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루하 Sep 20. 2024

연인

25화

다시 이런 행복은 못 느낄 줄 알았는데, 그로 인해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해요?”

“네. 지금 너무 행복해요.”

“제 옆에 있으면 행복할 거예요. 저, 행복의 아이콘이니까.”


과연 행복과 불행이 만나면 누가 이길까? 궁금해졌다. 제발 행복이 이겼으면 좋겠다. 나도 이제 행복해져도 되지 않을까? 매번 행복이 안착이 되어갈 때쯤 불행이 찾아왔었다. 이번엔 잘 이겨 나가기를 바란다.

그와 함께 한 캠핑은 즐거웠다. 나보다 더 많은 캠핑지식이 있는 그로 인해 다음을 기약하기도 했다. 이젠 혼자가 아닌 둘이 떠나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바쁜 일상을 다시 시작했고, 이젠 나만을 위한 식사가 아닌 같이 먹기 위해 저녁마다 찾아왔다. 함께 먹는 식사는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저녁을 보내는 동안 TV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소소한 일상은 점점 그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 깊숙이 파고들었다.


“오늘은 어땠어요? 힘들지 않았어요? 명호 씨?”

“제 걱정 그만하고, 하던 일이나 마저 해요. 그러다 실수하면 어떡해요?”

“미안하지만, 잠깐만 기다려요.”

“기다리는 건 제 특기죠. 책 보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해요.”


문득 반복되는 데이트가 지겹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평일엔 영화는 물론 식사까지 집에서 먹는다. 외출은 캠핑이 전부인 그런 식상한 데이트가 그에게 지루하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싶었다.


“저기, 명호 씨?”

“뭐 필요한 거 있어요? 목말라요?”


대답도 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만류하며 입을 열었다.


“아뇨.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데, 솔직하게 답해줘요.”

“아이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도 저렇게 할 수 있구나! 뭐 그런 생각이요.”

“제가 오 솔직 아닙니까? 물어봐요.”

“혹시 다른 데 가고 싶은 곳 있어요? 평일에 집 데이트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지는 않아요?”


혹시 질문이 이상했나? 그가 웃기 시작했다.


“연인 사이의 최고 데이트가 뭔지 알아요?”

“뭔데요?”


마치 비밀이라도 말하듯이 목소리를 낮춘 그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 데이트예요. 게다가 여자 친구 집에 이렇게 매일 올 수 있는 남자가 흔한 줄 아세요? 이 귀한 걸 왜 포기하고 다른 걸 해요. 저는 좋은데, 혹시 미소 씨가 다른 거 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장난기가 있었지만, 그 내용은 가슴으로 말하는 진심이었다. 그랬기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나는 그의 배려에 늦은 시간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그가 차려주는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오늘 밤은 외출하고 싶었다. 찜한 영화가 있다고 보채는 그를 달래 처음 우리가 만난 은하수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와, 당신 너무 하네. 제가 얼마나 그 영화를 고대하며 오늘 열심히 일했는데.”

“내일도 있잖아요. 영화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실까? 오늘은 진짜 당신 팔짱을 끼고 걷고 싶어서 그러는 거예요. 싫으면 말해요. 집에 갈까요?”

“이젠 저 놀릴 줄도 알고, 많이 늘었네요. 미소 씨. 당신의 스킨십을 포기할 수는 없죠. 자요.”


팔짱을 끼라며 틈을 내어주는 그였다. 그런데 그는 팔짱이 아닌 손이 잡고 싶었는지 자연스럽게 팔짱에서 손으로 옮겼다.


“저는 이게 더 좋아서. 가요. 어디로 갈까? 이쪽으로 돌까요?”

“네. 당신이 편한 곳으로 가요.”

“그러지 말라니까 이젠 미소 씨가 원하는 걸 말해요. 안 그럼, 저 안 움직여요.”

“네, 네. 저도 이쪽이 좋아요. 오르막을 올랐다가 내려가면 정말 시원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힘든 거 먼저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공주님을 모시죠.”


또 장난을 거는 그였다. 그와 길을 걷는 동안 그는 쉬지 않고 말했다.


“오늘은 종일 일만 했어요?”

“아뇨. 당신이 말한 대로 중간에 쉬었어요. 밥도 먹었고요. 당신은 뭐 했어요?”

“저요? 오늘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어요. 학교 졸업한 지 이제 3개월 된 갓난아기 같은 신입생이 들어온 거 있죠? 컴퓨터는 능숙하지만, 정작 알아야 할 것은 하나도 모르니 종일 그 친구 때문에 더 정신없었어요. 전화 받은 걸 전달하는데, 도대체 누군지 알 수도 없고, 어쩌다 맞으면 용건이 틀리고 아무튼 업무가 배로 늘어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실수 연발이면서도 어찌나 열심히 하는지 그냥 잘한다 잘한다고 그 말만 했죠. 저녁쯤에는 본인도 지쳤는지 탕비실에서 나오지 않는 거예요. 같은 여직원에게 가서 보고 오라고 했더니, 글쎄 바닥에 주저앉아 멍하게 앉아 있더라는 거 있죠.”


그는 그 직원이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처음 직장에 입사한 날 나는 어땠나 생각해 봤다. 나도 그랬다. 전화는 엉망진창으로 받았고, 하라는 자료 조사는 도대체 뭘 위주로 해야 하는지 몰라 그저 두서없이 우왕좌왕했다. 정말 내 자리가 아닌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멘붕 출근이 아마도 한 달은 계속되었던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일과 전화량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니까. 


“당신도 그랬어요? 처음에 입사할 때?”


그가 물어볼 줄 알았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진짜 힘들었나 보네. 생각도 하기 싫어요?”

“네. 생각도 하기 싫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토닥토닥해주라고 해야겠네요. 조언 고마워요.”

“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표정이 말해 주었거든요.”

“역시 도사?”


‘도사’라고 말했다고 그가 웃어버렸다. 내가 말만 하면 웃는 남자, 오명호, 이제 내 남자가 된 사람이다. 여름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밤공기는 시원했고, 평소 사람이 없다던 공원은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주고 있었다.


“여름엔 사람들이 많네요? 미소 씨, 우리 이번에는 길게 캠핑하러 갈까요? 혹시 장박 해봤어요?”

“해봤죠. 2박 3일.”

“그러면 일주일 어때요?”


그와 단둘이 일주일 동안? 왜 심장이 쿵쾅대는지 모르겠다.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차에서 저는 텐트에서 잘 거니까. 당신을 위해 가끔은 텐트에서도 잘 수 있게 마련해 둘게요. 어때요?”


가고 싶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그 긴 시간을 뺀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당신 시간 괜찮아요?”

“직장생활에는 휴가와 월차가 있습니다. 당신만 허락한다면 제가 9월쯤에 10일 휴가를 얻지요. 어때요?”


직장생활을 7년이나 했는데, 그새 잊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눈치가 보여서 10일씩이나 휴가를 빼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관리자가 아닌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