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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23. 2023

58. 엄마, 아들이 좋아? 사탕이 좋아?

두 아들과 치매로 인생이 더 행복해진 엄마 이야기

  서울에 가끔 일찍 도착하면 동생이 퇴근하고 같이 엄마를 배웅하러 현관으로 내려간다. 주간보호센터 차량 기사님은 항상 도착 5분 전에 전화를 주신다. 그럼 우리는 1층으로 내려가서 언덕 밑에서 올라는 차들을 바라본다. 이런 삶이 이렇게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당황스러웠지만 벌써 수년이 흘렀고 이제 우리에게는 그저 일상이 되었다.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언제나 원하는 행복한 엔딩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찍 배웠고 그만큼 어른이 되었기에 지금은 미친 듯이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엄마가 더 심해지지 않고 지금처럼만 곁에 있어 주기를 조용히 바랄 뿐이다. 


날씨 때문인지 기다리는 몇 분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살 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은 마치 내 마음처럼 차가웠다. 잠시 하늘을 보며 멍한 시간을 보내니 노란색 차량이 아파트 출입구에서 우리쪽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버스는 좁은 아파트 주차장을 돌아서 힘겹게 우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뒷자리 문이 열리자 엄마가 보였다.


분홍색 목도리와 검은색 장갑을 착용하고 구석 조용히 앉아 계셨다. 우리가 밝게 웃으며 '엄마'라고 부르자. 엄마는 잡아달라고 손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나약한 몸이 상할까 조심스럽게 엄마를 잡고 내리는 것을 부축했다. 엄마는 우리 얼굴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마스크 때문에 입모양은 볼 수 없었지만 눈으로 행복하다고 충분히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우리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를 가운데 두고 엄마의 차가운 등을 어루만지며 엄마 손을 잡고 팔짱을 끼었다. 두 아들 가운데 포게진 엄마는 우리 얼굴을 돌아가면서 보며 약간 경사진 언덕을 오르기 위해 그 가얇픈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사탕 좀 줘봐."


나와 동생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우리를 보고 행복해서 웃었던 것인지, 아니면 사탕을 받기 위해 애교의 눈웃음을 날린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엄마의 작고 당당한 한마디가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나는 집에서 주겠다고 추우니까 빨리 올라가자고 했다. 그 말이 실망스러웠는지 엄마의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었다. 마치 집에 가기를 저항하는 어린 아이 같았다.


동생은 그런 엄마한테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질문을 했다.


"엄마, 아들이 좋아? 사탕이 좋아?"


그 질문에 엄마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 눈을 감았다. 대답하기 곤란하거나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나타나는 행동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아이처럼 순수해서 웃음이 나왔다.


"사탕이 더 좋아서 대답을 못 하는구먼."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두 눈을 감았다. 아마 사탕이 좋다고 말하면 우리가 서운하게 생각할까 봐 억지로 배려를 하는 것 같았다. 집으로 올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엄마에게 사탕이 더 좋아서 대답을 못하는 거냐면서 계속 장난을 쳤다. 그 짧은 행복의 시간을 가슴으로 기억하기 위해서 슬픔은 덮어두고 최선의 노력을 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추워하는 엄마를 양쪽에서 어루만지며 기다렸다. 사탕을 단념했는지 엄마는 말을 돌려서 다른 질문을 했다. 물론 매번 반복하는 말중에 하나였다.


"문이 열려? 문이 열려?" 


엄마의 행동은 매우 규칙적이 되었다. 상황에 따라서 하는 말은 마치 녹음된 파일처럼 정확하게 반복되었다. 우리를 보면 사탕을 달라고 하는 말, 지금처럼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면 언제 문이 열리냐고 물어보는 것이 그러했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상황에 맞게 차분하게 엄마에게 설명을 해줬다. 


"1층으로 내려오면 문이 열리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문이 열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약간 큰 소리로 억지 웃음소리를 냈다. 동생은 엄마의 웃음에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분명히 무엇인가 표현하려는 것인데 이제는 이렇게 이상한 소리로 웃는 것만 가능해진 것 같다고 했다. 표현하고 싶은데 방법이 한정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슬퍼도 웃고, 웃겨도 웃고, 화가나도 웃고, 행복해도 웃게 된 것이다. 


'하루에도 수천번 달라지는 게 우리의 감정인데 이제 엄마한테 남은 표현법이 겨우 한 개구나.'


