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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Oct 30. 2023

52. 나이 마흔에 엄마랑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무리 치매라고 해도 엄마의 숨결은 따뜻했다.

  동생이 출장을 떠나고 단둘이 엄마와 보내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에 같이 일하는 후배한테 밥을 사주고 휴가를 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하지만 불편함도 잠시 엄마를 보살피는 일 때문에 모든 생각은 멈췄다.

버겁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고작 사흘이고 어쩔 수 없이 동생이 돌아오면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서 엄마랑 보내는 시간을 감사하게 느끼려고 노력했다.

게다가 주간에 엄마는 주간보호센터에 있었기에 잠시 머리를 식히고 나를 돌아보는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동생이 일찍 떠난 새벽, 나는 알람을 맞추고 7시에 일어났다. 엄마는 이미 일어나서 사탕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전화가 올 때까지 1시간 정도 남아 있었기에 여유를 부리며 빨래를 나누고, 엄마랑 같이 텔레비전을 봤다. 나름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드렸지만 엄마는 먹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시간을 보니 차량이 오기까지 10분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부랴부랴 엄마를 준비시켰다. 잠옷에서 외출복으로 옷을 갈아입히는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엄마는 이리 저러 도망 다니고 나를 보고 알 수 없는 미소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마스크를 착용시키고, 엄마 재킷을 입히려고 하는데 엄마가 화장실을 가겠다고 해서 결국 첫날 나는 기사님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아침에 아파트 주차장은 난리였다. 출근차량, 어린이집 차량, 어르신들 차량 등 혼란스러웠다. 특히 주차공간이 부족한 이곳은 더 했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몇 번이나 차를 앞 뒤로 움직이며 기다린 기사님을 생각하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고개를 숙여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엄마가 차에 타는 것을 도왔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차량에 탑승했다. 차에 앉은 엄마를 보니 조금 마음이 쓰였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엄마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따뜻한 것을 입혔어야 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아침에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경험 부족은 엄마에게 추위를 안겨줬다.

나는 닫히는 차 문 틈으로 엄마한테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어릴 적 엄마가 내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떠나는 버스를 바라봤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마음이 요동쳤다. 그리고 지금 일본에서 일을 하고 있을 동생이 바로 떠올랐다. 이 놈이 매일 아침 이렇게 빠듯하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미안했다. 지금 나야 휴가를 냈지만 동생은 이렇게 엄마를 보내면 바로 출근해야 했다.

매일 이렇게 엄마를 차에 태우며  깎이는 고통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는 비로써  알았다.


그렇게 한기가 느껴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다가 동네 카페로 향했다. 엄마 아들이 아닌 나라는 사람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침 카페는 한가했다. 노트를 펼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적고 또 적었다. 그러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주어진 이 시간 때문에 사치스러운 감정까지 느끼는 내가 조금 어이없었다. 그래도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랜만에 친한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이야기부터 내가 사는 꼴을 다 알고 있는 20년이나 시간을 보낸 한 살 차이 나는 형이었다. 형은 내 상황을 듣더니 자기가 반차 내고 엄마가 사는 동네로 오겠다고 먼저 말했다. 조금 망설였지만 나는 고맙다고 바로 대답했다.

2년 만에 만나는 것도 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탄과 푸념이 아닌 그냥 사십 대 아저씨들의 평범한 대화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게 필요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형은 도착했다고 내게 연락했다. 형이 오기 전까지 이것저것 글도 쓰고, 과제도 하면서 나는 시간을 보냈다. 형을 만나서 반주로 소주를 먹으며 일상 대화를 했다.


그냥 자식 키우는 이야기, 부부 싸움한 이야기, 회사에서 후배들 때문에 놀란 이야기 등 우리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입술을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4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엄마를 픽업해야 하는 것을 아는 형은 고생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도 형한테 휴가까지 내줘서 너무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냥 옆에 있어도, 설명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타인이 있다는 것은 인생을 사는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선물과도 같다. 내게 이런 사람들이 몇 명 있다는 게 나를 위로했다.


입에서 소주 냄새를 풍기며, 엄마를 픽업하기 위해 아파트로 향했다.

곧 차량이 도착했고, 엄마는 차에서 내려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 마트를 가자고 내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동생한테 들어서 알고 있던 엄마의 루틴이었다. 나는 엄마를 모시고 마트로 들어갔다. 엄마의 동공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추억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소라과자를 집어 들었다. 엄마를 옆에 두고 잠시 저녁거리를 사려고 진열대를 기웃거렸는데 그 틈을 타서 엄마는 도주가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급하게 마트를 나가서 엄마를 다시 모시고 들어왔다. 마트 사장님은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아무렇지 않게 우리를 바라봤다. 매일 같은 시간 엄마는 이랬던 것이었다. 엄마는 그대로이고 대신 동생에서 나로 바뀐 것이라서 사장님은 익숙해하셨다.


