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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Nov 22. 2023

55. 엄마 제발 오줌은 화장실에서   

조기치매로 자신을 잃어가는 엄마와 두 아들 이야기.

엄마가 요양원에서 집으로 오고 시간이 조금 흘렀다. 불과 몇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엄마는 처음과 비교할 때 벌써부터 달라진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대소변을 전혀 가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요양원 계실 때부터 실수를 해서 기저귀를 착용하고 다니셨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동생집에 가서 직접 돌보기도 하고 동생과 통화하며 들을 때마다 매번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하루가 불편했다. 저녁에 주무시기 전 아무리 화장실을 모시고 가도 자는 동안 실수를 했다. 그래서 동생은 아침마다 소란스럽게 날리를 치고 있었다.

기저귀를 대용량으로 바꿔도 체중이 너무 빠져서 그런지, 양이 많아서인지 이불로 침대시트로 소변이 흘렀다. 이불이야 다시 빨면 된다고 해도 보호센터 아침에 보내고 동생도 출근해야 했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가 저녁에 목욕을 시켜도 아침에 또 씻겨야만 했다. 모시기로 한 순간부터 모든 것을 감수하고 이해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 밀려오는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벅차고 막막함과 함께 짜증까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동생이 출장을 간 동안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그런 일이 내게도 몇 번 있었다. 엄마를 부여잡고 목요탕으로 모시고 가는데 엄마는 계속 샤워를 거부했다. 그 불편한 기저귀를 입은 채 계속 소파로 향하려고 하고 사탕만  달라고 하는 엄마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애교를 부리고 사정하고, 힘으로 끌고 가려고 해도 엄마는 쉽게 말을 안 듣지 않았다. 그 상황 속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이해 못 할걸 알면서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엄마, 씻자. 엄마.. 가자. 어? 엄마. 왜 우리한테 이래.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직도 사는 게 힘든데 엄마까지 왜 그래.."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한탄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아니 엄마를 무시한 못된 태도였다. 아무리 답답해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다. 결국 좌절감을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우리 형제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고. 하면 안 되는 말을 쏟아냈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까지 흘렀다. 엄마는 한참 동안 내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더니 웃었다. 큰 소리로.

그 순간 언젠가 동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형 엄마가 좀 이상하게 웃잖아. 근데 엄마 슬퍼도 웃는 거 같아. 가만히 보면 그렇게 밖에 감정을 표현 못하는 것 같아. 엄마가 슬픔을 표현하는 기능을 상실했는데 감정은 그대로 느끼는 것만 같아. 가끔 나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엄마의 큰 웃음소리가 엄마의 울음으로 들렸다.

누구보다 큰 아들인 내게 의지하고 나를 사랑했던 엄마였다. 힘들게 사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럼에도 도움이 되지 못해서 항상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무모한 선택을 해도 항상 나를 응원해 줬다. 그런 엄마가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픈 게 분명했다.


성인 되고 엄마 앞에서 몇 번 울지 않았다.


아빠가 사고를 치고 집을 망가 트리고 할 때 나는 엄마, 아빠의 이혼서류를 만들어서 아빠에게 이혼하고 집에서 나가 달라고 말했다. 아니 절규했다. 이제 좀 사람답게 살자고, 정신 좀 차리라고, 바둥거리면서 살고 있는 엄마랑 나랑 동생 좀 봐달라고 고함치며 울었다.


그때 엄마는 죄인처럼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마치 당신의 죄를 자식인 내가 받는 것 같다고 느끼며 못난 자기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런 아빠 문제를 모두 해결하고 이제야 좀 제대로 사나 했는데, 아빠는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바로 엄마의 위암. 5년 뒤에는 치매로 이어졌다. 그 모든 시간이 너무 어둡기는 했다. 부여잡고 있는 모든 것은 항상 찢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무엇이든 잡고 있어야만 했다. 살기 위해서 아니 살아지니까 온몸에 힘이 빠져도 온 힘을 다해서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큰 소리로 어색하게 웃는 엄마를 부여잡고 울었다. 오랜만에 목청이 터져라 울었다.

언젠가 터질 눈물이었다. 항상 동생 때문에 우는 것도 소리 없이 울었다.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아무리 힘들어도 동생이 내게 기댈 수 있게 강한 나무가 되어야 했으니까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동생도 없었고, 충분히 울어야만 했다. 그래야 다시 엄마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겨우 씻겨서 조금 늦게 나가 기사분께 엄마를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아파트 벤츠에 앉았다.  이 일을 동생은 매일 하는데 형이라는 놈이 고작 몇 번하고 자멸해 버린 것이  부끄러웠다. 이런 나약한 사랑으로 어찌 엄마를 모시겠다고 그것을 허락했나 어이없기도 했다.