너무나 당연해서 남에게 상처도 주고 스스로 상처도 받으며 표현하게 되는 이 감정이라는 것이 정말로 우리 인생에 소중한 것이구나 싶었다. 때로는 절제하지 못해서 후회하고, 철없이 행복한 모습을 보인 것에 후회하고, 표현하고 싶어도 밖을 나오지 못해서 후회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물론 나도 후회를 한다. 아직까지 노력하고 있지만 감정표현에 선수는 절대 아니다. 아직도 어렵고 힘들다. 내 경우에는 마음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특히 그것을 표정이나 말로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오해받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특히 딸에게 종종 실수하고 며칠 동안 혼자 마음 아파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반복되는 행동에 자책을 수없이 했다. 


이런 실수는 아마 자식 입장에서 보면 엄마한테 가장 많이 했을 것이다. 특히 가장 밀접하게 매일매일 보내는 그 사소한 시간만큼 후회도 늘어난다. 지금은 그저 우리를 보면 무표정 또는 사탕을 달라고 환하게 웃는 두 가지 얼굴만 남은 엄마지만, 우리 엄마도 다양한 표정을 가진 그런 평범한 여자였다.

특히, 뭔가 서운하고 그러면 표정에 그 마음이 금방 나타났다. 하지만 엄마는 그 상처받은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었다. 본인 속이 타들어가도록 그냥 스스로 참고 감수하는 그런 미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지 몰라도 나는 참 엄마한테 미안하다. 어린 시절 나는 참 못된 아들이었다. 엄마 속이 시커멓다면 아마도 내가 절반 이상의 나쁜 짓은 내가 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까지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아빠를 닮아서인지 유난히 아침잠이 많은 나를 깨우는 일은 엄마한테 매일 하루의 고난이었을 것이다. 성격도 그지 같았다. 일어나기 싫은 그 무거운 몸뚱이에 감정을 엄마한테 매일 쏟아내곤 했다. 물론 그러다가 한 번은 엄마한테 심하게 당하기도 했다. 그날도 엄마한테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며 이불속에서 뒹굴 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불이 사라지고 차가운 물이 내 머리로 쏟아져 내렸다. 잠은 한순간에 도망가고 나는 방금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해 멍하니 축축한 이불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미안한 마음에 나는 젖은 몸을 수건으로 닦고 조용히 학교로 향했다. 


등교하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얼마나 속이 상하고 내가 심했으면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다고 다음날부터 아침에 발딱 일어나는 그런 착한 아들로 변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마도 벌을 받았는가 나는 20년 동안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직업을 선택했고, 매일 아침 작은 알람에도 눈이 번쩍 떠지는 초 긴장된 삶 속에서 아직 살고 있다. 물론 결혼했어도 달라진 것은 없다. 만약 조금 포근한 관계였다면 다시 그 습관이 스멀스멀 올라왔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방을 따로 쓰기에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여전히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이런저런 생각들은 특히 서울집에 가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면 계속 피어난다. 동생과 옛날 추억을 꺼내 안주 삼아 이야기하는 일상은 어쩌면 내게 위로이자 삶의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은 아파서 엄마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요즘 어떤 고민을 하지는 모르는 게 위안이 되기도 한다. 


만약 지금 아들이 경험하는 현실을 알았다면 속상해서 엄마는 스스로 자책하며 두 아들이 떠난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조용히 울고 또 울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엄마는 누구보다 행복하다. 어색하고 억지로 만들어진 것 같은 그 웃음소리일지라도 나는 그 소리가 좋다. 건강하실 때 어두운 표정에 세상의 걱정을 다 품고 지냈던 엄마보다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


다행히 최근 변기청결제를 먹었지만 특별한 후유증은 없어 보인다. 동생과 나는 많은 걱정을 했지만 엄마는 잘 이겨낸 것 같다. 게다가 요즘 약 때문인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한다고 동생이 말했는데, 실제로 만나서 보니 엄마의 기분이 더 좋아 보여서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요양원에서 나와 새로 만든 보금자리에서 동생의 간호를 받으며 편하고 따뜻하게 주무시는 이런 날들이 엄마에게 어떤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거라고 믿는다.


비록 사탕한테 밀려버린 두 아들이지만 서운하기보다는 기분이 좋다. 이렇게 무사히 2023년을 마무리하고 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아직도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이렇게 엄마 두 손을 잡고 포옹할 수 있어서 모든 순간이 아름답고 행복하다.  


엄마 덕분에 유난히 추운 겨울이지만 우리 형제의 마음은 너무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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