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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헌 Dec 21. 2020

어쩌다 시인이 되었을까  1

어쩌다 시인 1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된, 11년 차 시인이다. 2016년에 첫 시집을 2020년인 올해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는데, 시집을 출간하면서 어떤 벽과 계속 부딪치고 있음을 느꼈다. 그 벽은 시를 읽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일 수도 있지만, 왜곡된 우리 시 문학계의 구조도 한몫을 한다. 나의 앞에 펼쳐진 다양한 문제를 직시하려고 노력했으며,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11년 차 시인의 고군분투기를 이 산문을 통해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나는 어쩌다 시인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계기가 아니었다. 지금부터 십수 년 전 나는 용인의 한 문학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문학의 업적을 이룬다거나 시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내가 쓰던 글은 산문이었고, 시와의 연관성은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시를 쓸 마음도, 써야 하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그런데 시를 쓰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 다가왔다.


  문학회의 사업 중 하나로 ‘시 창작 강의’를 개설했다. 강의를 개설하기는 했는데, 문제는 회원이 모집되지 않았다. 당시 문학회는 회원도 많지 않았고(내분을 겪은 상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인협회처럼 별도의 지원을 받는 단체도 아니었다. 그래도 지역에서는 괜찮은 평판을 가지고 있어서 매달 10만 원의 관리비를 내는 조건으로 한 건물의 지하를 강의실 겸 사무실로 쓸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정기적인 강의를 개설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적정 인원이 되지 않으면, 시 창작 강사에게 최소한의 사례비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폐강의 가능성이 컸다. 당시 내가 나이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무국장을 맡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강 신청을 했고, 시와 길고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시를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읽으니 쓰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그렇게 해서 처음 쓴 시는 엉뚱했다. 종이컵에 반쯤 채워진 물에서 힌트를 얻어서 쓴 시였는데, 시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내 시를 보면서 웃기만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렇게 엉뚱한 시는 처음 봤다고 했다. 시를 어떻게 썼는지 문장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종이컵 속에 찰랑거리는 물을 수평선에 비유해서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호텍스트성을 배운 후였기에 수평선과 종이컵의 물을 연결해서 시를 썼던 것인데, 당시의 문장은 시 같지도 않고, 산문 같지도 않은 모든 면에서 실패한 시였다.     


  시 창작 강의를 듣는 내내 실패는 계속됐다. 그러나 누군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실뭉치를 감듯 유연하고 단단한 문장이 간혹 만들어지게 되었다. 산문이기는 하지만, 오래 글을 써온 경험이 시 쓰기에도 도움이 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렇게 시라고 불릴 수 있는 문장과. 한편 두 편 시도 완성되었다. 물론 초기작들은 시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의 형태만 지니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시가 모을 수 있었고, 열 편 정도가 되었을 때 첫 투고를 했다. 

 

 처음 투고한 곳은 지금은 폐간된 <시인 세계>라는 계간지였다. 투고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만약 첫 투고에 당선이 되었다면, 세상 무서운 줄 몰랐을 것이다. 그래도 본선에 올랐으며, 아쉬운 탈락자들의 이름과 함께 지면에 실리게 되었다. 그리고 투고한 시를 고쳐 다시 투고했는데 덜컥 등단했다. 


- 주영헌 선생님이시죠, 저는 계간 <시인시각>의 편집장 OOO 라고 합니다

   계간 <시인시각>에 투고한 것 맞으시죠

- 네 맞습니다.

- 축하드립니다. 이번에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10여 년도 더 지난 일이라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위와 같은 간략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당시 등단을 했던 시인은 나를 포함해서 2명이었고, 신기하게도 그중 한 명은 나와 같이 시를 배웠던 후배였다.



(계속)




주영헌 시인은...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김승일 시인과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로 동네 서점을 다니며 시 낭독회를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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