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딸아이와 나는 주말에 둘이 데이트를 한다. 딸아이가 어릴 때 엄마만 찾아서 질투심에 불타올랐던 날들이 많았다. 이거 부성애는 사랑도 아닌가? 이런 푸념을 비슷한 또래의 직장 선후배들과 만나서 풀곤 했다. 모두 비슷했고, 그럼에도 아빠로 잘 보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물론 나도 그렇게 빈틈을 공략하며 딸과 9년을 살았다. 빈틈이라고 표현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엄마 껌딱지인 딸. 그 모습이 얄미웠던 적도 있다. 이건 아쉬울 때만 아빠~ 아빵 이러면 찾아오고, 볼일 다 보면 차갑게 돌아서는 것이 몇 번을 당해도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태도는 어디서 배웠단 말인가? 절대로 엄마한테 배우지 않았을 텐데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도 어린 딸과 좋은 추억을 만들어 두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상대적으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도 종종 있다 보니 일찍 퇴근한 날이나, 주말 중 스케줄이 없으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같이 했다.
처음에는 다이소로 딸을 유인했던 거 같다. 물질로 그러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둘이 산책 삼아서 다이소에 가서 쇼핑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는 그 짧은 시간이 내게는 정말 소중했다.
그리고 요즘은 고양이카페를 간다. 처음 내게 제안한 건 딸아이였다. 어디서 들었는지 동네에 하나 있다고 들었다고 같이 가자고 했다. 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가족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고 딸에게 말해서 후보에서 제외되었다.(그래서 내게 기회가 왔나보다)
그리고 몇 달 전 처음으로 고양이 카페를 갔다.
어릴 때부터 반려견은 항상 키워서 익숙했는데 고양이는 조금 낯설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주변에 고양이와 같이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관심도 더 멀어졌던 거 같다.
딸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카페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건 고양이가 하늘과 땅 그리고 중간지대에서 아주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냉장고 위에서 자는 친구, 천장에 박스 같은 곳에 있는 친구, 아주 편하게 코너에서 자는 친구. 그 모습이 참 신기했다.
부럽기까지 했다. 너무 편해 보여서.
딸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신이 나서 이 고양이, 저 고양이 따라다니며 점수를 따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사진작가가 된 것 처럼 따라다니며 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렇게 고양이 좋아하는구나.'
부모인데 참 아이가 뭐를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딸아이는 지칠 줄 모르고 2시간을 꽉 채웠다. 그리고 우리는 행복한 기분으로 캣카페를 나왔다. 잘 놀아서 기분은 좋았으나. 분명 들어갈 때는 없었는데 나올 때는 고양이 털로 온몸을 감싸고 나왔다. 이렇게 떨이 많이 빠지는지 상상도 못 했다. 몇 번을 털고 테이프롤로 제거를 해도 털은 계속 나왔다.
물론 나는 크게 신경 쓰지는 않지만 딸아이가 엄마를 의식했다. 이런 것에 아주아주 민감해서.
집으로 돌아와서 현관문 앞에서 우리는 모든 옷을 벗고 옷과 몸을 격리해서 바로 샤워를 했다. 예상했던 유난이라 놀랍지는 않았다. 이유는 알레르기 때문에. 몸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가족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냥 딸을 위해 아주 평화롭게 갑자기 생긴 룰을 따랐다. 유난히 뭐가 대수인가 딸아이가 이리 좋아하는데.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렴 딸이 말했다.
"아빠, 우리 다음 주에도 가자!"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지"라고 외쳤다.
이렇게 나는 딸고 고정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아주 감사할 일이다.
추억이라는 게 참 사소한 것을 깊고 오랫동안 담는다. 내 경험도 그랬고, 주변의 경험을 봐도 그랬다. 아주 비싸고 좋고 그런 게 오래 남는 게 아니고 그냥 아주 사소한 것에 일부가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 기억이 좋으면 나중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그 사소한 것을 꺼내서 역경을 치유한다.
사실 나는 딸과 그런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 것이다. 아직은 어리지만 영원히 어리지 않고, 내가 늙어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자라고 있는 자식이기에 그 간격이 더 벌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붙어있고 싶다.
그래서 이런 시간을 보낸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그리고 일회성이 아니고 지속할 수 있어서 더 좋다.
하지만 문제는 사십 년 살면서 나도 몰랐는데 내가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이다.
알레르기에 참 강한 체질이라고 자부했는데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아주 심하게 있었다. 물론 딸아이는 모른다.
그래서 첫 번째 캣카페 이후 열 번은 넘게 다녀왔다. 대신 나는 태연하게 약을 사서 먹는다.
약을 먹어서 참을 수 있으면 그걸로 아주 충분하고, 약빨이 받아서 아주 감사하다.
대신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조금 힘들 것 같다. 매일 약을 먹으며 살 수는 없으니까.
행복이 참으로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빠가 되고 많이 느낀다. 그럼에도 뭐가 그리 급하고 초조한지. 온전히 지금을 즐기기 어렵다.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 눈높이 맞추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많이 배운다.
어른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산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맑고 투명한 아이의 시선으로 보기 힘들때가 많다. 그래도 이런 시간을 통해 잠시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