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저녁 카톡이 울렸다. 그 알림 소리가 왠지 모르게 씁쓸하고 외롭게 느껴져서 충전하던 스마트폰을 꺼내 알림 창을 열었다.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선생님이 조급은 다급하게 남긴 글이었다. 내용은 없었다. 뭔가 묻고 싶었는지 지금 바로 통화가 가능하냐는 글이었다.
친분이 있는 선생님이고 연구 관련해서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공부했던 사이라서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엄마에 대한 사연을 아주 조금은 알고 있다.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그동안 에피소드도 많았고, 내 얼굴에 남은 그늘 때문에 사람들은 슬픔을 더 빨리 발견하곤 했다.
보통 사람들은 엄마가 치매라고 하면 큰 관심을 두지 않고 짧은 위로만 전한다. 보통이 그러하다. 뭔가 물어보기도 조금 그렇고 잘 안다고 해도 큰 도움이 안 되기에 그러하다. 특히 가까운 사람 중 치매 환자가 없으면 그저 드라마의 한 장면을 접하는 듯 쉽게 넘겨 버린다.
하지만 오늘 연락이 온 선생님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어머니가 치매 증상이 있었고, 선생님이 여러 가지 일로 보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기적인 나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위로를 전할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엄마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오래 사셨고, 충분히 건강했으며, 충분히 호강을 받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환자를 돌보는 분들도 어느 정도 연세가 있어서 여유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했던 것처럼 그냥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그분들의 슬픔을 넘기곤 했다. 아니 넘기려고 애를 썼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끔 어떤 상황을 가지고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입을 열어 긴 설명을 하곤 했다. 내가 경험했고, 내가 아파했기에 그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이것저것 알려드렸다. 버릴 경험이 없다고 내게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며 간혹 내게 의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나는 통화가 생각보다 오랫동안 이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산책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역시나 선생님의 목소리는 피로로 가득했다. 안 그래도 소화하는 일정이 많은데 어머니가 사고까지 쳤다면서 경찰서 이야기부터 여러 가지 일들을 털어놓았다. 중간에 말을 끊고 싶지 않아서 나는 조용히 그 말들을 다 들었다. 분명 어느 시점에 내게 정말 물어보고 싶은 말이 나올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결국 그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요양원에 보내야 할까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사실 선생님이 부러웠다. 나도 동생과 함께 이런 고민을 했던 그때가 떠올랐다. 어찌할지 몰라서 발을 구르며, 등급도 안 나온 상태에 생계 때문에 결국 그 문턱을 넘었던 그날이 아지도 생생했다. 우리 곁에 남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를 힘없이 바라보던 그 눈 빛도 내 가슴에 그대로 살아서 숨 쉬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요즘 세상에는 아픈 부모님을 보낼 수 있는 그 어딘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자기 몸 하나 편하자고 이기적으로 그런 선택을 하는 자식들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면 마지막에 이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그분들이 자신의 터전까지 잃어버리는 것이 나는 정말 불편하고 안쓰럽다. 그 공간이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짧은 삶을 살면서 많이 느낀다.
게다가 가장 사랑했던 자식에게 버림받는 감정은 참으로 슬플 테니까 말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내 상황을 비교하며 이야기하지도 않았다. 그저 괜찮냐고 위로만 했다. 어디를 모셔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평생 모시고 살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는 말라고 짧게 말했다.
옆에 있으면 죽도록 힘들고, 떠나보내면 죽도록 보고 싶고 후회가 되는 게 바로 치매환자를 둔 보호자의 심정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모셔보고 경험한 사람만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흔하게 영상에서 나오는 "누구세요?"라는 장면이 힘든 게 아니다. 그건 행복한 상황이다. 보통은 자식의 존재를 잃어버린 부모 앞에서 슬퍼하는 자식을 모습을 많이 그린다. 그런데 그건 당연한 일이다.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는 것을 머지않아 알게 된다.
물론 모두 우리 엄마처럼 50대 초반부터 심한 치매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노화에 따른 치매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와 동생이 경험한 모든 단계를 하나씩 겪으며 모두가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 고통이 짧은 경우도 있고, 한 장면에 오랫동안 머무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모두 다른 인격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치매의 증상도 다르다.
나는 치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여전히 없다. 단지 그 고통과 버릴 수도 온전히 넘치게 사랑할 수도 없는 사랑과 끝없는 좌절에 대해서만 조금 알 뿐이다.
아마 그날 선생님과 통화는 한 시간이 조금 넘도록 계속된 것 같다. 통화를 끝내고 너무 감사하다고 다시 카톡이 왔지만 나는 알고 있다. 여전히 힘들다는 것을.
나는 사실 통화를 하면서 많이 부러웠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 천 번 머릿속으로 그때의 엄마를 떠올렸다. 내가 짜증을 냈던 그 후회의 시간들 그리고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 걱정으로 밤 잠을 못 이루고 소주병 앞에서 머문 순간들.
물론 엄마가 회복될 수도 없고, 다시 시간을 돌릴 수도 없다. 막연하게 지금의 시간에 마주하는 것 말고는 나와 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래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조금은 편안하게 그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그냥 마음껏 사랑하고 기억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