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저녁 나는 퇴근하고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바로 딸이랑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8살 딸아이는 세월의 흔적이고, 내 삶의 목적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아이를 위해서는 내 삶이 전혀 아깝지 않다.
이토록 자식이라는 존재의 크기가 크게 인생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부모가 되기 전에는 전혀 알지도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바로 이런 것이 우리 엄마, 아빠를 힘든 가난에서 버티게 했구나'라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다.
내 뱃속에 먼지 밖에 없어도 딸아이 입에 무엇을 넣어줄 수 있다면 그 먼지로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는 표현 할 수 없는 감정들 때문에 매 순간 미안하고 고맙다.
요즘 딸을 보면 부쩍 많이 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대화를 하다 보면 딸이 만나는 사람들이 넓어지면서 생각도 커진다는 것을 느낀다. 어쩔 수 없는 맞벌이로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나서 수업이 끝나면 방과 후에 돌봄 그리고 태권도까지 이곳저곳을 휴대폰도 없이 돌아다닌다. 물론 돈 때문에 스마트폰을 못 사준 것은 아니다. 단지 가족이 외국인이라서 오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아이가 고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초등학교 이후 딸아이의 언어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가끔 욕설 비슷한 말을 하기도 한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는 들어 본 적 없는 그런 단어에 나는 놀라곤 한다. 이제는 영리해서 엄마가 한국어를 잘 모른다는 것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약간 속마음은 내게 털어놓는다.
보통 딸이 하는 이야기는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다.
'친구랑 싸웠다.'
'선생님이 무섭다.'
'태권도에서 줄넘기가 싫다.'
'나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싶다.'
이런 아이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흔한 이야기이다. 하나 더 있다.
' 아빠, 담배 피우지 마. 폐랑 뇌랑 다 죽는다고 했어.'
아주 잘 배워서 내가 꼼짝없이 딸 앞에서 "응"이라고 금연을 약속해야 하는 상황도 찾아왔다.
근데 며 칠 전 딸아이 질문에 내 귀를 의심했다.
"아빠 우리가 가난해서 나라에서 집을 주는 거야?"
지금 사는 집은 군대에서 빌려준 거라고 오래전에 아이에게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건 너무 옛날이야기다. 나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신기할 것도 지금 살고 있는 단지는 정말 이 지방 동네에서도 저렴한 600세대 구축 아파트이기 때문이다.
물론 관사로 받아서 사는 일부 사람들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이 단지에 산다.
그렇다면 분명 딸은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오래전 브런치에 삼백충, 오백충이라고 초등학생들이 아빠의 월급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기사를 읽고 글을 썼는데 문득 그 글이 떠올랐다.
황당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딸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뭐라고 했어? 우리 딸?"
아이는 대답을 망설였다. 8살 정도 되니까 거짓말이나 엄마, 아빠가 걱정할 이야기는 잘하지 않았다. 아직 순수 하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비밀이 생기는 것 같았다.
"아니.. 근데 놀이터에서...."
아이는 말을 하려고 하다가 끝말을 흐렸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한테 군인은 공짜로 집을 주니 가난하다고 들은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딸에게 가난해서 나라에서 집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이미 친구들 사이에서 혹은 방과 후에 누나, 오빠들에게 들은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속상했다.
이미 이런 비슷한 일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임대아파트에 거주한다고 차별하며 왕따를 시키거나 #엘사, #휴거, #빌거지라고 말하는 초등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괜히 상처를 받을까 걱정되는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주공인데 관사이니 놀림의 대상이 될 것은 뻔하기에.
한편으로는 정말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는 거라면 얼마나 억울할까 싶었다. 다행히도 우리 딸에게 놀린 아이들이 사는 지역보다 더 좋은 곳에 1군 아파트도 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세입자가 나가면 이사를 가야겠다.
전역해도 투자의 효율성을 생각해서 계속 임대를 주고 다른 곳에 살까 잠시 고민도 했지만 확실해졌다.
세상이 좋은 쪽으로 변할 것 같지는 않으니 우리 가족에서 상처 주는 삶을 다시는 살지 않아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