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잘 못한 걸까? 머리가 복잡하면서 딸아이 목소리가 귀에서 맴돈다. 아빠인 내가 그 아이를 화가 나게 만든 걸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다. 어제 같이 저녁을 못 먹은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끌어안고 현관문을 열고 딸에게 말을 퇴근 인사를 했다.
"딸 아빠 왔다."
정신없이 뭐를 주섬주섬 줍고 있는 딸아이에게 다시 말을 했다.
"다녀오셨어요 해야지."
딸아이는 그때가 돼서야 짧게 "아빠 왔어요."라고 대답하고 학교 방과 후에서 만든 것들을 들고 현관으로 와서 내게 참새처럼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행복의 기운이 몸 구석구석 차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일하면서 느낀 피로감은 갑자기 사라지고 엔도르핀이 혈관을 타고 발끝부터 머리까지 올라가는 황홀함을 가지고 숨 쉬는 시간까지 아까워하는 딸아이에 말을 끝까지 듣고 호응해 줬다.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가 방과 후에 돌봄까지 꽉 채우고 학교를 다니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그래도 밝게 학교에서 있던 일을 말해주니 안심이 되었다.
나는 계속해서 딸아이에게 말에 격하게 호응을 해줬다.
이제 말도 제법 잘해서 듣는 재미까지 있다.
열심히 말하는 딸아이의 말을 끊은 것은 엄마였다. 밥 먹으라는 소리였다.
우리는 식탁에 앉아서 카레를 먹었다. 카레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큰 수저에 김치까지 올려서
허기진 배를 달래는 딸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래도 오늘은 밥을 잘 먹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풍만감에 사로 잡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저녁 식사량이 부쩍 늘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새로 적응하는 학교생활에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을 것이 뻔했다. 어린이집처럼 간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정규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로 옮겨 다니는 시간들도 아이를 배고프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친구들 이야기를 종종 들려줘서 안심이 된다. 건강하고 잘 어울리고 밝게 컸으면 하는 가장 흔하면서 중요한 바람은 나 또한 똑같다.
모든 것이 너무 완벽한 저녁이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다 같이 디저트까지 먹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아빠와 10분 놀이 시간을 가졌다. 8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하기에 항상 저녁을 먹고 나면 딸아이는 초초해 보였다. 아직도 시계도 못 보는 녀석이 내게 몇 시냐고 물어볼 때면
가족의 육아방식을 따르기로 한 나 자신의 선택 때문에 딸에게 미안해진다. 물론 합의를 한 것은 아니다. 내가 간섭하면 싸움으로 번지고 그것이 아이에게 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포기한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쉽게 안 변하니 자신의 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 가족은 나와 대화로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딸과 나는 침대에서 인형을 꾸미며 10분을 꽉꽉 채워서 사용하고 있었다. 그때 양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양치는 바로 잠자리를 의미하기 딸아이는 꾀를 부리려고 한다. 내게 학교에서 들었던 동요를 너튜브로 찾아 달라고 제안했고 물러터진 나는 리스트를 열어서 찾았다.
아이 엄마는 양치하라고 톤을 높여서 말하기 시작했고 나는 화가 올라와서 어쩔 수 없이 딸아이에게 빨리 양치하고 오면 동요를 찾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짧은 양치가 끝나고 다시 침대로 돌아온 딸에게 동요를 들려주니 자신이 찾는 노래가 아니라고 계속 찾아달라고 했다. 그러다 시선이 멈췄고 우리는 동요 하나를 같이 봤다.
"이거 다 보면 책 읽기 시간이니까.. 책 골라 알았지?"
말을 했는데 영상에 잠시 빠져 든 딸아이는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제 곧 애엄마가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 듣기 싫어서 나는 톤을 높여서 아빠 말에 대답 안 하면 영상을 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모르게 짜증스럽게 말이 튀어나왔다.
아이에게 화가 난 것은 절대 아닌데...
그냥 아직 8시인데 이렇게 사는 게 미안하고 사실 싫어서 감정적으로 말이 나왔다.
딸은 내 말에 실망한 표정을 하더니 인상을 쓰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바로 방에서 당장 나가라는 것이었다.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이렇게 감정기복이 종종 있기 때문에 그리고 충분히 이런 환경이라면 불출한 곳이 이 작은 아이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몇 번을 그냥 두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나는 어떤 말을 해도 딸의 기분이 풀리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아이 말에 따라 방을 나왔다. 순간 오늘 하루가 최악으로 마무리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방으로 돌아오니 가족이 딸아이 방으로 왔다. 처음에는 아빠랑 책 안 읽겠다고 하더니 엄마한테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엄마도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건너편 방에서 고함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가족은 딸아이에게 화를 내도 괜찮다고 아주 여유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괜찮다고 화를 내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너무 이중적이라 나는 집을 나가고 싶었다. 아이가 놀고 싶은 걸 알면서 8시에 강제로 잠을 자게 만드는 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고 화를 내는 아이에게는 교과서처럼 대하는 것이 완벽한 육아라고 생각하는 그 태도에 이제는 어떤 말도 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오늘 딸아이는 분명 나 때문에 화가 났다. 영상을 더 보고 싶은데 자꾸 말을 시키고 엄마처럼 말 안 들으면 영상을 끊다고 단호하게 선택권을 박탈하니 아빠인 내게 실망해서 화가 난 것이 뻔했다. 그래도 아빠는 좀 기댈 곳이라고 여기는 딸인데....
그 마음을 모르고 나도 로봇처럼 행동을 하니 딸아이 분노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엄마한테 소리 지르는 것까지는 대수롭지 않았지만 혼자 방에서 펑펑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은 지옥을 체험하는 것처럼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래서 나는 살기 위해 나는 말없이 집을 나왔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리고 방게 가서 딸에게 말을 걸어도 화가 나서 소리만 칠 것이 너무 뻔하고 그 어떤 것도 지금 그 아이의 화를 달래줄 수 없는 것을 알기에..
상황이라는 것은 언제나 이렇다. 속사정, 집안 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물론 제삼자 입장에서 보면 이것저것 조언을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답을 몰라서 모두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알면서 그냥이렇게 넘어간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모두의 상황은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다채롭고 절대 지루하지 않다.
비슷한 상황은 존재할 뿐 완벽히 똑같은 상황은 절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아이가 기분이 풀리면 그렇게 많이 서운했냐고 사과를 해야겠다.
아빠가 미안하다고 너를 더 이해해줬어야 하는데 네가 싫어하는 그 강압을 아빠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아빠의 엄마인 할머니가 아빠를 자유롭게 풀어준 것처럼 아빠도 너를 믿고 너의 인생을 응원하겠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