엄마 입에 소라과자를 넣어드리며 팔짱을 끼고 단지를 걸어서 올라갔다. 아파트는 좋으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동이라서 400미터 낮은 언덕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지금은 엄마가 걷지만 나중에는 분명 우리에게 힘든 언덕이 될 거 같았다. 엄마는 지쳤는지 팔에 힘을 주고 나에게 의지하며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입속에 소라과자가 있는 한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 비친 엄마 모습은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엄마한테 센터에서 뭐 했냐고 밝게 물어도 봤지만 엄마에게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걷기로 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냉장고를 향해 달려갔다. 잠겨 있지 않은 것 귀신처럼 알아차린 것이었다. 냉큼 사탕 하나를 꺼내 들고 수줍은 듯 동생 방으로 도망쳤다. 엄마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그대로 잠시 엄마를 두고, 저녁을 준비했다. 무엇을 준비해도 잘 먹지 못할 것을 알기에 내 손은 돌덩이처럼 무겁게 움직였다. 저녁을 차리고 엄마를 데리러 방으로 갔는데 엄마는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입에 사탕을 물고 자는 엄마를 자세히 보니 옷에 얼룩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분명 아침에 새 옷으로 입혀 드렸는데 더럽고 엉망이 되어 있었다. 엄마를 깨워서 식탁으로 데리고 갔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입맛은 한순간에 사라졌고, 나는 엄마를 씻기기 위해 옷을 벗겨드렸다. 엄마는 수줍은 듯 도망 다녔지만 내게 금방 잡혔다. 양말을 벗기기 재미있었는지 웃기 시작했다. 목욕하기 싫어하는 엄마를 사탕으로 유혹해서 겨우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아마 내 손길이 익숙하지 않아서 엄마는 씻기 싫었던 것 같았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동생이 전담해서 씻겼기에 미안함은 더 커져만 갔다. 부끄러워하는 엄마를 앞에 두고 딸아이 목욕을 시키 듯 이곳저곳 부드럽게 닦아 드렸다. 엄마는 이내 적응하고 다리를 꼬고 앉아서 큰 아들의 목욕 점수를 채점하고 있었다.

엄마의 알몸을 보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뼈만 남은 그 몸을 직접 만지면서 나는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았고, 지금도 힘들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이 정말 얼마 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목욕을 마치고 알몸을 말리고 다시 잠옷을 입혀 드렸다. 엄마는 그저 나를 바라만 봤다.


그리고 엄마는 방전된 배터리처럼 축 쳐져 침대에 쓰러지듯 누우셨다. 나는 한참 동안 엄마 옆에 앉아서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어릴 때부터 그토록 바라고 바랬는데 이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서글펐다.


전생에 무슨 대역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힘든 삶을 살까?

아니면 동생 말대로 전생에 너무 행복했기에 지금 생에 이런 고통을 겪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저녁 10시가 되어서야 엄마는 잠이 들고 집은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빨래를 널고, 집을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고, 다음날 엄마가 입고 나갈 옷과 기저귀를 미리 골라서 거실에 정리해 두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자정이었다. 일을 한 것도 아니고 대학원에 간 것도 아닌데 피곤함이 몰려왔다.


깊게 잠든 엄마를 확인하고 분리수거를 위해 스마트폰으로 엄마방 영상을 틀러 놓고 집을 나섰다. 쓰레기를 버리고 집에 혼자 자고 있는 엄마를 두고 가을밤의 밤하늘을 바라봤다. 문득 내 가족들이 생각났다. 서울에 올라온 사이 딸과 아내에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섭섭하기도 하고 그냥 나 혼자 감당하면 그만이니 잘 됐다고 생각도 하며 딸아이 사진을 몇 장 넘기다가 집으로 올라와서 누웠다.


한 것도 없는데 피곤했는지 바로 곯아떨어졌다. 자기 전에 서랍과 물건들을 다 정리해서 새벽에 큰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 같은 순간 갑자기 나는 눈을 떴다.

한 번 자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 나지만, 갑자기 누군가 침대로 들어와서 나를 만지니 놀라서 자동적으로 잠이 깼다. 각방을 쓴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어색한 것도 있었다. 꿈인가도 생각했는데 촉감이 꿈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가 싱글 침대에 들어와  나를 어루만지면서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실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작은 몸으로 나를 밀쳐내고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살포시 내게 몸을 붙였다. 나는 잠시동안 움직이지 않고 엄마의 온기를 느꼈다. 따뜻했다.

엄마는 처음부터 이곳에서 같이 잔 것처럼 눈을 감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다시 잠에 빠졌다.


침대에 누워 엄마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이처럼 엄마랑 가깝게 누워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났다.

엄마 손길 없이 단 1초도 생존하지 못했던 그런 약한 존재인 나를 엄마는 혼신의 힘으로 키웠는데, 어느덧 컸다고 엄마 가슴에 상처를 주며 성장했다. 내가 자라고 성인이 되기 위해 마치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건 당연하다는 듯 여기며 그렇게 엄마의 젊음을 희생시키며 세월을 보낸 게 후회스러웠다.


지금 이렇게 약해진 엄마를 바라보니 아쉬운 순간들이 너무 많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오래 사실 거라고 오만하며 보낸 시간들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바둥거리며 살아봐야 그래봐야 고작 별것도 없는 그런 존재인데,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나를 낳아주고 모든 것을 희생한 소중한 사람에게 수많은 상처를 줬나 나 자신이 미웠다.


너무 미안해서 조용히 엄마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엄마의 작고 연약한 등을 토닥거렸다. 오늘 밤이라도 아들 옆에서 행복한 꿈을 꾸며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엄마의 등을 어루만졌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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