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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환 Jan 13. 2021

#2. 엄마 꼭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엄마 우리는 잊지마요 2화


  결혼식을 마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에 감동을 받았다. 신부가 외국인이라서 하객이 적을  줄 알았는데,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와주셨다. 덕분에 축의금으로 결혼 비용을 정산해도 예상보다 많은 돈이 남았다. 물론 신혼집에 물건을 살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 종합 건강검진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이런 검진을 챙겨드렸다면, B형 간염에서 간암 말기까지 되는 그런 일은 없었음을 것이었다. 사고를 많이 치던, 경제적 능력이 없던, 세상에 없는 사람이 그리운 것은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가장으로 살아가는 게 힘들 때 그 못난 아비가 보고 싶어지는 것이 바로 핏줄인가 싶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후회를 두 번 느끼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평소 소식을 하고, 고혈압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지병도 없었다. 나는 동생에게 돈을 주고, 좋은 곳에 모시고 가서 다양한 검사를 하도록 부탁했다. 다행히 병원 원무과에 있는 동생은 큰 힘이 되었다.

      

 만약 작은 병이라도 먼저 발견된다면 빨리 치료를 해서 이제 유일하게 남아계신 어머니가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어머니는 건강검진에 그런 거금 쓰지 말고, 결혼 생활하는데 쓰라고 검진받기 싫다고 했다. 결혼할 때도 아무것도 챙겨준 게 없어서 계속 마음에 걸리시는 듯했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아들 돈 많다고 허세를 부리며 안심시켜드렸고 동생은 좋은 병원을 알아보러 다녔다.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지게 불쌍한데 부모는 특히나 엄마는 언제나 자식만 걱정하는 것 같다. 

내가 직업군인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것도 항상 마음을 쓰셨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어머니 앞에서 군인이  힘들다고 투정 부렸던 네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어머니를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고 지친다는 말을 않게 되었다. 결국 내 힘듬을 숨기고 태연한 척하는 것이 결국 어른이 되었다는 낙인이라는 사실은 어릴 때는 미처 몰랐다. 아무리 어린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했어도 나는 어설픈 어른 아이였다.      


  동생은 어머니를 모시고 건강검사를 무사히 마치고 내게 전화를 줬다. 추가 검사까지 포함해서 잘 시켜드렸으니 걱정 말라는 전화였다. 같이 모시고 가고 싶었지만 지방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동생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에게 이런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 중일 때도 병간호는 내가 전담해서 했었다. 하지만 이제 결혼을 한 나는 물리적 거리를 포함해서 새로운 역할 때문에 쉽사리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나만의 작은 울타리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두 아들의 효도를 받으며 더 오래 건강하게 살기 위한 검사를 마치고 집에서 평범하게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셨다. 어둠의 그림자가 밀려오는 것도 모른 채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고, 두 아들을 걱정하며, 저녁에 쓸쓸한 거실 구석에서 연속극을 보며 외로움을 달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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