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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15. 2023

54. 아픈 엄마를 목욕시켜주는 동생의 여자친구

치매 환자가 이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마음을 어떻게 글로 옮겨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브런치 저장글에 제목을 저장해 두고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매번 엄마 이야기를 쓴다는 게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미안하고 너무 고마워서 글로 표현하다가 이 사랑스럽고 위대한 마음이 망가질까 봐 두려웠다.



동생이 출장에서 돌아온 후 나는 엄마 생각에 잠겨 버스를 박았다. 다행히 아주 경미한 추돌 사고라서 기사분만 조금 병원에 다녔고 모든 일은 잘 정리되었다. 내가 렇게 사고를 수습하고 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동생은 직장 일로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엄마를 모시고 사는  병원 원장님도 다른 직원들도 다 알지만 어쩔 수 없이 급한 일이 생겨서 칼퇴근을 못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동생은 혼자 발을 구르며 견디고 있었다. 내게 표현도 못하고 그렇게 참아내고 있었다는 걸 나는 조금 늦게 알았다.


저녁 8시쯤 엄마가 돌아오고 한 시간쯤 지나면 나는 항상 스마트폰으로 엄마방을 본다.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엄마는 매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입에는 막대 사탕을 물고 두 눈은 텔레비전을 응시하고 있는 날도 있고, 그냥 사탕을 물고 두 눈을 감은 채 이불속에 그 조그마한 몸은 넣고 미동도 없이 잠이 든 날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8시에도, 9시에도 엄마방 화면이 비워져 있었다. 평일이었고, 동생에 별도로 연락받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결국 걱정되는 마음에 동생에게 카톡을 보냈지만 답글이 없었다.


대신 삼십 분쯤 지나서 전화가 왔다. 시간은 저녁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뭔 일 있어? 엄마가 방에 없던데.."

"아.. 나 일이 너무 많아서 기사분께 엄마 직장에 내려달라고 했어."

"............."


나는 침묵으로 대신 대답했다. 직장이 병원이라서 가능한 일기도 했지만,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그리고 눈치도 보였을 것이 뻔했다.

 상황이 그냥 싫었고 형인 나는 뭐 하고 있는 건지 스스로 질책을 퍼부었다. 


동생은 내 침묵에 괜히 미안했는지 내 침묵 사이로 먼저 말은 건넸다.


" 잘 마무리 됐어. 이제 택시 타고 집으로 가려고... 걱정하지 마. 엄마, 우리 병원에서 잘 누워있었어."

"어. 고생했어. 형 필요하면 말해. 어떻게든 휴가내서 올라갈 테니까.."

"어. 알았어."


그렇게 전화를 끊고 마음이 답답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치 산소가 부족한 공간에 누군가 나를 밀어 넣은 것만 같았다. 아무리 동생이 원했다고 해도 이렇게 살게 두는 건 아니었나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인가 싶기도 했고, 이렇게 한다고 아픈 엄마가 알아주기라도 할까 하는 어이없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이렇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내가 미웠다. 답답한 마음에 새벽에 혼자 동네를 몇 바퀴 걷다가 엄마방 영상을 열어봤다.

 엄마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평온한 표정으로 아주 행복한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총무과에서 일하는 동생은 자세히 표현하지 않았지만 아주 급한 일이 터져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세무사와 노무사에게 하루에도 수십 번 통화를 하면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급한 일은 해결되었다고 나를 안심시켰지만 목소리에서 다급함은 숨길 수 없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그렇게 며 칠이 흘렀다.


평소와 같디 아무 생각 없이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 엄마방을 카메라로 보려고 어플을 열었다.

나는 화면을 보고 누군가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멈췄다. 이내 눈에서 눈물을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미쳐버릴 정도로 고마워나도 모르게 흐른 눈물이었다.

이런 희생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하면 안 되었다.

가끔 내가 만약 한국 여자랑 결혼했다면 혹시나 이런 일이 혹시나 생겼을지 또는 내가 부탁했을지 모르는지만 아마도 부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내게는 부탁도 위로도 불가능했다.

절대 부탁할 수도 없고, 부탁해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렇게 단념했다.


그런데 동생 여자친구가 그 사랑을 행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 보이는 모습은 동생 여자친구가 엄마를 목욕시키고 나서 옷을 입히고 있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그 손길에 따라  차분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동생 여자친구의 모습은 뒷모습이 전부였지만, 그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엄마는 입혀주는 옷을 하나씩 입고 평온하게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면 속 엄마의 모습은 평소로 돌아갔다. 만약 내가 10분만 늦게 어플을 열었다면 나는 그냥 엄마가 센터에서 돌아와 쉬고 있다고 넘겨짚고 이런 일을 몰랐을 것이다.

누군가에 힘에 이끌려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동생과 여자친구의 이 마음과 사랑을 보고 힘내라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세상 정지 된 것처럼 한 곳에 가만히 멈춰서  숨을 밀어냈다.


