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통화버튼을 누르기 두려웠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온다는 것은 엄마에게 분명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이기에 무서웠다. 심호흡을 하고 머릿속에 떠도는 불안한 생각을 잠시 마음 한구석으로 억지로 밀어 넣고 밝은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무슨 일 있어?"
동생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무엇인가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 또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동생이 내게 말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그 침묵을 지켜줬다. 뭔 일이냐고 다급하게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그리고 잠시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이 이토록 잔인하고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형.. 엄마가..."
"엄마가? 왜? 무슨 일인데.."
"엄마가 화장실 변기에 넣는 그 파란색 있잖아..."
무엇을 말하는지 알았지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 파란색이라는 말 뒤에 동생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나는 엄마가 그것을 먹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탕처럼 생긴 모든 것은 어린아이처럼 엄마는 입으로 가져갔다. 마치 엄마 삶의 갈망이자 사는 이유가 된 지 오래였다.
"엄마가 그거 먹었어?, 그래서 엄마는 지금..."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어보았다. 걱정이 앞섰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나도 모르게 변기세정제를 먹으면 이라는 문장을 검색창에 쓰고 있었다. 변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니 분명 인체에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미 엄마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정상 이하의 기능을 발휘하며 겨우겨우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되었다.
"내가... 아니. 엄마가 그걸 새벽에 먹었더라고. 자는 동안에.."
동생에게 침착하라는 말을 하고 엄마의 상태를 다시 물었다.
"모르겠어. 구멍이란 구멍에서 진한 파란색이 흘러나와.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뭔가.."
"119 불렀어? 아니 응급실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당황하고 있는 동생에게 명령하듯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음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바로 몰려왔지만 내 입술은 이미 통제권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동생은 다급하게 알겠다고 하고 바로 전화한다는 말고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이미 보호센터 차량이 오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까 생각했지만 참았다. 우선 출근해야 했기에 차를 급하게 몰고 직장으로 향했다. 바로 휴가를 내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게 직장에 도착하니 동생에게 사진 한 장이 왔다. 그 사진을 본 나는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버렸다.
엄마가 변기에 앉아 있는데 입술 주변과 변기 밑에 진한 파란색 물로 변해있었다. 엄마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욕조 타일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이 모습을 본 동생이 얼마나 놀랐을까. '엄마는 괜찮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휴가를 쓰겠다고 말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는데 다시 카톡이 왔다.
"형, 엄마 모시고 응급실 왔어. 지금 형이 와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급하게 오려고 하지 말고 기다려. 내가 상황보고 바로 연락할게."
휴가를 낸다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동생은 내 걱정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매번 4시간 운전해서 올라오는 걱정하는 미련하고 착한 동생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오직 엄마를 위해 자신을 태우면서 내 걱정을 하는 그런 동생 놈이다. 오늘도 그렇게 동생은 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바로 말해줘, 형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바로 올라갈 테니까.. 그리고 선생님만 만나면 문자나 전화 주고.."
인터넷 검색결과 변기세정제는 먹었으면 위세척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고, 다른 몇 가지 포스팅을 볼 수 있었지만 모든 정보가 부실했다. 물론 그럴만했다. 누가 변기세정제를 먹는단 말인가? 인터넷도 사람들이 좋아하고 검색을 할 글을 모아둔 곳이기에 이런 막막함에 대한 정확한 답변이 존재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단지 향후 부작용 방지를 위해서 체내에 이미 들어간 세정제를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위세척을 해야 하는데 과연 엄마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그게 더 걱정되었다. 머리 촬영을 위해 수면 마취를 하고 MRI를 찍었는데 거동 마비가 와서 거의 2주일 동안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들에게 아주 당연한 것이 엄마에게는 당연하지 않아 졌다.
발을 동동 구르며 동생의 소식을 기다렸다. 야속하게도 이런 날 일감은 몰려왔다. 이곳저곳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고 내 몸은 마치 기계처럼 반응하여 일을 처리했다. 그 누구에도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직장에서 엄마 이름을 대고 많은 배려를 받은 터라 나도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 아주 확실해지면 청원휴가를 내서 올라갈 생각을 하고 주어진 일을 처리했다.
그렇게 일하며 틈이 나면 핸드폰을 봤다. 동생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결국 나는 전화를 걸었다.
"어.."
동생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아니 화가 난 목소리가 분명했다.
"선생님 만났어? 엄마는? 지금 뭐 하고 있어?"
나는 쉼표 없이 말을 이어갔다. 동생은 분노가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미친.. 아... 아직.."
이 반응은 낯설지 않았다. 아빠가 간암 말기로 쓰러졌을 때도, 엄마가 위암 수술을 받았을 때도, 내가 목디스크 시술을 받고 잘못돼서 고통에 울고 있을 때도. 병원 관계자들은 언제나 미친 듯이 침착했다. 아니 마치 AI 로봇 같았다. 그래서 동생에 반응을 듣고 짐작할 수 있었다.
"아직 선생님이 안 왔어?"
"어.. 살짝 보고 그냥 갔어. 엄마 그냥 누워있어. 수액 맞으면서.."
"아.. 근데 너 직장은?"
"오늘 정말 바쁜 날인데... 나 일단 부장님한테 말 말하고 바로 병원으로 왔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아니라면 여유를 부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병원에 화가 난 것도 있었지만 회사에 출근하지 못해서 짜증이 난 것도 포함된 듯했다.
"형이 바로 올라갈까?"
"아니야 도착하면 너무 늦어 그전에 뭐든 결과가 나올 거야."
동생은 다시 한번 재촉하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바로 후회를 했다. 만약 아침에 바로 올라갔다면 아마 지금 쯤 서울에 들어갔을 텐데... 그랬다면 동생이 바로 출근을 했을 텐데....
늦은 후회를 쏟아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엄마는 구토하거나, 의식이 없거나 하는 그런 증상이 없다고 했다. 다만 계속 대변과 소변을 보며 파란색 세정제를 배출하고 있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안도했지만 마음은 계속 불편했다. 아직 아무런 치료도 못 받는 상황이라서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 표현하지 않지만 자책하고 있을 동생이 더 걱정되었다. 이사를 하면서 나름 잠금장치들을 했지만 그럼에도 불안했다. 엄마는 절대 예측할 수 없고, 말이 통하지 않으며, 어떠한 부탁에도 행동이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언젠가 생겨도 생길 수 있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동생도 마찬가지로 신경 쓰며 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매일매일 엄마를 간호한다는 것에 그 예민함이 조금 느슨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올라갈 때마다 동생을 대신해서 그런 것들을 조금씩 보완했지만 이처럼 세정제를 먹는 것으로 착각해서 먹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를 곁에서 잘 보살피려고 했는데 어쩌면 엄마한테 더 고통만 주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직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앞으로 또 어떤 일들이 벌어져 가슴이 타들어가는 놀람을 경험해야 하나 걱정스럽고 무서웠다.
그러면서 응급실에 누워 있을 엄마를 떠올렸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여기 온 지도 모르고, 왜 입에서 파란색 물감이 흘러나오는지도 영문도 모르고 있을 엄마가 생각났다.
제발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엄마가 뭔가 고통받지 않게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하고 기도했다.
이 모든 것을 견딘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엄마도 우리만큼이나 답답하고 힘들어 하고 있을거라고.
그러니까 이 순간도 모두 그리워하며 지금만 생각하자고 마음에게 말을 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은 의사를 만났다고 조금 있다가 바로 전화하겠다고 내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