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나도 항상 비교를 하고 현실에 화를 내고 원망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왔다. 지금도 완벽하게 비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화려한 그 일부분으로 비참해질 필요는 없다. 문제는 어떻게 시궁창에서 빠져나오느냐 그리고 빨리 잊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느냐가 중요하다.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숨기고 싶은 순간으로 도배가 된다. 무엇하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비참하지는 않다. 이유는 남들이 나를 투덜거리고 부정적이고 속을 알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적어도 비교하기보다는 그들처럼 되던 안 되던 행동 해 보았다.
행동을 하고 있으면 비웃는 사람들이 항상 등장한다. 어린이 만화 속에 악당들처럼 순수하게 비웃고 포기하고 그냥 분수에 맞게 살라고 한다. 그런 말에 화가 나거나 그 사람들을 미워한 적은 없다.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하사 때 토익 책을 당직근무할 때마다 들고 다녔다. 말 그대로 들고 다녔다. 야간에 확인할 사항을 모두 확인하고 병사들 취침상태 확인을 완료하고 나면 언제나처럼 책을 펴고 토익 파트 5를 풀기 시작한다. 그리고 채점을 하면 40문제 중에 맞는 문제는 10문 제도되지 않았다. 어디서 틀렸는지 무엇인 문제인지 해설집을 보아도 이해되는 것 같은 착각만 생기고 다음 문제를 풀면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장교분이 지나가면서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고 말을 했다.
“ 이야, 공부 열심히 하네.”
아무 생각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지도 억울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되던 안 되던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내가 모르는 어떤 시간을 투자해서 분명 나보다 높은 토익점수와 영어 문법, 어휘를 알고 있는 사실에 비참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4년을 매일 토익 책을 머리 위에 두고 잠이 들었다. 매달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군 복무 중에도 휴가를 토익 시험 날에 맞춰 나갔고 시험을 봤다.
점수는 항상 비참했다. 240점, 230점, 270점 항상 신발 사이즈를 맴돌았다. 누군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니 영어를 잘할 거라고 착각을 했는지 성적을 물어보기도 했다. 어느 날 야간 철책 순찰을 통신병과 함께 나갔다. 통신병은 명문대 출신에 누가 봐도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준비된 인재처럼 보이는 병사였다. 추운 겨울 순찰로를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통신병이 물어봤다.
“반장님, 휴가 때 토익 보고 오셨지 않습니까?”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응, 야 근데 토익 별거 없더구먼 왜 이리 사람들이 어려워하냐?”
병사 앞이라 어리석은 허세를 부린 나는 몇 분 후에 쪽팔려서 그 친구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오, 몇 점 나오셨습니까?”
“나?? 190점 나왔지.” 거의 만점 아니야?
그게 내가 처음 본 토익 시험이었다. 200문제를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모르게 나름 열심히 풀고 나왔다. 만점이 990점이라는 이상한 숫자가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하고 무식하게 생각했다.
200문제였고 점수가 190점이니까, 문제 1점씩 200점 만점인가 보다 왜냐하면 그동안 틈나는 대로 문제를 풀었고 나는 시험장에서 정말 모든 집중을 다해서 시험을 봤기 때문이다.
통신병은 내 옆을 따라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웃겨서 웃을 수는 없고 웃음을 참느라고 걸음을 늦춘 것이 아닐까 싶다.
