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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21. 2021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이 존재한다.

제8화 - #딸바보 #자식사랑 #이혼은아닌거같아

민중이는 딸을 바라본다. 한없이 바라본다. 다행이도 피부는 엄마 피부를 닮았다. 눈에 쌍꺼풀도 있다. 민중이는 딸이라고 의사가 말했을 때 걱정을 했다.

"혹시 메서 운 민중이의 눈을 닮는 건 아닐까? 돼지코를 닮으면 어쩌지?"


그런데 딸의 코를 보니 민중이는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을 한다.


"젠장.... 코는 나랑 똑같네... 그래도 여자는 눈만 이쁘고 피부만 좋아도 괜찮아..."


아내는 그저 딸을 보고 또 본다.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녀 답다. 간호사가 다가와서 데리고 간다고 한다. 통역을 해주는 아내는 단호하게 말을 한다.


"안돼, 여기서 우리가 본다고 말해"


출산 후 몸도 가누지 못하는데 뭘 본다는 건지? 어디둥절하다. 민중이는 아내 말을 간호사에게 전한다. 간호사는 산후조리원을 물어본다. 아내는 조리원  같은 건 미국에 없고 3일 정도 여기서 아이를 같이 보다가 퇴원하겠다고 한다.


간호사에게 전달하니 무슨 종이 한 장을 들고 온다.

이후에 발생하는 책임은 우리 부부에게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역시 병원은 재수 없다.


민중이는 갑자기 걱정이 된다. 이거 뭘 먹여야 하나? 어떻게 안아줘야 하나? 똥이랑 오줌을 싸면 뭘 어떻게 하나.. 아내는 몸도 움직이지 못하는데...,,, 꼭 본인을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 같다.


병원에서 기저 귀하고 젖병이랑 아기 용품을 가져다준다. 분유를 먹이는 법을 알려준다면 민중이를 불러낸다. 이제 아빠가 된 게 실감이 난다.


엄마와 동생이 손녀를 보러 들어왔다. 조리원 안 가는 것과 여기서 3일 있다가 퇴원한다고 하니 엄마의 안색이 좋지 않다. 그래도 큰 아들 눈치를 봐서 그냥 참는 모습이 보인다. 동생은 그냥 무뚝뚝하게 서있다.

민중이는 잠시 아이를 가족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감염  우려가 있다고 하며 나중에 오라고 의료진이 말한다. 이건 TV에서 봤던 장면이랑 다르다. 보통은 유리창 밖에서 아이를 가족들과 보면서 말을 나누고 행복해 하던데 현실은 달랐다.


아쉬워하는 가족들을 돌려보내고 급하게 병실로 돌아간다. 딸이 울고 있다. 아내는 모유가 나오지 않는다. 암이 걸릴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암이 걸리지도 않았는데 제거했다. 그 미국배우 안젤리나 졸리 가 했다는 수술을 말이다.


아이를 어설프게 안고 분유를 먹여보려고 한다. 배가 고팠는지 조그마한 입으로 잘만 먹는다. 신기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산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시원하고 맑은 느낌이다.


 이게 바로 부모인가?


이런 생각을 한다. 민중이는 본인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엄마를 통해 천 번은 넘게 들었다. 그토록 죽을 때까지 무관심하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전혀 매치가 안되지만 아무튼 엄마는 말했다. 힘든 막일을 하다가도 점심에 들려서 항상 민중이를 보고 한번 안아주고 갔다고 한다.

사실 딸이 태어난 지 10시간도 안됐는데 그 느낌이 무엇인지 벌써 속성으로 배워버렸다. 신기하다.


딸아이와 아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삶에서 무척이나 늘어난 거 같은 생각에 마음이 조금 답답하다. 왠지 소주가 당긴다. 이제 유부남에 애 아빠가 되었으니 힘든 척, 티 내면서 살아도 될 것만 같다.


조그마한 침대에서 누어서 자고 있는 두 여자를 바라본다. 행복의 종류가 꼭 한 가지는 아닐 거라고 직감이 든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한다. 육체적 사랑, 정신적 사랑, 동료애, 부모에 대한 사랑 등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민중이는 한 가지 사랑에 대해서 실패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결혼 생활 1년도 안돼서 이혼을 밥먹듯이 생각하고, 임신 중인 아내에게 달려가기보다는 집 밖에서 만날 사람도 없는데 서성거렸다. 그런데 이런 민중이에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찾아왔다.


어떠한 보상도, 어떠한 희생도, 어떠한 한계도 없는 무한의 사랑이 가슴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를 닮은 또 다른 존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전에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아니 그 누구도 아빠가 되기 전까지는 모를 것이다. 첫사랑을 하기 전까지 그 아픔을 모르듯이, 첫 키스를 하기 전까지 그 감촉과 느낌을 모르 듯이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결혼 생활을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면 불편한 병실 구석 보호자용 침대에서 잠이 든다.


#딸바보 #다문화가족 #분유 #출산 #산후조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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