결국 이런 일이 있었다고 동생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더 흘렀다.


몇 주가 지나고 어느 날 점심 동생이 전화를 했다. 웃기면서 놀란 일이 아침에 있다고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형.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방에서 무슨 청소기 돌리는 소리가 난 거야. 그래서 혹시 청소를 하나 싶어서 열었는데.... 엄마가 자는 동안 실수해서 이불이랑 바닥에 오줌이 흘렀더라고..."


거기까지 들어도 가슴이 막막했다. 그래도 동생에게 묵묵하고 고요한 바다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밝게 호응하면서 계속 들었다.


"그게 헤어드라이기를 꺼내서 옷을 말리고 있더라고. 축축해서 말리고 싶었던 거지. 게다가 서랍에 있는 사진이랑 물건들 다 꺼내서 보고 있더라고. 손녀딸 이름을 혼자 말하면서.."


손녀딸 이름을 말하면서 오줌을 말리고 있었다는 엄마의 모습을 본 동생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출근을 했을까?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동생은 혹시 드라기 때문에 불이 날까 봐 자신을 자책했다.

나는 영혼 없는 웃음을 동생에게 건네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전화를 끊고 그 장면을 혼자 떠올렸다. 그러면서 혼자 푸념을 늘어놓았다.


'우리 엄마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언제까지 동생이 버틸 수 있을까?'


그날 저녁 혼자 방수커버랑 매트리스를 쿠팡으로 검색했다. 아침마다 빨래를 돌리고 출근하는 동생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단 하루에 무너져 버린 모자란 형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런 작은 선물이 전부인 것이 참 쪽팔렸다.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과 치매환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어쩌면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아이는 정말 작아서 씻기는데 사투를 벌이는 게 비교적 덜 힘들다. 하지만 엄마의 경우는 다르다. 물론 마르고 마른 작은 몸이라서 씻기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에너지 소비가 엄청나다. 그리고 가장 큰 한 가지 차이점은 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대소변을 스스로 해결한다. 힘들지만 버티면 결국 좋아진다. 그런데 엄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진다. 그래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마음은 언제나 힘든 것 같다.

물론 뾰족한 대안은 없다. 그렇다고 다시 요양원에 보내고 싶지도 않다.


적어도 엄마는 지금 행복해 보인다. 나름 애교도 부리고, 사탕도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센터에서 오면 아주 자연스럽게 자기 방에 들어가서 편히 쉬며 잠도 잘잔다.


이런 모습을 카메라 영상을 통해서 보든 , 직접 집에서 보든 우리 형제는 이렇게라도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사실 행복하다.


단지 너무 빨리 이런 상황이 닥친 것에 대한 원망이 있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여유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종종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그래서 나랑 동생이 더 늙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똑같이 힘들었을 것은 분명했다.


엄마의 대소변이 더러워서 이런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이렇게 된 엄마를 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마음이 요동을 쳤기 키보드를 두드렸다. 글을 쓰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먼 미래에 나도 엄마처럼 내 자식에게 짐이 된다면 그래서 행여나 행복하게 살던 내 자식이 나 때문에 마음 아프고 힘들어할까 봐 두려웠다. 조용히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이런 병을 얻게 된다면 미안해서 어떻게 살지 그런 쓸데없지만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오르는 걱정이 머리를 맴돌았다.



최근 이런 내 감정을 귀신처럼 읽었는지 동생은 언제부터  인가 아침에 엄마가 실수했다고 내게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스마트폰으로 엄마방을 보면 아침에 동생이 엄마를 목욕시키고 방으로 모시고 오는 모습을 종종 본다. 동생 말대로 이 모습도 그리워지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괜찮다는 그 말을 떠올리며  매일 힘든 아침이지만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를 사랑해 본다.


엄마는 엄마대로 일어나서 축축한 이불감촉과 냄새에 불편할 것이고, 동생은 그것을 치우고 엄마를 씻기고, 젖은 이불을 세탁하면서 힘들 것이고, 나는 나대로 그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보면서 숨죽여 울면서 시작하는 아침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우리의 아침을 응원한다.


누군가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엄마를 아직 우리는 매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기 치매로 자신을 잃어가는 엄마와 두 아들 이야기를 담은 브런치북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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