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 왔음에도 엄마를 보러 많이 병원을 찾아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이 많았고, 박사논문을 마무리한다고 시간을 최대한 집중했기 때문에 더욱 가지 못했다. 동생이 매일 퇴근길에 엄마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긴 하지만 그래도 얼굴을 보고 손이라도 한 번 잡는 것과는 다르기에 마음이 불편했다.
서울에 처리할 일도 있고, 논문도 심사 통과 후 최종적인 확인 작업만 남겨둔 상태라서 서울로 향했다. 저녁 늦게 동생집에 도착해서 형제의 밀린 수다를 풀어놓고 우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사는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만난 인연과 결실을 맺는 과정을 동생은 묵묵히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빠와 엄마의 빈자리를 내가 조금이라도 채워줘야 되는 상황에 나 또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아빠를 하늘로 보내고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큰 아들에게 항상 미안해했던 엄마였다.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불안 불안한 모습을 종종 보이곤 하셨다. 그 흔한 상견례도 없이 결혼식을 올린 내 옆에서 엄마는 행복한 모습도 그렇다고 불행한 모습도 아닌 큰 감정의 기복이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나름 이것저것 준비한다고 했지만 아빠의 빈자리를 엄마는 의식하는 듯했다. 그리고 친척 중 일부에게 연락을 못해서 약간의 불편한 소리도 들려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가 실수로 연락을 안 했던 게 아니라 치매 초기 증상으로 인해 정상적이지 못했던 거 같다. 그 흔한 눈물도 엄마 없이 엄마는 너무 엄마답게 담담했다.
그렇게 내가 결혼하고 다음 해 위암으로 수술을 받고, 몇 년이 지나서 치매 진단을 받았다. 엄마의 치매는 아주 고약한 놈으로, 발병 시기가 너무 빠르고, 진행 속도도 빨랐다. 그래서 더 서운하고 마음이 아프다.
하나 남은 막내아들이 결혼하는 날이 곧 올 텐데 엄마는 대답이 없다. 그게 나를 너무 아프게 만든다. 물론 태연하다. 하루이틀 된 일도 아니고 엄마의 간호를 벌써 수년에 걸쳐서 하고 있기에 우리 삶의 일부이긴 하다. 그럼에도 나는 어린아이처럼 엄마한테 기대고 싶어진다.
다음날 엄마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4인실로 자리를 옮긴 병실을 찾아서 동생보다 먼저 병실에 도착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안내를 받아 병실에 가니 엄마는 두 눈을 뜨고 계셨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엄마... 큰 아들 왔어'라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듣는 둥 마는 둥 했을 엄마인데 그날 엄마는 내 말을 듣고 환하게 미소를 보이셨다. 몇 초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내 눈을 마주하고 웃어주셨다.
마치 힘든 거 안다는 듯, 너 하고 싶은 공부 마무리하느라 고생했다는 듯, 기둥 역할하느라 애쓴다는 듯. 그 짧은 순간에 엄마는 내게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평소 같으면 눈물도 안 나는데 그날따라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나는 조용히 마비된 엄마의 차가운 손을 잡고 한동안 울었다.
어린 시절 말썽도 많이 피우고, 걱정도 참 많이 하게 만든 불효자식인데.. 그 자식이 뭐 좋다고 이렇게 웃어주나 싶었다. 한참을 울다가 눈물이 멈출 때쯤, 동생이 병실로 왔다. 주말인데 업무를 보다가 잠시 올라온 동생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엄마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나는 동생과 밖으로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하면서 나는 동생에게 친척 중 한 분이 올린 가족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젊은 시절 고생을 참 많이 하셨는데 그 사진 속의 모습은 모든 것을 보상받는 것처럼 행복해 보이셨다. 모두 잘 자란 자녀들, 든든한 사위들 그리고 앞에 않아서 웃고 있는 손주들. 그 사진은 행복 그 자체였다. 우리 엄마도 이런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되면서 이렇게 곱게 늙어갔어야 했는데, 참으로 안쓰럽고 억울한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담담하게 넘기는 동생이었지만, 나는 엄마가 쓰러지기 전에 동생 여자친구랑 우리 가족이랑 다 같이 가족사진진이라도 하나 찍어 둘걸.. 후회가 밀려왔다. 생각은 했었는데 여러 이유와 핑계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물론 이렇게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질지 전혀 예상도 못했기에 다 같이 사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도 없어서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얼마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섭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얼굴이라도 보고, 엄마 앞에서 계속 울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마 엄마는 내게 조금 더 힘내라고 응원을 했던 거 같다. 엄마가 나를 알아보고 웃었는지, 그냥 웃었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없다. 이제는 엄마의 목소리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그 사랑의 감정만 고스란히 남아 있고 모든 것들이 하나씩 희미해지는 것만 같다. 슬픔을 넘겨야 하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잊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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