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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Aug 15. 2023

45. 의사 선생님 말을 들었을 뿐인데.

우리 엄마는 치매 환자입니다. 그런데 행복할 겁니다.

  이사 갈 집도 정해지고 근처 요양원도 알아보면서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준비할 것이 많아서 동생과 나는 통화하는 날이 늘어났다.


대출도 알아봐야 하고, 이삿날이 맞지 않아서 잠시 이삿짐을 보관해야 하는 등

동생은 열흘 정도 떠돌이 생활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도 우리에게는 고난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준비하는 사이에 엄마의 검사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검사하기로 결심한 한 것은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의 제안을 받고 한참을 고민했다. 물론 그 제안은 지금까지 4년 동안 꾸준하게 부탁했던 뇌 기능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더 망설였다.

  선생님은 최신 뇌 MRI 촬영과 유전자 검사까지 입원해서 무료로 진행해 준다고 우리 형제에게 말했다. 추가적으로 희귀병에 대한 원인을 발견할 수 있으면 후세에 동일한 질병을 예방하는데 큰 기여가 된다는 사회적인 측면과 학자의 윤리도 포함해서 우리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완치되는 그런 기적은 없지만 적어도 유전적인 부분도 같이 검사 의뢰를 하니 대비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이전과 비교하면 더 세부적으로 제안으로 구체화되고 있었다. 그만큼 엄마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잠시 눈 빛이 흔들리는 우리 형제를 보면서 선생님은 간절히 부탁했다.


"보통은 이렇게 조기 치매가 발병하면 보호자 분들이 시설에 모셔다 두고 자주 방문을 안 해서 경과를 꾸준히 지켜보기 힘든데... 두 분은 참 어머니를 사랑하시나 봐요. 그래서 이렇게 부탁을 드립니다. 유전의 가능성이 있다면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자녀분들도 생각해 주세요.

저희가 장례 비용까지 본 병원에서 같이 진행할 수 있게 잘할게요."


장례까지 언급을 하는 것을 보니 살아 있는 동안에 꼭 해야 하는 검사인 것 같았다.

나와 동생은 그 자리에서 아무런 답변을 안 했다. 그리고 다음 약 받으러 올 때 말씀드린다고 제안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동생은 어머니의 뇌 상태가 어떻게 나빠졌는지 궁금해했다. 앞으로 모시고 살 텐데 정확히 알고 싶은 욕구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다만 검사 비용을 걱정했다.

나는 그런 동생에게 말을 했다.


"검사 비용은 걱정 말고 자비로 진행하자. 뭐든 진행 상태를 정확히 알면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런데 걱정인 게...."


나는 전신 마취를 하고 입원해서 진행하는 검사를 엄마가 견딜 수 있을지가 더 걱정스러웠다. 누가 봐도 엄마의 몸은 최악이었다. 어린아이처럼 항상 웃고 있고 어떠한 불만도 욕구도 없어졌지만 겉모습과 그 앙상한 가지처럼 마른 몸은 이미 한계점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행여나 부작용이나 무엇인가 잘 못된다면 검사를 하겠다고 한 우리 형제는 다시 죄책감에 평생을 살아야 할 것이 뻔했다.


"설마.. 그냥 촬영인데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겠죠?"


우리는 다음 방문일에 의사 선생님에게 무겁고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어봤다. 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받은 것처럼 들떠있었다. 검사를 한다는 말이 뇌 기증을 허락한 것으로 오해한 것이었다.

나는 희망고문을 하고 싶지 않아서 학자로서의 의사 선생님에게 단호하게 말을 건넸다.


"오해 마세요. 자비로 검사 진행을 할 거예요. 아직 기증은 잘 모르겠어요. 아니. 안 하게 될 거 같아요."


예상대로 선생님의 표정은 바로 돌처럼 차갑고 딱딱해졌다.


"비용이 많이 나오는데 그냥...."


"돈 걱정하지 마세요. 이럴 때 쓰려고 17살부터 학교도 안 다니고 일만 했나 봐요. 충분해요."


