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않음과 오래 참음, 단단한 가족을 만드는 바탕
우리가 오늘 살아갈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질문은 쉽지만 답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저는 ‘가족’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만큼 힘을 내며 살아올 수 있었던 까닭, 포기하지 않고 2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가족 때문입니다. 아니 포기의 문제가 아니라, 힘을 낼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혼자였다면, 내가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는 최대치는 한 몸 건사하는 것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나 따위가 어떻게 이겨내겠어’라며 자포자기하고 싶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듯, 세 번의 위기가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위기는 있었습니다. 가장 큰 위기는 첫 아이를 의료사고로 잃었을 때입니다. 애지중지하던,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큰 아이가 더 이상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는 얘기를 의사의 입에서 들었을 때, 제가 했던 말은 “제발” 뿐이었습니다. 이미 의사의 얼굴에서 절망을 읽었기에, 내가 아무리 애원한다고 해도 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순간 나의 세상은 정지해 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힘을 낼 수 없는 상황, 힘을 완벽히 상실해 버린 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 때문에 힘을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백일이 갓 지난 둘째, 지금의 첫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큰 아이는 나에게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습니다.
모든 가족이 힘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에 읽었던 박주영 작가의 책 『어떤 양형 이유』에서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가장 끔찍한 존재로 변할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어떤 가정폭력은 보통의 폭력의 범위를 넘어서 가족 구성원을 살해할만한 위험입니다. 조금 더 현실적인 가족의 모습을 알려주는 홍주연 작가의 『환장할 우리 가족』은 그보다는 낫습니다. 정상 가족이라는 판타지를 넘어서 우리에게 가족의 날 모습이 어떠한지를 작가는 자신의 사례를 들어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사실 가족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가족 구성원에게 완벽이라는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 어쩌면, 가족 해체를 만드는 첫 번째 단추일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구조물에 틈이 생기고 무너지는 까닭, TV에서 봐왔던 화목한 ‘정상 가족’이라는 판타지를 내 가족으로 만들고자 하는 억지 때문일 수도 있고요.
해체되는 가족에 관한 사례를 많이 봐왔기에, 저는 가족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가족은 해체될 수 있으며, 그 해체를 막기 위해선 ‘바라지 않음’과 ‘오래 참음’이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환상이 아닌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최선의 힘을 내게 하는 요소는 가족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영헌
뒤돌아서는 당신의 그림자는 왜 짙은 그늘로만 기울어지나요
안 그래도 휘어진 등 힘들어 보여서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힘은 어디서 오나요
벽에 못 하나 박는 일이나
시장바구니에 저녁거리를 담는 일
사무실에 홀로 남아 야근하는 일이나
과장님의 주말 카톡까지도
생각해보면, 모두
심心 써야 하는 일입니다
그 마음 때문에
울컥하는 또 다른 마음도 있습니다
말로는 내 마음 다 담아낼 수 없어
당신에게 짧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심心내요
힘내요
시집 『당신이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