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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영헌 Dec 21. 2020

어쩌다 시인이 되었을까 2

어쩌다 시인 1



  시를 배운지 1년 만에, 그것도 두 번째 투고에서 등단했으니 개인적인 성과 면에선 놀라울 만한 결과였다. 하지만, 너무 빠른 등단은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다. 등단을 하면 한 명의 시인으로 인정을 받는다.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프로가 될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이 프로가 된 것이라면, 어떠할까. 시인이 되기 위해선 적어도 4~5년은 ‘충분히’ 낙방을 하면서, 자신의 시적 세계를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충분히 시도 모이고, 청탁을 받았을 때 괜찮은 시를 가려서 발표도 할 수 있다. 내 경우는 그렇지 못했다.  

  

  투고를 받았을 때 완성도가 떨어지는 시를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시 재고를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보통 계간지는 2개월 정도 월간지는 1개월 정도의 말미를 준다. 그  기간 동안 새로운 시를 써서 보내거나 또는 기존에 썼던 시를 고쳐서 보내야 한다. 나는 고쳐서 보낼 시도 없었고, 단기간에 괜찮을 시를 쓸 만한 능력도 없었다. 이러다 보니 한 번의 청탁이 그다음 청탁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청탁의 톱니바퀴는 멈췄다. 별똥별처럼, 잠깐 반짝이다 잊히는 시인의 전형적인 전처를 밟고 있었다.     


  등단 3년 만에 나는 완전히 잊힌 시인이 되었고, 청탁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간혹 청탁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나의 능력이기보다 문예지 청탁 시스템에 의한 것이었다. 중소 문예지들은 서로 연대하여 자신의 문예지에서 등단한 시인이 타 문예지에 발표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이런 연대가 없다면, 중소 문예지를 통해서 등단한 시인들은 발표 기회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등단한 <시인시각>도 몇몇 문예지와 연대를 하고 있어서, 뜻하지 않은 기회를 만나게 된다.     


지하철 어디인게 올라갔던 시 '밥상'


  내 전환점이 되었던 시가 「밥상」이다. 이 시는 내가 처음 배웠던 시와 결별하고 새로운 호흡으로 쓴 첫 시이다. 긴장하지 않고 힘을 뺀, 맛으로 표현하자면 기름기가 전혀 없는 담백한, 대중시에 가까워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시였다. 이 시는 후에 <대구매일신문>에 소개가 되었는데, 나도 한 명의 시인으로 독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시인은 많았고 매해 새로운 시인이 탄생한다. 나는 이미 존재감이 흐릿한 시인이었고, 청탁은 뜸했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시를 썼고, 등단 7년만인 2016년 첫 시집인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를 발간했다.      


밥상



하루를 마친 가족들 밥상머리 둘러 앉습니다.

숟가락 네 개와 젓가락 네 벌

짝을 맞추듯 앉아 있는 이 가족

조촐합니다.     


밥상 위엔 밥그릇에 짝을 맞춘 국그릇과

오물주물 잘 무쳐낸 가지나물

신맛도는 배추김치

나란히 한 벌로 누워있는 새끼조기 두 마리 뿐입니다.     


변변한 찬거리 없어도

이 밥상,

숟가락과 젓가락이 바쁩니다.   

  

숟가락 제때 들 수 없는 바깥세상

시간을 쪼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둘러앉게 한 것은

모두 저 밥상의 힘이었을까요. 

    

어린 날 추억처럼 떠올려지는

옹기종기 저 모습,

참으로 입맛도는 가족입니다. 

             

『열린시학』2012, 봄호



  시집 출간이 상황을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매년 꾸준한 시인이 탄생하는 만큼, 꾸준히 시집도 쏟아진다. 일 년을 합하면 몇권이나 될까. 몇백 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시인 사이의 경쟁도 사회에서의 경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수만 살아남고 다수는 잊혀진다. 살아남은 소수도 추후 잊힐 가능성이 크다. 다만, 시집이 있는 시인과 그렇지 못한 시인은 차이가 있는데, 시집 한 권이라도 있는 시인은 시인으로서 인정을 받는다. 시집을 냈다는 것은, 자신의 문학적인 발자취가 시집으로 남는다는 의미이며, 사상자가 넘쳐나는 살벌한 시 전쟁터에서 생존했다는 증명서이기도 하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일이었지만, 나는 침체하고 있었다.   



(계속)

 



주영헌 시인은...     


2009년에 계간 시인시각으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년 첫 아이를 잃은 슬픔을 담은 『아이의 손톱을 깎아 줄 때가 되었다』(시인동네, 2016년)를, 2020년 위로의 시편을 담은『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걷는사람, 2020년)을 출간했습니다. 김승일 시인과 <우리동네 이웃사촌 시낭독회>로 동네 서점을 다니며 시 낭독회를 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을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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