선생님은 실망을 애써 감추고 의사로서의 본분으로 돌아가서 입원에 대한 설명과 비용 그리고 검사 전 예약사항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치매가 아니라면 아니 이 정도로 심하지 않다면 수면 마취 없이 당일로 촬영이 가능할 모든 일이었다. 그런데 적어도 이틀 입원해야 하고 보호자도 무조건 상주해야 한다고 했다.

분명 기증으로 촬영을 설명할 때는 간호통합서비스로 자녀분들은 본업에 집중해도 된다고 했는데.

역시 상황에 따라 말이 언제나 변했다. 우리는 따지지 않았다.


아버지 암 투병 기간 지켜본 수없는 의사들의 태도도, 어머니 위암 수술 시 그 차가운 입술, 어머니 치매 진단 시 형식적인 질문들.  


내가 마음이 떨어져 나가는 동안 지켜본 그들은 월급쟁이 직장인이었다.

TV속에 나오는 김사부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미생에 오상식 차장이 이 현실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엄마는 입원을 했다. 동생이 일을 하고 있어 내가 모시고 갔다. 입원하기 전에 코로나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엄마는 온 힘을 다해서 거부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결국 간호사분이 나오셔서 같이 잡고 어렵게 검사를 했다. 동생은 일을 마치고 바로 짐을 챙겨서 병원으로 왔다.

같이 있으면 좋겠지만 일정이 있는 보호자로 병원에 남을 수 없어서 동생에게 또 무거운 짐을 넘기고 엄마와 동생을 병원에 두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큰 수술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촬영이지만 병원에 누군가를 두고 나오는 마음은 언제나 무거웠다. 이렇게 병원을 뒤로하고 나오면서 언제나 생각했다. 훗날 내 자식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집에 도착할 때쯤 동생에게 카톡이 왔다. 새벽에 마취하고 촬영이 들어간다고.


그리고 다음날 날벼락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의식이 돌아왔냐고 물었다. 의식이 있다는 말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큰일이 궁금했다.


"뭐가 큰 일인데. 지금 가고 있어 병원으로."

"아니. 엄마가 좀 이상해. 걷지를 못해."

"왜 걷지를 못해? 촬영 전까지 멀쩡하게 화장실도 가고 혼자 잘 걸어 다녔는데."

"안 그래도 물어봤는데. 마취가 너무 강해서 그럴 거라고. 지켜보자고 하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켜보자는 그 말을 어떤 어조로 했을지 안 들어도 뻔했다. 우리는 책임이 없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아주 냉정하면서 회피성 발언. 몇 번이나 살면서 들었다.


'시술은 잘 되었는데.. 경과를 지켜봐야...'

'최선을 다했는데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니 그래도 지켜봅시다.'


그놈의 지켜본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나는 흥분했지만 침착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는 예정대로 퇴원을 했다. 대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미친 듯이 화가 난 큰 아들인 나를 보며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웃는 엄마를 보니 밀려오던 화가 조금은 밑으로 가라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를 뒤에 두고 동생에게 물었다.

"주치의는? 모야? 이거 원래 권유했던 거잖아. 이거 부작용이래?"

"오늘 진료가 없는 날이라서 얼굴도 못 봤어."


할 말이 없었다.


이 상태로 다시 요양원에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휴가를 연장했다. 며칠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아직 요양원에 한 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멀쩡히 걸어 다니던 사람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쪽도 부담이 될 것은 뻔했고, 이 상황에 대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동생 집으로 모시고 오니 약 기운 때문인지 엄마는 바로 잠이 들었다.  우리 형제는 세상모르고 자는 엄마를 보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서로 주고받았다. 만약에 이게 뭔가 잘 못 된 것이라면 어떡하지. 불안하고 무서웠다.

사람이 거동을 못하면 운동도 제한되고 여러 가지로 악화가 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이사하면 주간보호센터에서 주간에 생활해야 하는데 엄마를 받아 줄 곳이 있을지도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말을 아끼면 엄마 걱정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의사를 원망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자비로 검사하겠다는 결정은 우리 형제가 했다. 누구 탓을 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기에.


그저 엄마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그 소박한 소망이 어쩜 이리 어려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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