대기초소에서 거만한 얼굴을 한 나에게 통신병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반장님, 그 토익이 점수가 쉽게 생각하셔서 한 문제에 5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 모르시는 것 같아서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한강 물로 뛰어들고 싶었다. 부끄러웠고 비참했다. 차라리 공부라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덜 쪽팔렸을 텐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을 해보면 쪽팔려야 한다. 그래야 자극을 받게 되는 게 사람인 거 같다. 하지만 반대로 쪽팔리면 포기하는 하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비참함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비참했던 순간들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 적어서 기록을 해두고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비참했던 순간 몇 가지를 공유해 보려고 한다. 이유는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인 우리는 그냥 살면 계속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
병사에 부사관을 지원할 때 그 당시에는 상병까지 해야만 지원할 수 있었다. 적어도 1년은 병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군 생활 6개월이 지나서 직업군인으로 적어도 4년은 더 군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해당 중대 지휘자인 포반장님에 보고를 했다. 그 보고는 병 생활을 더 성실히 해야 한다는 낙인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이후 국방부 시계는 빠르게 흘렀고 1년이 지났다. 행정보급관님께 가서 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경쟁률도 낮았던 부사관이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결심한 사항인데 최종학력이 자진 퇴학이라는 이유로 간부로 임관 시에 사고를 칠 거 같다는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그 순간 비참했다. 그 누구도 자퇴를 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겉모습과 자력 표에 최종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한 것이다. 물론 성실히 군 복무를 한 결과 몇 번의 설득을 거쳐 자체 면접을 보고 부사관으로 임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선입견은 나에게 독이 되기보다는 미래에 나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21살 어린 나이에 겉보기에 그리도 쉽게 부사관이 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현실이 나에게는 쉽지 않은 시작이었던 것이다. 그때 느낀 것은 어쩌면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비교하지 않고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출발점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더 빨리 뛰거나 선두가 쉴 때 쉬지 않고 따라잡으면 된다. 아주 간단하다. 문제는 모두 달리기를 해봐서 알겠지만 절대 쉽게 따라잡을 수 없다. 군대에서 체력검정을 1년에 한 번씩 실시한다.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서 출발을 한다.
초반에 선두를 치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처음부터 속도조절을 한다고 중간부터 빨리 뛰겠다고 속도를 조절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1km쯤 지나고 나면 이미 선두권은 특별한 상황이 경우를 제외하고 결승점에 먼저 들어온다. 물론 처음에 선두였다가 뒤로 밀려나는 인원들도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선두였던 인원이 끝까지 선두인 경우는 금수저이거나 항상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서 체력을 유지한 사람이랑 비유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달기와 나의 인생을 비교하면 아마도 처음부터 빨리 뛸 수 없는 형편없는 기초체력을 지닌 후미 그룹이 내가 속한 곳이었던 거 같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해서 후미에서 후미로 들어오는 부류보다는 발전해서 후미에서 출발해서 중간까지 치고 올라오는 정도인 것 같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천적으로 뛰어나지 않거나 본인의 꾸준한 노력이 없으면 절대로 기록을 줄 일 수 없다. 하지만 문제는 본인들이 포기한 것에 대해서 남 탓을 한다는 것이다. 달리기를 빨리 뛰는 인원에게는 쉽게 승복하고 결과를 인정하면서 인생의 달기에서는 비교를 하고 일찍 포기한다. 그리고 정당화하기 위해서 내가 빨리 뛰지 못하는 이유를 수십 가지 만들고 공유한다. 적어도 결과에 대해서 비참해하고 반성을 해야 한다. 그냥 넘어가면 절대로 기록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비교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연습을 하고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방법을 제시한 수많은 책들은 서점을 가거나 유튜브를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실천하는 노력에 달려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당연히 모두가 말한 것처럼 강력한 목표가 필요하다.
그 목표는 남들이 제시한 목표가 아닌 개인의 삶에서 찾아야 한다. 남의 목표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목표를 향해서 달리다가 포기를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멍청한 두뇌를 타고난 덕에 학창 시절에 고생을 많이 했다. 이유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장 가까이 옆에서 지켜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그 당시에 나에게 참으로 미운 친구였다. 사실은 화가 났다. 매일매일 공부를 해도 그 친구가 하는 벼락치기에 발끝도 가지 못했다. 물론 정말 집중력이 좋고 머리가 나보다 좋은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어린 나이에 세상을 증오했다. 매일매일 시험 기간이라고 생각하며 공부하는 무엇 때문에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걸까?
만약에 이게 장거리 달리기라면 이 정도 노력이면 따라잡았을 텐데 하면 신세한탄을 하고 비교를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친구와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중학교 3학년 시험기간 중 같이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친구는 말을 했다.
“나중에는 너는 다 이길 수 있을 거야.”
속으로 생각했다. “잘난 척하고 있네.” 위로를 해줄 거면 제대로 해주던가 심심하게 다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 항상 이 모양인데.”
친구는 담담히 말했다.
“성과가 없어도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거니까.”
그렇지만 친구에 진솔한 위로에도 불구하고 나는 학창 시절에 그 친구보다 좋은 성적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를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은 비교당하지 않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들과 함께 하는 그라운드를 홀로 나왔다. 그 당시 나는 알고 있었다. 어떤 말로 고등학교 자진 퇴학을 포장하더라도 그것은 도망친 것이라는 것을 나 자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