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이사 오고 내 마음은 여전히 편하지 않았다. 고생할 동생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다. 그래서 전화기에 손이 자주 갔다. 특별히 할 말은 많지 않았지만 우리의 대화는 내가 엄마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항상 시작했다. 싱글이지만 그래도 고된 직장생활을 하고 엄마와 계속 붙어있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에 도움 줄 방법이 없음에도 이렇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동생은 너무 전화 자주 안 해도 된다고 괜찮다고 위로를 해줬다. 이보다 고마운 존재가 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었다.
동생은 별로 힘든 일이 없다고 내게 말했다. 엄마는 1년 전과 달리 주간보호센터에서 오면 거의 행동이 없이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잔다고 했다. 물론 엄마방 카메라를 보면 항상 누워 있는 모습을 보긴 해서 동생이 말 안 해도 알고는 있었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엄마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화가 나기도 했다.
무엇하나 뜻대로 된다는 확신도 없고 미래의 일은 더욱더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막상 이런 막막한 현실이 눈앞에 놓이면 비교하고 싶어 하고 괜히 죄 없는 신까지 탓하게 되는 나의 나약함과 연약함에 밤 잠을 뒤척인 적이 많았다.
엄마에게는 좋지 않을지 몰라도 참 다행인 것 하나는 지금 엄마가 다니는 주간보호센터는 보호자를 참 많이 배려한다는 점이었다. 운영시간도 길어서 엄마가 집에 오는 시간은 저녁 7시 20분쯤이라서 동생이 퇴근하고 오는 길에 아주 잠시 마트에 들러서 먹을거리를 살 정도의 시간은 주어졌다. 게다가 토요일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주 운영해서 우리는 토요일까지 엄마를 보내기로 했다. 동생이 격주로 주말 출근을 했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회사의 배려로 지금은 출근을 안 하지만 그럼에도 동생에게 아주 잠시 한숨 돌리고 정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처음 동생은 토요일, 일요일 모두 자기가 돌보겠다고 고집을 피우긴 했다. 그런데 내가 설득했다.
"아무리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부모를 모신다고 해도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휴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라고 네가 지치면 엄마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후회는 네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 토요일 주간이라도 스트레스 좀 풀고 평범한 척 시간을 보내라고..."
동생은 마지못해 알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지금 나름 생활 패턴을 조정해 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동생이 이사 후 나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 또한 직장과 박사과정 소논문 등 이런저런 일들을 정신없이 처리했다. 이기적이라고 여긴다면 맞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내 욕심 인 것을 부정하기보다는 이렇게 하루를 1초가 아깝게 지내야 나 또한 맨 정신에 버틸 수 있었다.
엄마 문제도 있지만 나도 한 사람으로 걱정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런 내 모습에 동생은 화를 내거나 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극을 받아서 본인도 직장을 다니며 추가로 자격증을 준비하고 직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서로 응원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나도 참 복이 많구나 싶기도 하다.
교수님께 학회 게재할 소논문 최종 검토까지 받고 접수를 마친 후 나는 그 길로 서울로 바로 차를 돌렸다. 요양원에 있을 때는 보고 싶을 마다 엄마를 보는 게 나름 힘들어서 짜증도 났는데 지금은 동생 집으로 가면 엄마가 항상 있다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었다.
늦은 밤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오디오 북을 들으며 운전을 하는 그 평온한 시간을 거쳐 나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 동생 집에 도착했다. 동생에게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자라고 말을 했지만 착한 동생 놈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현관문에서 신발을 벗고 엄마를 보기 위해 엄마 방에 들어갔다.
엄마는 어떠한 인기척도 느끼지 못하고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 평범해 보였다. 그냥 보통 사람보다 너무 마른 평범한 사람의 모습과 같았다. 그 누구도 증증치매로 모든 인지기능을 상실했다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동생은 3주 만에 올라온 나를 위해 야식을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우리 형제는 주방 작은 식탁에 앉아서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몇 십 분이 흐르고 엄마가 방에서 나왔다. 보통 이 시간에 주무신다고 했는데 아마도 우리가 떠드는 소리가 커서 그랬을 거라고 여기며 나는 엄마를 포옹했다.
엄마는 조용히 식탁 의자에 앉아서 우리가 먹고 있는 안주를 바라봤다. 엄마가 좋아하는 달달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인지 엄마는 자리를 떠나 거실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나와 동생은 그런 엄마를 바라보며 맥주를 먹었다. 잠시 후 엄마는 냉장고 앞에서 서서 냉장고를 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있었다. 냉장고는 경첩장치로 잠금이 되어있기에 엄마는 열지 못하고 당기는 시늉만 하며 우리 형제를 계속 바라봤다.
동생은 엄마가 유일하게 잘 먹는 카스테라 하나를 줬지만 엄마는 받아서 다 먹자마자 다시 냉장고 앞에서 사투를 벌였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참 어린아이와 같다고 느꼈다. 이렇게 다시 우리는 아이가 되는구나 싶었다.
엄마를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동생 직장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와중에 엄마는 갑자기 아주 또박또박한 목소리와 예전의 말투로 갑자기 말을 했다.
"야, 얼른 냉장고 좀 열어봐!"
나와 동생은 깜짝 놀랐다. 엄마가 말을 안 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말을 해도 단어 하나 정도가 전부였는데 방금 그 말투는 정말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엄마의 평소 목소리 톤과 말투 그대로였다.
우리는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아주 강렬한 눈 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냉장고를 손가락 질 하고 있었다.
우리 형제는 새벽 1시에 엄마 때문에 빵 터져서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왜 우리를 웃게 만들었는지는 아마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를 것이다. 엄마는 우리가 웃는 모습을 보고 한참 뒤 냉장고를 포기하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옆에 앉은 엄마는 다시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동생은 엄마한테 농담을 던졌다.
"김여사, 혹시 지금까지 치매환자 연기한 거 아니야?"
엄마는 뭔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우리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그때 예전에 동생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형, 우리가 양쪽에서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아주 멀리서 누군가 본다면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거 같아. 멀리서 보면 엄마가 치매인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냥 멀리서 보면 다 좋아 보이잖아."
나는 오늘도 누군가 우리를 영상으로 멀리서 찍는다면 아주 화목하고 불행과 어려움, 힘든 따위는 없는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겠구나 싶었다.
새벽에 엄마와 두 아들이 웃으며 야식을 먹는다고 아마도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아마 이 장면만 봤다면 엄마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말이다.
엄마를 다시 방으로 모셔다 두고 거실에 누워서 잠을 자기 전에 생각했다.
정말 동생말 대로 엄마가 우리 형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몰래카메라였다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냉정하고, 때로는 유머스러운 말을 던지며, 때로는 김치찌개도 만들어주고, 때로는 같이 여행도 가고, 때로는 2시간 넘게 엄마랑 이야기하며 아들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때의 엄마가 미친듯이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