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다친 엄마를 놀리는 두 아들.
엄마의 다리 부상은 다행히 뼈에 문제는 없었다. 퉁퉁 부운 다리와 피멍이 눈에 들어와 가슴은 아팠지만, 며칠 간호하면서 처음보다는 호전된 모습을 보여 다행인 듯했다. 하지만 얼마나 아팠으면 5분에 한 번씩 거실 냉장고로 향하던 엄마의 모든 몸짓은 고요해졌다.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나와 동생은 표현은 못했지만 속이 타들어갔다. 다행히 휠체어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에 병원 진료도 있었고, 식사할 때도 앉아 있을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엄마는 두 아들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금방 적응했다.
안전벨트도 있고, 나름 튼튼해서 모시고 다닐 때 편리했다. 그래서 조금 손이 가도 아픈 엄마를 모시고 마트라도 가기로 결정했다. 며칠 째 종일 누워있는 엄마를 일으켜서 집안부터 휠체어 태워서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 모시고 나왔다. 엄마는 답답한 집에서 나온 것이 행복했는지 마냥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치매 환자인 우리 엄마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어간다. 가끔 무의식에 어떤 단어를 말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매우 드물다. 그래서 이렇게 다치면 아프다는 표현도 못한다. 물론 너무 아프면 신음소리를 내거나 의식적으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은 안다.
그 점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뇌가 아픔까지 인지하지 못했다면 엄마는 절대 침대 누워있지 않았을 것이다.
걷지 못하는 줄도 모르고 줄기차게 냉장고를 향해서 돌진했을 것이 뻔했다. 그랬다면 엄마의 다리는 더 심한 부상으로 회복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차장에 도착한 우리는 한쌍의 파트너처럼 익숙하게 엄마를 차량에 태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우선 내가 뒷좌석 문을 열면, 그사이 동생은 엄마를 일으켜 포옹하고 끌어안고 들어서 의자에 착석을 시킨다. 그러면 내가 트렁크를 열고 휠체어를 접어서 뒤에 넣는다.
몇 번 호흡을 맞추는 사이 나는 어린 시절 딸아이가 떠올랐다. 유모차로 다닐 때 어디를 이동하면 이런 식으로 호흡을 맞춰서 아이를 태우곤 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몸이 하는 행동은 비슷했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그 흔한 말이 너무 흔하지 않게 느껴졌다.
차에 탄 엄마는 밝은 표정으로 창밖을 주시했다. 보통 때라면 참새 다리보다 얇은 두 다리를 꼬고 앉았을 텐데 깁스 때문에 불편하고 아파서 두 다리는 가지런했다.
대형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역순으로 엄마를 빠르게 휠체어 착석시켰다. 그리고 장바구니를 휠체어 우측에 걸었다. 참도 친절한 것이 컵홀더까지 있어서 오른쪽에는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까지 넣고 무장을 했다.
몇 번 다녀 모시고 나와본 결과 엄마가 바퀴 신세를 진 것 때문에 나름 장점도 있었다. 바로 기동력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평소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엄마의 행동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사람 많은 곳을 피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앉아 있어야만 하기에 나름 편했다. 그렇게 우리는 돌아가면서 엄마를 밀면서 장을 봤다. 평소라면 두 다리 없이도 아들이 끌어주는 휠체어를 만족했을 엄마겠지만, 마트에서 엄마의 저항은 어린아이 보다 강렬했다.
다리가 불편하니 손가락이 더 바빠졌다. 진열대를 지날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과자를 향해 손가락으로 강하게 의사 표현을 했다. 손가락에는 아주 강한 힘과 의지가 느껴졌다. 멈추지 않고 포인팅을 하는 엄마를 보고 우리 형제는 한참을 웃었다.
과자에 목숨을 건 우리 엄마. 물론 그렇수밖에 없다.
엄마의 주식은 마가렛트 쿠키니까. 아마 그 쿠키가 없었다면 엄마는 기력이 없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영양실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참 고마운 쿠키이다.
