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전에 뇌출혈로 쓰러진 엄마는 반신 마비로 혼자 온전히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요양원에 1년 정도 모시다가 도저히 계속 남겨둘 수 없어, 이사까지 하며 동생집으로 모시고 온 지 1년이 지났을 때 엄마는 쓰러지셨다. 그리고 다시 병원에 입원한 지 곧 있으면 1년이 되어간다.
시간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엄마의 시간은 분명 아주 느리고 지겹게 흘러갔을 것이다. 반쪽 몸의 통제권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엄마는 식사도 혼자 못하게 되었다. 결국 콧속으로 관을 넣어서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영양분을 섭취해야만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싫었다. 엄마 코에 달린 그 줄이 엄마의 아픔처럼 느껴졌고, 고통이 마치 밖으로 나온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아무리 치매환자라고 해도 엄마에게도 감정과 느낌이 남아 있을 터인데 엄마는 저항도 못하고 그냥 누워서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했다.
콧줄 때문에 답답해진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엄마의 손이다. 한쪽 손은 마비라서 움직일 수도 없는데 다른 한 손도 장갑 속에 넣어야만 했다. 그냥 두면 엄마가 콧줄을 손을 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러다 보니 몸에 어디가 간지러워도 혼자 긁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면회를 가면 그 손이라도 자유롭게 움직이라고 꺼내드리곤 했다.
지금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의 위까지 연결된 콧줄은 사라졌다. 얼마 전 엄마가 기침을 할 때 피가 보인다며 동생이 연락을 해왔다. 그것 때문에 병원에서 콧줄을 제거했다. 장기간 튜브에 의존한 것이 내부의 염증을 만들었을 가능성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과거 위암으로 수술한 엄마의 위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했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엄마는 위암 환자였다. 멀쩡한 위를 거의 다 잘라내고 5년 조금 지나서 재발은 없었지만 대신 치매가 급속도록 악화되어 지금의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어떤 이유도 타당했다. 몸은 약해져 있었고, 엄마의 뇌는 이미 충분히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지 않을 뿐 빠르게 수축되며 쪼그라 들고 있다.
콧줄 뺄 때,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제안을 했다. 위에 직접 관을 삽입하는 시술 이야기가 처음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와 동생은 수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라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엄마의 몸 상태가 너무 약해서 간단 시술조차 견디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몇 년 전에 지금보다 상태가 좋았을 때였지만 MRI 촬영을 위한 간단한 마취도 엄마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한동안 걷지도 못하고 기운이 없어서 우리 형제는 많이 울고 놀랐다. 하물며 지금은 더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아무리 간단한 시술이라도 엄마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병원의 입장은 보호자의 입장과 조금은 달랐다. 이 상태로 어머니 혼자 식사를 하지 못하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 서러도 식사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안 먹으면 당연히 안 되니까. 어떤 수단이나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영양분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하였고, 어머니가 음식을 삼킬 수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그동안 무엇을 씹어서 목으로 넘기는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엄마가 무엇인가를 드실 수 있으면 다시 콧줄을 넣는 일은 없을 테니 제발 뭐라도 드시길 간절히 바랐다.
뭐라도 씹어서 드시기를 나는 바라면서 짧은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얼마 후 동생에게 동영상 한 개를 보내줬다. 엄마가 죽을 드시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그동안 묶여있던 왼손으로 스스로 움직여서 입으로 음식을 넣고 계셨다. 엄마의 얼굴에는 다시는 콧줄을 넣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났다. 분명 배가 고팠던 것이다. 먹고 싶은 것만 드셨던 엄마인데 맛없는 죽을 먹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엄마의 입술 반쪽은 움직임이 크게 없어서 음식이 한쪽으로 흐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그날 저녁 장시간 통화를 했다. 앞치마를 사겠다고 동생은 말하며, 뇌출혈이 오기 전에 잘 드셨던 부드러운 과자를 주문했다고 말했다. 적어도 당장 식사를 위한 수술을 안 해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오고 갔다.
나는 통화를 하면서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화가 났다. 이제는 그만 인정할 때도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쉽지가 않다. 곱게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형제는 그 모든 사소한 것이 부럽다. 그분들도 삶의 걱정을 끌어안고 살겠지만 그래도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게 부러울 뿐이다.
그래서 그날 저녁 혼자 나와서 밖을 뛰었다. 이렇게라도 해야만 했다.
삶의 의미를 부모님을 통해서 많이 배운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생의 끝에 무엇이 남는지, 죽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럼에도 바둥바둥 살아간다. 끝이 정해져 있는데 그 끝을 향해서 하루하루 인생을 사용한다. 어쩌면 지금 엄마의 인생은 아주 고요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잔잔하다. 그 어떤 외부의 특별함도 느끼지 못하고 혼자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 곁을 지켜드리고 싶다.
https://brunch.co.kr/brunchbook/mymotherstory
https://brunch.co.kr/brunchbook/thankuto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