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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10. 2021

#1. 왜? 아빠랑 결혼했어?

사람은 변한다. 마지막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이다.

 

  병원에서 결국은 우리 형제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우리 어머니가 또 아프시다는 거다. 그것도 완치 불가능한 가장 두려운 질병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러갔다. 시간은 누구에게는 행복의 기억을, 누군가에게 아픔을 그리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무색의 기억을 남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행복의 시간만 떠올기를 원한다. 하지만 후회와 불행을 피하는 방법은 없다.
  나에게 이런 생각과 고뇌를 안겨준 한 분은 바로 어머니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으며, 그리고 복이 있다면 그래도 63세라는 나이는 보통은 고요하고 잔잔하다. 그런데 엄마의 60대는 행복한 기억으로 시작되고 있지 않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평범하기보다는 다양한 실패와 성공의 기회를 놓치며 안타까움으로 두 아들만 바라보고, 사고뭉치 남편을 곁에 두고 버티는 삶을 살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웃는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희망하나로 매일 눈을 떴을 것이다. 

그리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이 위대한 대한민국의 성장을 목격한 행운아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운명은 굴곡만 있었다. 절대 순탄하지 못했다

그런 엄마를 나는 사춘기 시절에 5살 차이 남동생에게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


 "동생아"로 시작하는 손편지의 마지막은 항상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머니에게 화내지 말고, 잘해드리자, 너무도 가여운 사람이야. 우리가 챙겨줘야 해."


동생은 어린 시절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잘 챙기고 있다. 어쩌면 괜히 그런 말을 해서 지금의 사태가 발생한 건 아닌지 죄책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리고 삶이 예측 이상으로 고단해 질 때면 하늘에서 편하게 먼저 자리 잡은 아빠가 한없이 원망스럽다. 정말 사고 뭉치에 엄마와 아들들 속을 다 뒤집어 놓고, 마지막까지 자기만 생각했던 불쌍한 인생의 마침표를 찍은 철없던 약간은 이기적인 개인주주의자지만, 그래도 착한 아빠였다.

하지만 원망스럽다. 지금 엄마 곁에 없는데 더 화가 나고 더 분하다.


  나는 5살 이전에 기억이거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방 장롱에서 오래된 앨범을 열어 본 순간 회상할 수 있었다. 


오래 된 사진에는 나의 삶과 어머니의 젊은 모습 그리고 행복한 미소가 보였다.

아주 작은 반지하 단칸방이었고, 밝게 웃는 모습과 대조되게 배경은 슬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들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여기서 나 키웠어? 이거 집이 정말 좁네 그치?"

엄마는 웃으면서  "큰애야, 그 집 보증금도 엄마가 처녀 때 마련한 돈으로 냈다. 생각해 보면 네 아빠는 참 가진 게 정말 없었어. 호호호"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고생고생하면서 추억도 하나없이 어린 시절을 불쌍히 살았으면 결혼이라도 좀 괜찮은 사람이랑 하지. 왜 하필이면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고생고생하고 살았는지 어쩌면 한심해보였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한심하다고 표현하고 몇 년이 지나서 나는 고등학교 자퇴했고, 그 큰 일을 치루고 며칠 지나서 엄마와 둘이 앉아서 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물어봤다.

"엄마, 근데 왜? 아빠랑 결혼했어? 가진 것도 없고, 고생할 거 뻔히 알았잖아. 그렇지?

엄마는 단조롭게 대답했다.


" 아.. 네 아빠 불쌍해 보였어. 뼈만 남아서 볼품도 없고, 돈도 없는데 근데 사람은 참 순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아마도 결혼하게 된 거 같아.


나는 멍하니 엄마 얼굴을 바라봤다. 아마 그때는 몰랐을 것이었기에 사람은 변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쁘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한 때 아빠가 순했다고 해도 엄마의 삶에 끝까지 불행이라는 마침표를 끌고 다니게 된 것은 모두 아빠 탓이라고 말이다.


지금 엄마가 아파서 화가 나고 그것이 불치병이라서 그리고 우리를 잊게 될 것이라서 억울해서 아빠가 미운 게 아니다. 이미 벌어 진 일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엄마가 만약에 다른 남자를 만났다면 물론 나와 동생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겠지만, 그래도 좋으니 엄마가 행복했으면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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