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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r 29. 2023

39화. 엄마가 이마트에서 춤을 췄다.

엄마 정말 행복하구나.

엄마의 세 번째 CDR 검사를 나와 동생은 휴가를 냈다. 요양원에 모시러 간다고 미리 말을 하고 난 후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두 달 만에 보는 엄마 얼굴이 얼마나 상했을까 미리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이렇게 우리 세 명이 모일 수 있는 날이 아직은 있음에 감사했다.


병원 가기 전날 4시간 운전해서 동생집에 도착을 했다. 꽃구경을 가시는 수많은 차량 속에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서 음료를 사는데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엄마 또래의 밝은 옷을 입은 어르신들을 보니 괜히 샘이나고 벌써부터 요양원에 계시는 엄마가 안쓰러웠다.

팔자나 운명이라거니 생각을 하려고 애를 써도 억울한 건 사실이었다. 괜히 10년 전에 길거리에 우리 형제와 엄마의 사주를 봐준 흰색 수염의 할아버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이고... 남편복은 정말 없는데.. 그래도 여사님이 자식복은 넘쳐나시네요."


엄마는 남편복이 없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면서 우리 두 아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면서 얼굴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가 정말 자식복이 많다고..'


나는 할아버지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냐고 물었다. 남편복이 완벽한 정답을 맞힌 족집게이니 물어봐도 될 거 같았다.


"오랫동안 음식 잘 드시네요."


나는 그 말을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엄머가 머문다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오래 건강하지 못했다.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아니 잘 모르겠다.


자식복이 있는 건지.... 그러기에는 우리 형제는 엄마를 요양원에 보냈으니 복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다음날 아침 동생과 병원 갈 준비를 해서 요양원으로 향했다. 동생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요양원에 도착한 우리는 원장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몇 분이 흐르고 잠겨 있던 문이 열렸다.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우리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얼굴에는 벚꽃보다 밝은 미소가 번져서 눈이 부셨다.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우리 형제는 반대로 슬퍼졌다. 아마 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미안하다고....'


차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엄마는 변함없이 사탕을 달라고 조르고 졸랐다. 주머니에서 엄마한테 사탕하나를 꺼내서 주는데 눈곱이 하나 가득 있는 엄마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속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정말 아무런 관심도 돌봄도 잘 못 받고 계시는 게 분명했다. 동생은 물티슈를 꺼내서 엄마 눈곱을 닦아주며 말없이 엄마 손을 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를 만나 기쁨과 엄마를 보낸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같은 공간에서 속으로만 슬퍼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시작한 검사는 저번보다 더 늦게 끝났다. 엄마는 집중도 못하고 대답도 못했다. 유일하게 하는 말은 두 아들 이름과 사탕이 전부인 거 같았다. 선생님은 보호자에게 질문을 하면서 애써 위로를 해주셨다.

검사 결과를 받아서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기다렸다. 나와 동생은 엄마 손을 하나씩 나눠서 잡고 쓰다듬었다.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이미 관절이 다 상해서 마디마디가 울퉁불퉁했지만 엄마손은 여전히 마법의 손 같았다.


배탈이 나면 배를 문질러주던 그 신비한 약손이 떠올랐다. 그토록 작지만 강인하고 당당했던 여자였는데 참 세월이 한 사람을 너무 초라하게 만든 건 아닌지 무심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선생님과 대화를 했다. 우리 형제를 보고 참 잘하고 있다고 잘 버티고 있다고 격려해 주셨다. 이렇게 빠르게 진행이 되는데 많이 힘들 텐데 엄마가 복이 많으신 거 같다고 하셨다.

이런 칭찬은 삶에 도움이 안 되지만 그래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픈 엄마를 돌보는 것을 가지고 칭찬을 받는 게 어색해서가 아니라 현실이 너무 잔인해서 싫었다.

약물처방을 받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과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우리는 엄마 옷을 사러 이마트로 향했다.


이마트에 도착하자 엄마는 사탕과 과자를 보고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무조건 입으로 가지고 갔다. 마치 어린 시절 내 딸이 그랬던 것처럼 엄마는 순수한 어린아이 같았다.

요양원에서 입을 엄마 옷 몇 개를 고르기 위해 동생과 나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마트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을 의심했다. 손을 모아서 동글게 그리면서 앞 뒤로 스텝을 하는 엄마는 웃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를 보고 크게 웃었다. 엄마는 아들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게 좋았는데 계속 춤을 췄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사정도 모르고 불쾌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시선을 무시했다.

엄마가 행복하니 지금이 행복했다.


나는 엄마가 행복하는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 동영상으로 촬영을 했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춤도 추는구나....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도 쑥스러워했는데.

어쩌면 우리가 엄마를 잘 모르고 살았던 게 아닌가 싶었다.

엄마에게도 이렇게 밝고 유쾌한 모습이 있는데 사는 게 그동안 너무도

힘들어서 그 모습이 가슴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던 것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나는 영상으로 그 모습을 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시 보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열어보지 못하지만 분명 먼 훗날 엄마가 그리워지게 되면 난 엄마가 춤추는 영상을 보며

엄마를 그리워할 것이다.


어쩌면 엄마가 두 아들에게 앞으로 힘든 일이 생겨서 힘내라고 응원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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