잠시 엄마의 강렬한 손가락질을 무시하고 필요한 저녁거리부터 빠르게 픽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마를 위해 과자코너로 갔다. 평소라면 두 발로 이곳저곳 가서 이 과자, 저 과자 모두 만지작 거렸을 텐데, 엄마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을 순수히 받아들여야만 했다. 물론 충분히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우리 형제는 이 상황에 엄마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둘 다 엑스맨을 좋아해서 그런지 다친 엄마를 보고 찰스 자비에 교수가 떠올렸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휠체어를 타고 염력과 텔레파시 능력을 발휘하며, 엑스맨들을 이끄는 핵심리더 역할로 등장하는 캐릭터가 떠오른 것은 손가락질과 휠체어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엄마의 이름의 중간 자를 따서 바로 '춘비에' 라는 별명을 만들었다. 막상 이름을 만드니 그럴싸했다. 엄마의 원래 이름이 너무 촌스러워서 오히려 춘비에라는 별명이 더 세련되었다. 엄마는 이놈들이 뭐라고 하는지 전혀 모른 채 마트를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계속 손가락질을 했다.
우리는 초능력 쓰지 말라고, 악당은 다 죽었다며 엄마를 계속 놀렸다.
아마 우리 가족의 사연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은 엄마가 아픈 게 아니고 두 아들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겉보기에 너무 마르고 딱 봐도 너무 아픈 할머니를 뒤에서 밀면서 '춘비에' 니 '초능력'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면서 웃는 모습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멀리 갔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다면 남일에 거의 관심을 안 두는 문화로 변해서인지 대놓고 시선을 두는 손님들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속에서도 두 아들은 끝없이 엄마를 놀렸다. 참 유치한 장난이지만 우리는 그날 잠이 들 때까지 계속 엄마를 놀렸다.
엄마의 치매 증상이 심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장난을 치는 듯하다.
엄마의 작은 행동에도 웃고, 엄마도 뭐가 좋아서 그런지 웃고, 그래서 그런지 에피소드는 끝도 없이 생겨났다. 대소변 실수로 인한 스토리도 많고, 냉장고 테러로 당황한 스토리도 많다. 그리고 한 밤 중에 자고 있는데 침대로 와서 수면 테러까지 한다.
엄마와 의사소통을 할 수도 없고, 예전에 같이 경험했던 소소한 것들 모두를 우리는 잃었다. 그래서 우리 형제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분들도 있고, 그만 시설로 보내라고 말하는 분들도 많다.
물론 이제는 엄마를 아는 사람들 대부분 엄마의 안부를 묻지도 않는다. 서운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원래 사는 게 참 바쁘니까. 진심으로 충분히 이해한다.
나 하나 살기도 바쁘고, 내 주변 챙기기도 힘들 정도로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상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어느덧 총알보다 빠르게 하루가 흘러 다시 잠자리에 누워있다.
엄마는 아파서 존재감도, 영향력도, 재력도 없다. 지인들 기억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서운하다. 엄마를 보러 누군가 많이 찾아왔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건강하실 때 우리 엄마가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진심이고 따뜻했는데 그리고 주변을 챙겼는데... 아직은 이 세상에 있는데 그래서 억지스럽지만 밉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형제는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다. 너무 힘든 고통이 밀려오면 헛웃음이 나온다. 어이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견디기 힘드니까 반대 반응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도 많이 웃나 보다.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온 지 벌써 1년이 다되어간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마음이 타들어갈 정도로 많이 아팠다. 하지만 아무리 아프고, 인간다운 행동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들의 엄마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두 아들에게 지금도 매일매일 선물을 주신다. 웃으라고 힘들어도 웃으면서 억지로라도 행복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할리우드 배우가가 되셨나 보다.
잘 알고 있다. 세월이 흘러 엄마를 보내드리고 우리가 늙으면 '춘비에'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우리 형제는 또 웃을 것이다.
그때의 추억이라고 말하며 엄마를 같이 기억하고 같이 그리워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 엄마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를 웃게 만드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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