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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02. 2021

아버지의 유언장

아버지와 반대로 살기로 했다

  아버지의 수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증상은 더 심해져서 왼쪽 신겨에 마비가 오고 걸을 때도 불편해 보였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수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술 전날 어머니와 동생도 병원에 찾아왔다. 아버지 수술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일상에 대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무도 수술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단체로 사람들이 몰려왔다. 주유소 직원들이었다. 그동안 몇 분이 면회를 오셨지만 이렇게 한 번에 몰려서 온 적은 없었다. 아버지한테 이번에 수술이 잘 돼서 주유소에 놀러 오라고 하면서 흰 봉투를 두 개를 나에게 건넸다. 봉투는 두툼했다. 그리고 “고 부장님 힘내세요.”라고 써져 있었다.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주유소에서 자신의 일이 아니어도 무엇이든 고장 나면 고쳐주고 다른 일손이 부족하면 언제나 먼저 나서서 도와준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손재주가 있었고 선천적으로 남을 도와주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성품이어서 보지 않아도 동료들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그래도 욕을 하는 사람보다는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찾아오니 나도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다른 봉투에는 주유소에 상호만 적혀있었다. 주유소 사장님 보낸 거라고 했다. 300만 원의 돈이 들어있었다.


  예전 동료이자 지금의 사장인 아저씨는 무심해 보여도 인정이 많아 보였다. 그러니 저렇게 작은 소매업에서 지금은 몇 개의 주유소를 운영하는 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료들이 떠나고 동료들의 봉투를 열어보니 직원 명단이 들어있었다. 각 자가 얼마씩 돈을 냈는지 적혀있었다. 150만 원 거금이었다.      

  모두 힘들게 밖에서 일하는 육체 노동자 들었다. 그래도 그곳은 아직 정이 살아 있는 직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봐도 아버지의 모습은 아픈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나 얼마 살지 못합니다.’라고 써져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며칠 후 병실에 수술실 베드가 들어왔다. 시간이 온 것이다. 아버지는 담담하게 침대를 옮겨갔다. 지친 모습에 안쓰러운 몰골이었다. 침대가 병실을 빠져나갈 때쯤 아버지는 나한테 급하게 손짓을 했다. 그리고 말을 했다.      

“종이하고 펜 좀 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노트와 펜을 침대에 옆에 놓아주었다. 같이 수술실로 이동하는 잠깐의 시간에 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간호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얼마나 걸리는지? 그러면서 종이하고 펜을 사용할 시간은 있는지?

  간호사가 말하기를 수술을 바로 하는 게 아니고 대기 시간도 있고 수술 마치고 응급실에서 잠시 있다가 위로 올라오기 때문에 아버지가 뭐든 적으시려고 가져가는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를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나는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유서를 쓰려는 것은 아닐까?      

  당신도 이번 수술이 불안했기 때문에 우리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생각을 했다. 만약에 내가 내 삶의 끝을 알고 있다면 나는 마지막 순간에 글을 남길까? 하지만 반대로 끝을 알 수 있는 삶도 축복이다. 그렇기에 남겨지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글을 남기고 죽기 전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암 판정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하였다. 나는 술기운에 여간 표현하지 않던 내 속마음을 부끄럼 없이 내비치고 있었다.

“울 아빠는 운도 좋아. 죽는 날도 알고 끝까지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가고” 말을 듣던 지인이 나에게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진지하게 죽음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만약에 두 가지 엔딩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첫 번째는 행복하게 자신의 원하는 모든 삶을 살고 있다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과 이별하는 삶이 있다. 두 번째는 삶은 엉망이고 명예도 사랑도 남는 것이 없는 삶인데 병으로 자신의 삶의 대략적인 마지막 순간을 알게 될 때이다.

 

  물론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누구나 첫째 삶이 낳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첫 번째는 행복하게 자신의 원하는 모든 삶을 살고 있다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과 이별하는 삶이 있다. 두 번째는 행복하게 자신의 원하는 모든 삶을 살고 있다가 병으로 자신의 삶의 마지막 지점을 알게 될 때이다. 물론 엉망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마지막 순간이 주어지면 더욱 삶을 포기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하는 삶을 살고 있던 상황이라면 그래도 갑자기 이별하는 것보다 당연히 어느 정도 시간을 더 보내고 좋은 마무리를 하고 싶을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이런 죽음에 시점과 삶의 마지막에 대해서 항상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노트가 밖으로 나왔다. 노트에는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남긴 글들이 있었다.


'유사장 나를 알아봐 줘서 정말 고마웠네'

'ㅇㅇ친구 같이 시간을 보내줘서 행복'

'나를 위로해줘서 감사합니다.'


나를 포함한 가족에게 하는 말들은 없었다. 한 사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았던 순간과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준 친구들과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이 남아있었다.

그 노트를 본 어머니는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작은 기대를 했던 거 같다. 30년 넘는 세월을 싫든 좋든 함께 한 동지인데 한마디가 없음에 서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자신의 가족들에게 가장 인정받고 싶은 한 남자였던 것이다.


이미지 출처: 유언장 - Google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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