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토마토

올여름 너도 힘겨웠을텐데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by 주영헌 시인


올여름은 여느 여름보다 더웠습니다. 기후학자들이 앞으로의 여름과 비교해서 올해의 여름은 덜 더운 것이라고 예견하는 것을 보면서, 기후위기가 우리와 관계없는 먼 나라의 얘기가 아님을 느낍니다. 더위와 가뭄 탓에 과일값도 많이 올랐습니다. 과한 더위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과일의 생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매해 베란다에 몇몇 과일을 심습니다. 재배 용도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관상용입니다. 몇 해 전에는 수박 모종을 심었었는데, 줄기가 무성하게 자라났습니다. 수박도 몇 개 열렸었는데, 비료를 주지 않아서인지 손톱 크기만큼 자라난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베란다 안에서는 금귤이 해마다 열 개 남짓 과일을 선물해 줍니다. 금귤 나무도 관상용 이상입니다. 봄가을로 꽃이 피었는데, 자욱한 꽃향기를 맡고 있으면, 외딴 섬으로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입니다.


방울토마토는 매해 심는 과일입니다. 토마토도 심어봤는데, 하나도 따먹기가 쉽지 않아서 이제는 심지 않습니다. 방울토마토는 베란다 안에도 모종 몇 개를 심고 베란다 밖 화분에도 모종을 하나 심었습니다. 심을 때만 해도 주렁주렁 열릴 방울토마토를 상상했었는데요, 베란다 안의 방울토마토는 시름시름 앓다가 모두 죽어버리고, 베란다 밖 화분에만 꽃이 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열린 방울토마토는 딱 한 개. 몇 해 키워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방울토마토를 볼 때마다 구시렁거렸습니다.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가끔 물도 주고, 비료도 주었습니다. 다른 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뽑아버리려다 말았습니다. 지독하게도 더웠던 올여름, 나만큼이나 방울토마토도 고생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과 자주 만나게 됩니다. 열매가 주렁주렁 맺힐 것처럼 보였는데, 결과는 기대와 달리 초라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한 알이 아니라, 그 한 알을 얻기까지 버티고 기다린 나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결실이 늘 따라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결과를 만들어가며 이미 조금씩 더 단단히 익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올여름의 방울토마토는 한여름의 열기를 같이 견뎌낸 열매입니다. 지독한 더위 속에서도, 시들지 않고 버텨낸 힘. 그 힘은 비록 열매 하나로만 남았지만, 저 방울토마토를 바라보면 위로가 됩니다. 내가 힘들었던 여름을 잘 견뎌낸 것처럼, 방울토마토도 베란다라는 뜨거운 햇살 속에 서서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결국은 ‘한 알의 방울토마토’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수없이 심은 씨앗 중 단 한 알만이 열매로 맺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알이 내게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삶이란 어쩌면 더 많은 열매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단 한 알의 열매가 내 곁에 와 주었음을 감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울토마토


주영헌



베란다 밖에 방울토마토 한그루 놔뒀습니다.

가끔 물도 주었습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듯싶었는데

꽃도 피는 것 같았는데

그렇게 해서 맺은 열매는 딱 한 개


돈값 못하는 것 같아

싫은 소리 할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올여름 힘겨웠는데 잘 이겨내 줘서


고생했다

한마디 해 줬습니다.


이전 10화힘은 어디에서 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