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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Dec 12. 2020

간암 말기 입니다.

아버지와 반대로 살기로 했다

간암 4기 입니다.



아버지와 반대로 인생을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1. 재정 관리와 금융 지식을 충분히 습득한다.

2. 정에 이끌려서 사업이나 관계에 사적 감정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3.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두고 영향력이 없는 사람과는 관계를 멀리한다.

4. 가정에 충실하고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나를 발전 시킨다.

5. 부지런한 습관을 만들고 본인 건강은 스스로 챙긴다.

6. 책임질 수 없다면 자식을 낳지 않고 자식이 생긴다면 더 밝은  미래를 준비해 준다.     



이것이 아버지와 반대로 해야 하는 내가 그 당시에 생각했던 리스트였다.

자식에 된 입장에서 평생을 관찰하면서 아버지의 인생이 비참해 진 이유를 요약 해보았고 원인을 생각해서 그 반대로 행동하는 나름의 수칙을 만들었다. 이유는 부모는 자식에게 거울이 될 수 밖에 없다. 가장 오랜 시간 보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닮아 간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분명 나중에 나 또한 아버지처럼 행동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아버지는 나에게 휼륭한 스승이 였던 것이다.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면 많은 부분을 아버지와 반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했고 나만의 새로운 습관이 만들어지면서 내 삶도 크게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니 어머니는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나가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아빠가 이혼하기 싫다고 이혼 못한다고 하면서 나갔다고 했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누가 쉽게 도장을 찍고 한순간에 남이 되려고 하겠는가? 그것도 본인이 가진 것이라고는  뿐이 없는 상태이고 이 세상에 본인을 도와 줄 유일한 사람들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알아보던 과정에서 개인회생을 하면 아버지 급여에서 부채를 상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법무사에 수수료를 내고 요구하는 사항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곧 있으면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다급하게 느껴졌다. 소명서도 제출해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사업 실패 이후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글을 작성해야 했다. 사실이 아닌 글을 작성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까지 밀려왔다. 그래도 주변 지인들에게 검수까지 받으며 최대한 애절하게 작성을 해야만 했다.


부채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도 금융기관, 카드회사를 모두 방문하고 내용을 받아서 첨부해야 했다. 군 생활하면 배운 행정능력이 이렇게 유익하게 활용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게 서류를 제출하고 달력을 보니 4일 후면 복직날이였다. 그리고 부대에서 전화가 왔다. 인사과에 담당관이였다. 선배님 보직을 격오지로 배정해야 한다는 것이 였다. 군에는 퇴근이 자유스럽지 못한 격오지가 있다. 그 당시에 나는 미혼이였기에 한달에 2박3일 뿐이 휴가를 못가고 24시간 부대에서 동숙을 하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였다.


나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조기복직을 한 이유와 한달동안에 대략 무슨일을 했는지 그리고 아직 그 일이 진행 중이기에 퇴근을 필요하다는 구구절절한 내용들이였다.

자존심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이유는 그 인사실무자는 내가 근무 할 때 스카우트해서 내 밑에서 일을 함께 한 후배였기 때문이다. 상당히 냉정하게 그 후배는 말을 했다.   

  

“선배님, 그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없고, 주임원사님이

 격오지 들어가랍니다.”         


모든 사정을 듣고 나에게 하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사실 군 생활하면서 인사과에 근무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안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극심한 배심감이 밀려왔지만 표현하는 것 또한 한심하다고 여겨져서 그냥 참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마음이 정말 불편했다. 복직신고를 하는 날 부사관의 인사권에 대한 위임을 받은 연대 주임원사실로 찾아갔다. 이전에 같이 근무를 한 인연이 있기에 들어가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격오지는 부대로 보직하는 것을 1년 유예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다.


주임원사님은 알겠다고 그럼 아버지 일부터 일단 처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복직 후 한달이 지나서 개인회생은 개시가 되었다. 아버지 월급에서 대부분의 금액에 부채를 상환하는 것으로 이체가 되었고 그날 이후부터 아저비의 급여 통장 관리를 내가 직접 하게 되었다.

은행가서 체크카드를 만들고 네임펜으로


 “아빠 힘내세요.” 라고 글까지 써서 아버지를 드렸다. 아버지도 어떻게 되었든 빛 문제가 해결되서 기분이 홀가분하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믿어 달라고 하셨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감정을 느꼈다. 항상 무언가 때문에 불안한 느낌을 가지며 살았는데 어머니의 표정도 밝아지고 앞으로 행복해 지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격오지로 3개월 동안 임무를 부여받았다. 아버지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못 들어갈 일도 없었다. 그리고 부대에서 먹고 자면서 영국에서 공부하느라고 생기 마이너스 통장의 부채를 상환하면서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점심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무 생각없이 받았는데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어떻게 하냐면서 어떻게 하냐면서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진정을 시키고 물어보니 아버지가 쓰러져서 병원 응급실에 입원을 했는데 보호자 오라고 해서 지금 병원에 왔다는 것이다.

근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암인거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암으로 고통을 받은 주변 친척이나 지인이 없기 때문에 항상 남들 이야기처럼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암인거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일단, 어머니에게 무슨 검사를 했냐고 물었더니 피검사만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아닐거라고 정밀검사 받으면 결과가 나올테니 걱정 말라고 하고 부대 지휘관에 전화를 해서 청원휴가를 신청해서 병원을 이동했다.

불과 몇 개월전에 영국에서 집으로 갔던거 같은데 이번에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설마 아니겠지를 수천번 생각하면서 나는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선생님과 면담이 이어졌다. 모든 검사를 다 했는데 간암 말기라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술과 담배를 피기는 하지만 비만도 아니고 식사도 잘 하셨고 어디 아프다고 한적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간암 말기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빠가 아파 보였다. 우리 집은 잠시 행복의 시간을 끝내고 다시 불행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일단 침착해야 했다. 재정적으로 걱정을 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어머니에 혹시 보험을 가입한 것이 있냐고 물어보니 아빠 이름 앞으로 그래도 3개 정도 있다는 것이다. 본인 이름 앞으로는 보험 하나 없으면서 그래도 지 남편이라고 예전에 챙겨둔 보험이 였다.

나는 아버지의 심각성에 대해서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다시 받았다. 결론은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항암치료는 진행 할테지만 확률이 매우 적고 길어야 2년 정도일거라고 하셨다. 길어야 2년이라는 말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미워하고 원망했던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인데 이제 2년뿐이 남은 시간이 없다고 하니 그 사람이 불쌍해보였다. 5남 3녀의 7째로 태어나서 초등학교도 졸업 못하고 어린 나이에 공장에 일을 하면서 주급이라고 받는 돈도 모두 집에 가져다 주고 본인은 제대로 된 음식도 먹지 못한 채 살아온 한 남자였다. 그런 배경을 알고 있기에 아버지가 석유 소매업으로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왜 그렇게 과소비를 하고 남을 챙기려고 하고 인정을 베풀면서 다녔는지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이제 곧 죽는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큰 아들한테 이혼서류를 받고 협박을 당했던 그 깡마른 아버지인데.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냥 한 남자가 너무 불쌍해서 그리고 못났던 잘못했던 부모인데 자식한테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이렇게 젊은 나이에 마지막을 준비한다는 것에 너무도 불쌍했다.  



https://brunch.co.kr/magazine/genes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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