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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10. 2021

아내가 성추행을 당했다.

13화 #외국인 #성추행 #다문화인식 #아내

 지방 출장으로 몇 일째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 딸아이 얼굴이 눈에 아른거린다. 평소 아내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다보니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카톡조차 썰렁하다. 민중이가 딸이 보고 싶을 때 영상통화를 하는거 말고 평소 다른 이야기를 서로 하지 않고 지낸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끔 전하가 오지만 그건 밖에서 뭘 하다가 통역이 필요할 때가 전부이긴 하다.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는데 아내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온다. 근데 아내가 울고 있다.

 오늘 퇴근해서 마트 가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러시안? 그러면서 자신의 엉덩이를 건들고 사라졌다고 했다. 민중이는 순간 할 뭐라고 할 말이 잃어버렸다.


“신고했어?”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면대면한 사이가 되었어도 기분이 나쁘다. 만약에 이런 일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내는 어떤 대처를 했을까? 아내가 한국에 살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거 같아서 미안하다.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어 그냥 울고 있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어준다.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을 해봤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늦은 거 같다. 사실 외국인 아내를 아니 백인 여자랑 사는 것 때문에 이런 수치심을 경험한 한 적이 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직장에 출근을 했다.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작은 선물을 다른 부서에 가지고 갔는데 휴게실에서 동료들이 하는 말을 엿들었다.


“오늘 민중씨 오지?”

“좋겠다. 백인이랑 맨날 사는거자나?”

“뭐가 좀 다른가? 궁금하긴 하네      


조용히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만약 동기가 집들이에 초대해서 갔는데 가족분이 너무 매력적이었다면 저런 이야기를 나눴을까? 사람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심했을 거 같다. 그냥 촌놈들이라고 무시하려고 회사밖으로 나온다. 미세먼지 때문에 코가 따갑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니 왠지 오늘은 빨리 집에 들어가야 할 거 같다.      

집에 도착해서 번호키를 누른다. 아내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짧게 인사를 한다.

“헤이”

‘나왔어, 여보’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런 평범함을 포기한지는 오래이다. 아내는 소탈한 성격답게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밥을 먹자고 한다. 다행이다.

스파게티이다. 결혼하고 스파게티를 평생 먹은 신라면 보다 더 먹은거 같다. 사실 싫다. 평소 같으면 어린 아이마냥 싫은 티를 냈을테니지만 오늘은 아내 눈치를 보면 젓가락 대신에 포크를 집어든다. 미안한 마음에 오늘 일은 묻지도 못했다. 그냥 맛있게 스파게티를 먹어 주는거로 미안함을 표현했다. 평소와 같이 아내는 10시에 침대로 간다. 오늘은 같이 따라갔다.

평소라면 거실에서 시간을 더 보냈을테지만 오늘은 그냥 옆에 눕는다. 대화도 사랑의 표현도 없는 체온 나누기, 같은 자리 공유하기 침대지만 그래도 옆에 누워서 오늘의 아내의 상처를 위로해주기 위해서다. 시간이 지나자 아내는 조용히 말한다.  


“나 미국으로 가서 살고 싶어”


민중이는 못 들은 척하고 대꾸 없이 반대쪽 벽을 보고 누워서 자는 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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