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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에 약자가 되어버린 집주인들

부동산 재계약이 무서운 임대인 이야기

by 고용환

https://brunch.co.kr/brunchbook/richfathercar2


2009년 말 20대 중반의 나이로 아무 생각 없이 내 집 한 채라는 막연함으로 매수한 아파트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시장에 발을 담고 있다. 2009년도 금융위기 때문에 고금리에 부동산 시장이 겨울 한파처럼 차가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첫 집이고 다주택자가 아니었기에 솔직히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다.


단지 일을 하다가 가끔 시세를 확인하면 내가 매수한 아파트 가격이 멈춰있거나 내려가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도 세입자를 구하기에 힘들지 않았기에 버티고 버티면서 시간을 보냈었다.


그렇게 첫 번째 아파트를 매수하고 몇 년이라는 시간을 직장에 스펙을 쌓고 집에 터진 여러 좋지 않은 일을 처리하느라 흘려보냈다. 그 아까운 시간이 내게 최고의 기회였다는 것을 시간을 보내고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5년 정도 시간을 그냥 보내고 정신을 차리고 분양권으로 시작해서 다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2016년 그렇게 두 번째 아파트를 매수했다. 그리고 속도를 높여서 갭 투자를 지속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저축과 투자를 병행했다.


집주인이라는 이름으로 세입자에게 임대를 주면서 못되게 굴거나 나만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굴려본 적은 없다. 이유는 힘들게 살았었던 부모님의 인생 때문에 그렇게 모질게 할 수 없었다. 최대한 계약을 연장할 때는 손해를 본다는 셈 치고 재계약을 했고, 집에 하자가 생기면 공구통을 들고 퇴근길에 들려서 직접 보수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상황이 역전되었다.


코로나19로 이후에 폭등한 집값을 보면서 벼락부자가 된 착각에 사로잡혀 늘어난 자산을 가지고 조기 퇴직을 할까? 등 행복한 상상을 하던 몇 달이 훌쩍 지나고 부동산 시장은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전문 투자자는 아니지만 매일매일 경제 신문을 읽고, 틈이 나면 임장을 하면서 보낸 세월이 있었기에 이렇게 고금리와 경제적 타격이 올 거라는 것은 조심스럽게 예측했지만 사람의 심리가 오르는 집값에 취해서 털고 나오지는 못했다. 물론 지금 와서 그 행동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예측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 내 집처럼 잘 살아와 주셨던 세입자 분들의 변해버린 태도였다.

계약갱신청구권이 생기고 잠시 고생을 했지만 그래도 모두 잘 살고 계셨는데 계약 연장 시기가 돼서 내 아파트에 살고 계신 임차인 분들인 돌변 했다.


그중에 가장 오랜 기간 신축 아파트 입주부터 5년을 살고 계시던 어머니가 전화를 해오셨다. 저번 연장 때도 월세를 낮춰달라고 사정사정하셔서 시세보다 20만 원이나 저렴하게 맞춰진 상태였다.


추가 연장을 한다고 연락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과 달리 내게 임대차 보호법을 논하면서 3개월 전에 통보했으니 계약 기간이 남았어도 보증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셨다.


계약 갱신청구권을 연장하는 시기에 이렇게 몇 개월만 더 살겠다고 말하면 당연히 임차인이 예전처럼 집을 구해주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다.


나는 바로 친한 중개사분들께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사장님들은 이런 상황에서 임차인이 나가겠다고 하면 그 시기에 맞게 모든 것을 해줘야 한다고 답변을 주셨다. 법이 달라졌다고 하면서 네이버 검색 결과를 링크로 걸어주셨다.


순간 앞이 캄캄했다. 시세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거래는 거의 없는 상태라는 것을 내가 보유한 지역을 확인하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임차인 분들에게는 임대인을 배려할 여유보다는 지금 갈아타기를 하거나 저렴해진 전세나 월세를 이용해서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싶을 거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게 막상 닥치니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후에 인터넷을 확인하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당한 수많은 임대인들의 하소연을 싶게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들어온 한 문장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 임차인만 대한민국 국민인가요? 임대인은 그럼 어떤 보장을 받나요?"


