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요양원은 아주 깨끗하고 시설이 좋았다. 결국 우리는 코로나가 빨리 끝나면 면회가 자유롭다는 말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가까운 요양원을 선택했다.
원장 선생님은 상담을 하면서 4등급 재가라고 하니 재신청을 하고 그전까지는 하루에 8만 원 정도 비용이 지출된다고 했다. 대략 240만 원이었다. 동생은 내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형 내 월급이 250만 원인데....."
그런 동생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걱정하지 말하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등급이 조정돼서 시설 등급이 나오면 매달 80~90만 정도 본인 부담금이 든다고 하니 금전적으로 너무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에 대해서 세부적으로 설명을 하는 동안 간호부와 식당을 담당하는 직원분이 상담실로 오셨고, 어머니를 환대해 주었다. 우리를 바라보며 음식을 잘 못 드시는 것은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원장 선생님은 훈련을 통해서 충분히 개선시킬 수 있다고 우리 형제에게 말을 했지만 사실 그 말이 불쾌하고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중증 치매 환자를 무슨 유치원으로 생각하는 건지? 싶었다.
훈련을 통해서 개선을 시킬 수 있는 질병이라면 치매라고 부르지 않았을 텐데...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내 얼굴은 무표정으로 이런 이상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비용에 대한 부분과 어머니 짐을 직원들이 확인하면서 동생은 참았던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 마음은 그 심정은 아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나는 그 동생을 보며 눈물을 참았다. 엄마가 혹시나 슬퍼할까 봐 담담한 척하려고 애써서 동생의 시선을 피했다.
결국 동생의 울음은 오열로 변해버렸다.
엄마를 버린다는 생각에 동생은 미안한 마음을 눈물로 대신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 동생을 보면서 원장 선생님은 상황을 빨리 종료하고 싶은지 재촉하기 시작했다.
" 아이고,,, 이렇게 울면 어떡해요. 엄마가 아파도 다 느끼는 데 슬퍼하시잖아요. 빨리 2층으로 모시고 가야겠네요.."
마음이 약해질까 봐 그 재촉을 응답하여 나는 8만 원씩 15일 분의 비용을 선물로 계좌이체를 했다. 원장 선생님은 안심한다는 표정으로 직원을 다시 호출해 어머니 짐을 2층으로 올렸다.
"선생님 어머니 외롭지 않게 잘 부탁드려요. 저희 자주 올 거예요. 동생 집이 근처이기도 하고 저도 한 달에 한 번은 올라올 거라서요.."
"아이고.. 그렇게 하세요. 그리고 어머니는 절대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마음이 아프네 우리 언니보다도 한참 젊어서.."
어머니는 요원원에서 가장 어린 환자였다. 본인보다 적어도 10살에서 그 위로 연세를 드신 분들이 많았다. 나는 엄마가 젊다는 말에 그동안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고생만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야 두 아들이 자리 잡고 조금 효도받으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엄마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유전성 뇌질환과 함께 50대 중반부터 진행이 되었다는 이 못된 치매를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10년만 늦게 찾아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없이 생각했다.
74세에 이렇게 요양원에 가셨더라면 적어도 10년 동안 우리들과 더 시간을 보냈다면 엄마의 인생이 이렇게 초라하지 않았을 텐데.....
두 아들이 우는 모습을 보고 원장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웃으며 2층으로 올라가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눈에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지만 억지로 웃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슬프지 않았으면 해서..
요양원을 나와서 나는 흡연장 구석에 주저앉았다. 동생은 차 안에서 목청 높여서 울고 있었다. 나도 엄마가 머물게 될 벽을 손을 잡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입에서는 계속 같은 말이 나왔다.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왜... 왜..."
인생이라는 참 묘하게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 흔하고 흔한 행복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숨 막히게 답답하고 힘든 하루하루의 연속이었고, 이제 모든 짐을 내려놓나 싶으면 주변이 하나씩 망가지는 게 보였다.
마치 아직 힘든 일이 끝나려면 멀었으니 정신 차리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 같았다.
한참을 울고 차를 타고 동생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뒷자리에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해맑은 엄마가 있었는데 뒷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