나갈 거예요.. 딸아이가 이뻐요" 말을 돌린다.


민중이도 갑자기 다리가 풀린다. 자동차 레이서가 된 거처럼 운전을 해서 지방에서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점심도 안 먹었고 그날 아침도 먹지 않았다. 갑자기 허기가 진다. 딸아이는 배고픈 아빠를 바라보는 듯하다.

민중이는 이제는 갈라서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다. 그래도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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