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용환 Dec 18. 2021

혹시, 우리 아이 또래보다 말이 늦나요?

14화- #어린이집상담 #통역 #국제결혼 #부부싸움 #육아

   ‘카톡’ 아내에게 온 메시지다. 하루에 몇 번 보내지도 않는 대화창을 열어본다. 어느덧 한 해가 지났는지 어린이집 상담일정을 묻는 안내장 사진을 아내가 보냈다. 어떤 내용인지 묻는다. 한국에 산지는 강사 경험까지 해서 오래되었지만, 한국어 읽기 능력은 그다지 별로이다. 노력을 별로 안 하는 탓도 있다. 근데 노력을 강요하기도 힘들다. 단지 아이와 관계된 일도 도움 없이 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었다. 아내에게 상담이라고 말해주고 며칠이 흘렀다. 아침 핸드폰 일정에 ‘딸아이 상담’이라고 뜬다. 민중이는 큰 한숨을 쉰다. 작년 이맘때도 상담을 마치고 아내랑 크게 싸웠기 때문이다. 사실 싸울 일도 아니었다. 그냥 모든 걸 다 내려놓으면 되는 일인데 그게 가장 어렵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직장에 일이 하나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상담이라고 해봐야 20분도 안 걸리는데 하루 종일 예민하다. 칼퇴근을 하고 어린이집 앞에서 아내를 만났다. 상담실로 들어가니 젊은 선생님이 앉아 있다. 선생님은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라하다가 한국말을 알아듣는 나를 바라본다.


딸아이가 어떻게 지냈고, 친구들과 관계는 어떠며,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브리핑을 한다. 조용히 듣고 있는데 아내가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선생님이 말하는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서 통역을 안 하고 듣고 있다. 근데 벌써 아내는 삐진듯하다. 사실, 작년에도 이런 상황 때문에 민중이는 화가 났던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속에서 무엇인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진다. 민중이는 최대한 짧게 아내에게 설명한다. 그래도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이다. 서로 불편한 표정을 주고받으니 선생님도 불편해한다. 약간 불편한 시간이 흐르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라며 선생님이 밝은 분위기를 유도한다. 아내는 4살도 모자란 한국어 실력으로 당당하게 무언가를 물어보려 한다. 결국 엉뚱한 질문만 하고 있는 척하는 모습에 민중이는 화가 났다. 말을 자르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언어발달이 늦나요?”


  선생님은 또래보다 조금 늦지만 큰 문제없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생일 늦어서 괜찮겠지?라고 위안하지만 엄마에게는 영어로, 아빠에게는 한국어로 듣고 따로따로 말하는 딸을 보면서 불안한 감정이 항상 앞섰다. 주변 사람들은 어린 꼬마가 영어로 말하는 걸 보면 부럽다는 말을 항상 하지만 민중이는 속만 타들어간다. 아이가 받을 스트레스와 언어로 더 단절된 거 같아 보이는 모든 게 싫었다. 이런 저련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이집을 나와 아래층으로 향한다. 딸아이가 우리를 향해 뛰어온다. 아니 너무도 작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을 보며 위안을 삼아 본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왜 통역을 짧게 하냐면서 불만을 말했다. 민중이는 딸아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냥 대꾸도 없이 집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걷다 보면 다 지난 일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걷고 또 걷는다.


  결혼이 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할 뿐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약간의 불편함이라고 하기에는 앞으로 벌어질 여러 가지 일들이 걱정되었다. 겨우 어린이집인데 나중에 초등학교를 가고 더 신경 써줘야 할 것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내가 성추행을 당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