모든 것이 세입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은 아마도 집주인 입장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였기에 드는 생각이겠지만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첫 번째 임차인에게 요구 조건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알아보던 중 세 번째 아파트의 재계약 일정이 다가왔다.

3개월 전에 문자로 연장 여부와 5% 전세금 인상에 대한 동의를 구했고 이사를 가거나 전세금을 올리는 것을 문자와 통화로 동의하셨기에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 또한 순진한 나의 착각이었다.


" 저기요. 저희 5% 인상 못 해 드릴 거 같아요."


문자를 받고 당황한 나는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결국 저녁에 이유를 물었더니 3개월 전에는 그러려고 했는데 지금 시세가 너무 빠져서 이사를 고려한다는 말이었다. 계약서를 쓴 상태도 아니었기에 이 또한 요구조건을 들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역전세 상황에 집주인들은 '을'이 되고 수요자인 세입자 분들은 '갑'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결국 이사비용과 여러 가지 부대 비용 등등 말하며 세입자 분들께 사정을 했다. 여윳돈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영혼까지 팔아서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중은 아니기에 새로운 세입자가 낮은 금액으로 계약을 해도 돌려줄 보증금은 내게 충분히 있었다.


투자자 입장에서 지금 보유한 현금은 황금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나 또한 싸진 물건들을 틈나는 대로 분석하고 어디에 투자를 할지 고민하고 있었기에 목돈이 이렇게 역전세를 막는 곳에 다 사용되는 것은 막고 싶었다.


결국 전세금 인상 없이 연장을 하기로 동의를 구했다. 아파트라고 현재 수도권에 3채가 전부인데 이렇게 머리가 아픈데 만약 무리한 투자로 10채, 100채 보유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최악의 상황일지 상상을 해보았다.


투자를 하면서 좋은 시기에 투자를 했었구나 감사하기까지 했다. 무리한 투자를 했다면 아마 나도 지금 무너져 내렸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부동산이 급락하자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한동안 이런 한파는 지속될 것 같다. 금리인상에 따른 이지 비용 증가는 집주인들에게 엄청난 부담이고, 새로 집을 사기 위해 접근하는 실수자들에게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월세를 받고 있던 아파트의 이자가 월세를 초과했다. 예전에는 월세랑 이자랑 비슷하거나 코로나19 때 저금리 국면에는 차액이 많이 남았지만 그것도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매달 월세를 받아도 내 돈을 더 보태서 이자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세입자가 있다는 전제에 마음이 조금 편하지 만약 공실이라면 상상도 하기 싫다.


이런 경험이 반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좋게 좋게 생각하기 위해 마음을 다듬고 있다. 이런 상황도 버티고 경험하고 하다 보면 미래에 더 좋은 환경이 오면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임차인과 임대인인 입장은 시장환경에 따라서 변하는 것을 양쪽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본다.


이런 부동산 시장의 암흑기가 지나면 다시 집주인들은 높은 인상을 요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집이 없는 사람들은 임대인들을 탐욕적인 동물로 취급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착한 임대인들도 존재하고 임대인들도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불리한 입장에 놓이기도 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투자는 생존이다. 탐욕의 산물이 아니다. 집주인들도 그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나 또한 가족들에게 최근 10년 동안 좋지 않은 일이 계속해서 생겼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투자를 하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겉모양만 보면 다주택자이고, 종부세를 내고 수입이 많아 보이기도 하지만 각자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읽은 분들은 내 입장을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실 수 도 있다. 그 또한 이해한다. 우리 모두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서로 양보하고 자극적인 말보다 배려를 하면서 서로의 입장에서 최선을 선택하면 될 것 같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말이다.


그리고 2023년 새해에는 집주인, 세입자를 떠나서 이 어려운 상황이 모두를 위해 빨리 좋아지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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