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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ul 15. 2024

잇티제 아저씨가 감사일기를 씁니다.

책 욕심에 이것저것 사둔 책들이 감당되지 않아서 책을 정리했다.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두 번 읽을 것도 아닌데 여기저기 두다가 두꺼운 노트 하나 가 굴러 떨어졌다. 


군대에서 6년 전에 지휘관 지시사항으로 쓴 감사일기장이었다. 보통은 쓰는 척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던 거 같다. 하루에 다섯 가지에 대해서 감사한 내용을 쓰라는 그 뻔한 지시에 쓴 글들을 보면서 요즘 참 마음을 갈라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웃을 일이 있어야 웃지.' 


어두운 표정을 주로 달고 다니는 내게 일부 친한 지인들이 이런 말을 종종 던진다. 뭐 이해는 간다. 그런데 사는 게 그렇게 우습지도 않고, 계속 무슨 문제가 터져서 웃음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감사일기장을 보고 한 가지 실천해보려고 한다. 이제는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지휘관도 없지만 스스로 감사일기 써보기로.


일기장을 보니 참 웃겼다. 


다섯 가지를 감사일기 내용들이 너무 억지로 쓴 것이 티가 났다. 


매사에 진중하고, 계획적이고, 치밀하고, 유머는 멸종 상태인 내게 아마도 참 힘든 글쓰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그 글들을 몇 년이 흐르고 보니 조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기장에 이런 감사도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갈 곳이 있어서 감사'


아주 사소했다. 그런데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내게 가장 어려운 글쓰기가 될 것 같지만, 짧더라도 감사한 내용을 담아보려고 한다.


아마도 어느 날은 너무 짧은 글이 될지도 모른다. 근데 꼭 장문의 글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죄송스럽지만 이건 내게 쓰는 글이기도 하다. 내가 나한테 써서 기록으로 남겨두면 그래도 지나간 세월이 조금은 더 빛이 날 거 같다. 그래고 조금은 긍정과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독자분들 중 댓글을 꼭 남기고 싶은 분들은 그냥 감사한 내용 하나씩 글로 적어 주시면 너무나 고마울 것 같다. 



너무 정신없이 산다. 눈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뭐가 그리 바쁜지. 9살 딸도 바쁘고, 지금 놀고 있는 나도 바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뭔가 온전하게 느낄 그 잠시도 만들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루 오로지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 그 속에서 내가 느낀 감정중에 좋은 것을 끄집어낸다면 조금씩 밝아지지 않을까? 


유치한 감사의 감정이 떠오르면 떠오르는 그대로 남겨두고 미래에 나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 

그래도 괜찮게 살았다고 말이다. 


지금 떠오른 감사가 있다. 


도서관 구석에 앉아서 내일 기사 시험 기출문제를 6시간 동안 풀어서 머리가 무거운데 글을 쓰다가 창밖을 보니 초록색 풀들이 보였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른 감사의 마음은 예초기를 메고 군대에서 풀을 자르지 않아서 감사하다. 

 

 돌려보면 안다. 등이 너무 뜨겁고 몇 시간 돌리면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무엇보다 나처럼 지병이 있으면 아주 퇴근해서 약 먹고 자야 한다. 20대에는 괜찮았는데 20년이 지난 작년까지 돌렸다. 사실 너무 싫었다. 그런데 뭐 부사관들은 지금도 돌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순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잡초를 잡초로 볼 수 있고, 그것들을 내 인생과 완벽하게 분리할 수 있어서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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