 속사정이야 대충 이해가 되었다. 분명 회사에 급한 일이 터졌을 것이 뻔했고, 부탁할 사람이라고는 여자친구가 전부라서 이렇게 되었을 것이었다. 어쩌면 미리 부탁을 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어찌 되었던 고맙고 고마운 일이었다.


한 편으로는 동생이 기댈 곳이 있다는 사실에 이기적인 안도가 되었지만 바로 슬퍼졌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동생 커플의 시간이 안쓰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밖에서 달콤한 시간만 보내고 있을 텐데 이렇게 일찍 삶의 쓴 맛을 느끼는 모습이 씁쓸했다.


어쩌면 이렇게 모시고 산다는 결심을 한 순간부터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것을 동생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동생은 바쁠 테니 전화하지는 않았다. 대신 동생 여자친구에게 커피 쿠폰을 선물로 보냈다. 너무고 고맙다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보냈다. 내가 카메라도 봤다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선물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자리에 들려고 누웠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과연 어떤 심정으로 우리 엄마 목욕을 시켰을까? '

'얼마나 동생을 사랑하면 결혼도 안 한 상태에서 이런 행동할 수 있을까?'

'사랑의 힘이 이토록 위대했단 말인가?'

'나는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작은 아들, 큰 아들, 이제는 동생 여자친구까지 이렇게 엄마를 목욕시켜 드리고 있다. 참 이러고 보면 우리 엄마는 복이 많은 거 같았다. 


어떤 치매 환자가 이토록 사랑을 받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항상 불쌍하다고 여겼던 엄마인생이었는데 지금 보니 엄마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프고 나서 더 환하게 웃는데 그 웃음이 아파서 웃는다고, 실없는 웃음이라고 단정 지었는데, 아마 엄마는 이렇게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웃고 또 웃는지 모른다고..



다음 날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여자친구가 엄마 씻기고 방으로 모시고 와서 옷 입혀드리는 거 봤다고 그래서 선물을 보냈다고. 동생은 여자친구에게 들었다고 담담히 말하며 오히려 내게 선물 보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날 하루종일 동생과 동생 여자친구를 생각했다.


저 둘도 빨리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게 안타까웠다. 언젠가 분명 결혼을 하겠지만 지금 우리 집안 꼴을 곱게 이해해 줄 딸 가진 부모님이 계실까 하는 걱정도 됐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인연을 놓치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결혼은 집안끼리에 결합에서 완벽히 벗어날 수 없기에 그래서 괜히 걱정스러웠다.


고작 5년 빨리 태어났다는 이유로 형이 된 나지만, 집안에 중요한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는 가장이라서 이런 고민 앞에서 매번 심각해지곤 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만약에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아니, 무슨 일이 생기지도 않아도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로 계속 만난다면 내 모든 것을 줘도 절대 아깝지 안다고.

꼭 그러고 싶다고, 나중에 꼭 그리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보통은 사랑은 아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런 거짓말을 아직 뻔뻔하게 하기에 덜 성숙해서.


그러면서 잠시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가끔 어두운 얼굴로 혼자만 힘든 척 살지만 어쩌면 나도 엄마만큼이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형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수 천 번 다시 환생해서 태어나도 이런 동생을 만날 수 없을 것이고,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배려심 많은 동생 여자친구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버틸 수 있고, 좌절보다는 희망을, 눈물보다는 웃음을 간직하며 하루하루를 지낼 수 있다고, 괜찮은 인생이라고 말이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울 일이 넘쳐나서 정말 행복하다고 말이다.  


나의 결혼생활은 참으로 외롭고 기댈 곳이 없지만 그래서 이런 모습만 보여줘서 참 동생에게 미안했지만, 참 다행이고 동생은 따뜻한 위로를 주고받는 사랑을 하고 있어서.


나중에 따뜻하고 온기가 넘치는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 다행이라고.

물론 그들도 다투고 싸우고, 서로 실수하고 서운함을 남기기도 하겠지만 분명 동생도 이런 고마운 마음을 평생

간직하고 사랑으로 보답할 테니 말이다.



오래전 술을 먹고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네 형수가 정말 한국사람이고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그래서 형이 엄마를 모시고 살 수만 있었다면 정말로 정말로 형은 몸이 부서져라 형수를 위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줬을 텐데...."


알고 있다. 아픈 엄마 모시려고 결혼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둘만을 위해 사랑해서 결혼하는 것이 맞다.

근데 그렇다. 만약 우리 엄마를 자기 엄마보다 더 사랑해 주면 그 모습에 더 미치도록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아직은 나를 참 어려워하지만 나중에 오랫동안 보게 되면 그때는 돌아가신 우리 아빠, 아픈 우리 엄마를 대신해서 정말 잘해주겠다고. 무엇이든 동생 부부가 잘 살 수 있도록 무너지지 않고 제나 든든한 등대가 되어주겠다고 행복한 다짐을 했다.


그리고 이 글을 빌어서 진심을 담아서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엄마한테 잘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고 두고두고 보답하겠다고. 그리고 내 동생 곁에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머물러 주고 자리를 지켜줘서 정말로 감사하다고 말이다.



치매 엄마의 두 아들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북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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