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한 연차에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는 몇 년 전부터 조금은 빠른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지금 하는 일은 그만두지 못하는 나약한 핑계들을 줄 세우고, 다시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미래가 없다는 한탄을 하면서 팽팽하게 중간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고 했다.
'꼭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거라고.'
'이렇게 살다가 혹시나 어떤 사고로 죽게 된다면 인생이 허망할 거라고.'
그런 우리들 앞에 언제나 거대한 산이 우뚝 서 있었다. 그건 바로 가족이었다.
혹시나 퇴직을 하고 밖으로 나와서 실패하면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내가 흔들리면 어린아이들과 아내도 힘들어질 텐데..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이런 삶이 의미 없는 반복이라도 이 삶을 유지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닌가?
이렇게 3년을 종종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이번에는 조용한 낚시터에 가서 머리도 식히고
1박 2일 동안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하고 날짜를 잡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던 어느 날 후배는 톡을 보내왔다.
"선배님 여깁니다. 운이 좋게 한자리가 남아서 예약했습니다!"
낚시는 전혀 취미도 아닌 나는 "좋네."라고 답문을 보냈다. 그리고 너무 정신없는 일정에 약속을 잡은 것도 까먹었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떠났다.
화창한 날씨, 시원한 바람이 도로밖으로 펼쳐졌다.
이건 가족들과 딱 놀러 가기 좋은 날씨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 미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너무 사치 아닌가? 이렇게 1박 2일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그렇게 2시간 운전해서 도착한 그곳은 저수지 위에 배에서 낚시를 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들어가면 다음 날 아침까지 나올 수 없는 낚시꾼들이 가는 그런 곳.
후배와 장을 보고 빠진 것이 없는지 리스트를 몇 번이나 보고 우리는 작은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조용한 저수지에 둥둥 떠 있는 작은 컨테이너에 도착했다.
그냥 운전하면서 몇 번 봤는데 막상 배에 올라가서 보니 그 자체가 너무 힐링이었다.
화장실과 낚시를 할 수 있는 테라스 그리고 방에는 TV, 냉장고, 전기장판, 전자레인지가 있었다.
창문밖에 저수지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후배는 장비도 없는 내게 장비를 빌려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그리고 우리는 조용히 물 위에 앉아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고요한 물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우리들의 목소리만 있었다.
마치 세상에서 한 발자국 떨어진 그런 느낌이었다.
'마흔 살,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리스크 아닌가? 안전한 울타리에 있으니 정년까지 그냥 욕심을 다 버리고 가족을 위해 내 한 몸 희생하는 것이 왜 어려운가?, 우리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까?'
우리는 우리라는 인간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하면서 20년 간 직장에서 해 온 나름의 노력과 성과들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 이 정도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나와도 된다고, 세상이 우리를 잡아먹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해는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장을 본 음식들을 테이블 위에 두고 고기를 굽고 소주 한 병을 꺼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후배는 나가서 도배라도 배우겠다고 자신의 플랜을 이야기했다. 주어진 먹이만 먹으며 사는 삶이 아니고 몸을 써서라도 내 것을 가져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나보다 더 많은 생각과 결단을 한 것처럼 보였다.
아직도 어쩌면 망설이고 있는 후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나는 지금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이십 대 초반처럼 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후배의 사연과 계획을 한 참 듣고 나서 나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후배는 내게 열심히 살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 줬다.
강 위에서 먹는 소주는 오히려 맑은 샘물처럼 취하지도 않았다. 스마트폰에 손이 가지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오고 가는 이야기 속에 우리들의 인생이 살아 있었다. 새벽이 되고 같이 작은 방에 누워서 걱정하지 말자고 우리는 잘할 수 있다고 몇 마디를 하다가 둘 다 실신하듯 잠이 들었다.
새들의 합창, 부끄러운 아침 햇빛 그리고 잔잔한 물결 소리에 눈을 떴다.
고요했다. 그리고 그 하루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눈을 떠서 방과 밖을 정리하고 우리는 흐르는 저수지를 보며 커피 한 잔을 들고 앉아서 우리를 데리러 올 작은 배를 기다렸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서 인지 아니면 서로의 미래를 속으로 걱정하고 있어서 인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냥 고요함에 같이 흘러가는 물결같이 멍하니 물결을 바라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인생은 선택의 책임과 후회의 연속인데 지금 내가 물러서면 그 또한 내 선택이고, 내가 지금 밖으로 나가면 그 또한 내 선택이었다. 어떤 미래의 결과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처럼 남아 있으면 나는 죽기 전에 분명 후회할 것이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