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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Mar 14. 2023

38화. 엄마 소식 좀 그만 보내세요.

미안해 엄마 그런데 바라보는 것도 너무 힘들어

시간은 내 감정을 잡아먹어가고 있다. 엄마가 요양원에 간지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는 어느덧 현실을 인정해 버린 듯하다. 동생과 통화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은 내 감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바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도 이런 못난 마음을 숨기고 싶어서인지 모른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명절도 한 번 흘러가고, 딸아이는 초등학교를 입학했다. 그리고 나는 박사학위를 위해 대학원에 가게 되었다.


하루를 더 정신없게 만들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눈을 떠서 감는 순간까지 1초도 여유를 두지 않고 보내고 있다.

그런 나의 몸부림을 아는지 내 스마트폰은 더 정신없이 나를 부른다.


학교종이에서는 딸아이 관련 된 문서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아내도 여름에 처갓집 캐나다를 가겠다고 비행기 예매부터 보험 가입까지 평소 찾지도 않던 나를 더 찾는다.


직장은 언제나처럼 내 슬픔과 마음에는 무관심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폭풍 카톡으로 토해낸다.


싫고 귀찮아도 이런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안 열어볼 수 없는 디지털 문명의 노예가 된 삶을 원망하지만 내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스크린을 어루만진다.


딱 한 곳에서 오는 소식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 소식도 꾸준히 내게 알람처럼 울린다. 그런데 나는 대놓고 외면을 한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약간 서운했다고 말해야 맞는 거 같다. 바로 그 알림은 요양원에서 보내주는 소식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입소하고 처음에 사진과 짧은 동영상을 보내줬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일주일이 조금 지나자 소식은 뜸해졌다. 요란 떨고 싶지 않아서 재촉을 하지 못했지만 엄마가 잘 있는지 매 순간 궁금했다.


그래서 동생한테 요양원에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고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밴드에 올라오는 사진들도 꾸준히 찾아서 봤었다.

어르신들이 지내는 모습과 활동하는 사진들이 담겨있었다. 모두 우리 엄마보다 훨씬 더 어른들이었다. 나는 그 사진과 영상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찾으러 애를 쓰기도 했다. 바보처럼 말이다.


한동안 노력해도 엄마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훈련하기 싫어서 병원진료로 도망가는 영리한 요즘 병사들처럼.


그런데 얼마 전 나는 몇 장의 사진 속에 엄마를 발견했다. 다 같이 강당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듯했다. 모두 하얀 솜사탕 같은 머리를 하고 계신 어르신들 사이에 검은 머리를 한 엄마는 나 좀 봐달라고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사진 속에 엄마의 모습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무표정에 머리는 아들 허락도 없이 남자처럼 잘라놓았다. 살은 더 빠진 거 같았다. 무엇보다 엄마의 그 불만 있다는 듯한 표정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엄마는 감정표현이 솔직한 여자였다. 물론 그 성격을 제대로 물려받아서 호불호가 확실한 캐릭터로 나도 살아가고 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중간지대가 없는 그 성격 때문에 엄마를 차갑게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렇다고 예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을 대하는 따뜻한 마음은 기본기로 장착하고 태어난 엄마였기 때문이다. 단지 어릴 적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어서 그 따뜻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었다.


누구보다 엄마랑 수다를 많이 떨고 같이 오랜 시간을 보낸 나로서는 아무리 중증 치매여도 그 무리 속에 엄마가 행복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제발 나 좀 데려가 달라고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밴드에 올라오는 것들에 대해 동생에게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사진들을 봤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약 봤다면 동생도 나처럼 생각했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이제 조금 자유롭게 사는 동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불편하고 미안한 해방이지만 나는 동생이 조금 더 자유롭고 이기적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삼십 대를 마무리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아마 그것이 자식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엄마가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진 속 엄마 모습의 잔상이 세포 깊숙이 각인되고 주름 잡혀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이상 밴드를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미안하고 너무 보고 싶고 안타까워서 말이다.


벚꽃이 고개를 드는 날이 다가오는데 소망이 있다면 엄마를 모시고 따뜻한 봄 햇살을 즐기고 싶다. 분명 엄마는 떨어지는 벚꽃을 보며 '와... 와.....'를 연속으로 말하며 우리 형제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달라고 애교를 부릴 것이다.


 밝게 웃으면서 말이다.


그 사진으로 엄마의 요양원 생활을 보는게 너무 힘들어서.

당장 집으로 모셔오고 싶은데 그렇게 못해드려서.

밴드속 엄마 모습을 보면 세상이 멈춘 것처럼

너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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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아파도 그래도 부모다. 가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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